‘사찰예산회계법 제정, 직영사찰 및 특별분담금사찰 등 주요 사찰 회계전문가 감사, 사찰 모든 수입 영수증 발급 의무화, 신용 카드 사용, 문화재구역입장료사찰 통합 전자발권 시스템 도입, 사찰운영위원회 기능 강화, 종무행정학교 설치, 사찰재정 공개. 총무원장 선출제도 개선…’
조계종 총무원이 발표한 제1차 쇄신계획에 담긴 내용들이다. 작정이나 한 듯 총무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개혁안을 제시했다.
큰 틀에서 보자면 총무원은 ‘승려도박 사건’ 등 승풍 실추 사건 등이 발생한 근원적 원인을 재정문제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사찰 예산회계법을 제정하고 주요사찰에 회계전문가 감사를 맡기고, 신용 카드 사용이 가능하게 해 모든 사찰의 재정 공개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실천. ‘출가자는 수행과 교화를, 재가자는 사찰 운영과 신행을’ 골자로 한 쇄신안이 제대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사찰 재정문제의 한 축이 될 ‘종무원’ 양성이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총무원은 쇄신안을 통해 주지 등 스님들에 의해 주도됐던 재정을 재가 쪽으로 넘기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총무원은 올 하반기에 ‘종무행정학교’를 시범적으로 운영한다.△회계관리 △부동산 및 재산관리 △템플스테이 등 분야별 전문 종무원 양성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기존 종무원들의 재교육과 함께 예비 종무원 양성도 이뤄진다.
총무원의 한 관계자는 “전문 종무원 양성과 관련한 초안이 나온 상태”라며 “하지만 교육방향․일정 등에 대해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기 때문에 올 해에는 시범적으로 운영한다고 밝혔다. 큰 문제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달랐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의 한 종무원은 “전문 종무원 양성을 위한 교육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하지만 근무여건, 입금, 복지혜택 등 따져볼 것이 많다. 단순히 교육만 시킨다고 될 일이 아니다”고 피력했다.
이와 함께 그는 “솔직히 각 사찰에서 종무원 채용 시 인맥이 많이 좌우하고 있다”며 “스님들의 마인드 변화가 없인 전문 종무원 활성화는 힘들다”며 스님들의 인식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사찰운영위원회 기능과 역할강화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현재 각 사찰의 사찰운영위원회는 7인~30인으로 구성된다. 운영위 회의는 분기별 1회. 총무원에서는 사찰운영위원회법을 전면 개편할 것임을 밝혔다. 3개월에 한 번 열리는 사찰운영위원회를 가지고는 ‘재산처분 승인신청’ 등 굵직한 사찰 현안을 처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참여. 교구본사의 한 주지스님은 “서울 등 수도권과 달리 지방 사찰 신도회는 활성화 되어 있지 못하다”며 “시간을 갖고 사찰운영위원회 조직을 꾸려야 할 것”이라며 현실적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신용카드, 영수증 발급도 현실적 문제가 많다. 가장 현대적인 종무행정을 펼치고 있다고 평가를 받는 봉은사도 신용카드 사용을 위한 준비에 나서고 있는 상황. 오랜 관습으로 신용카드보다는 현금을 우선 사용하는 지방 불자들의 정서도 고려해야 한다.
재정문제와 함께 선거제도 개혁도 쇄신안 성패에 중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 개혁의 핵심은 총무원장 선출제도 개선. 조계종은 직선제를 포함한 다양한 선출방식을 도출하기 위해 공청회 및 대중공사 등을 전개할 것임을 선언했다.
교구본사 주지, 중앙종회의원 등 기득권 세력들에 의해 좌우됐던 총무원장 선거 자체를 뜯어 꼬치겠다는 것이다. 선거공영제를 도입해 종책 홍보, 토론회 등 선거 기본경비를 총무원이 부담하겠다는 것도 파격적이다.
최근 불교계에 진정한 NGO 단체가 있냐는 논란이 일고 있지만 불교시민사회단체들의 참여를 보장한 ‘공명선거추진위원단’ 구성도 눈길을 끈다. 폐쇄적 선거 관리에서 탈피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총무원의 쇄신안 발표로 이제 공은 자연스레 중앙종회로 옮겨가게 됐다. 총무원 측은 ‘사찰예산회계법’ ‘사찰운영위원회법’ 등 개정이 가능한 법안을 오는 6월 21일 개최되는 중앙종회 임시회에서 무난히 통과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미 중앙종회 종헌종법특위에서 손질한 각종 선거법 개정도 내심 바라고 있다. 하지만 중앙종회 의원 일부에서 이번 쇄신안에 대해 부정적 의견도 있어 쇄신안 관련 법안 통과를 낙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임시회를 통해 중앙종회는 개혁의 주체 혹은 개혁의 대상이 될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원담스님(총무원장 종책특보단장), 지현스님(총무부장), 포교원장 지원스님(사진 왼쪽부터)
한편 총무원은 이날 발표된 쇄신안과 함께 승가공동체 쇄신위원회 등을 통해 쇄신안이 마련되는 대로 추가 쇄신안을 발표한다.
이석심 조계종 총무원 기획차장은 “이번에 발표된 쇄신안은 향후 조계종 쇄신과 개혁을 위한 토대가 될 것”이라며 “총무원에서는 구체 쇄신안을 마련해 국민과 불자들이 조계종의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쇄신작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