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섬은 변해도
연일 35℃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에 몇십년만에 뚝섬수영장을 찾는다. 7호선 뚝섬유원지역 2번 출구로 내려오면 바로 앞에 수영장이 있다. 엉카페 버쁘바 까토나 3명의 엘리트들만의 단출한 만남이다. 예식장으로 미국에서 왔던 손녀를 공항으로 모셔다 준다는 이유로 빠진 버니재 막사리이다. 수 많은 파라솔 밑에는 가족단위의객들로 만원이다. 강가를 1시간여 걷고 입장키로 한다. 준비운동을 대신하는 모양새의 노객들이다. 입장료는 50% DC 경로우대로 2,500원이다. 여러가지로 혜택만 받는 느낌은 별로 좋지는 않다. 남자탈의실은 각각 2,000으로 우대는 없다. 이건 좀 섭섭한 기분인가. 수영복은 입어본지가 언제이던가. 자식들 초등학교 중학교까지로 기억된다. 왕년에 중고교 시절 대학교 때만해도 한강뚝섬에는 중간에 모래섬이 있다. 옷은 벗어서 한 녀석에 맡겨 배를 타고 건너게 한다. 나머지 서너명은 뱃삯을 아끼노라 수영 실력에 의지하여 도강을 하곤한다. 땡볕이 내려쬐는 모래사장에서 냄비에 밥과 찌개를 만들어 쐬주도 곁들인다. 정철이 성진이 승일이 여훈이 고교동기들이다. 고등학교 등하교 때 같이 묻어 다니며 막소주의 친구녀석들이다. 공교롭게도 네 녀석 모두가 지금은 어디서 무엇하고 수영은 하기나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저기 저 멀고도 먼 곳이라 네놈이 만나서 즐기고 있겠지 아니한가. " 최약사님이 우리 애들 아빠 몫까지 오래오래 살아주세요 " 어느 날 철이와 진이의 아내가 던진 한 마디가 아직도 심금을 울린다. 삶의 대신이 있는가. 눈물을 글썽이는 그녀들을 달랠 방법이 없다. 그저 침묵으로 대신할 뿐이다. 뚝섬은 섬이면서도 섬이 아니었다. 장마 때 큰비가 오면 섬이 됐고 건기에 비가 적으면 육지와 연결됐다. 뚝섬은 한강과 중랑천에서 흘러내린 모래와 진흙이 쌓여 형성된 곳이다. 땅이 기름져 대궐에 바치는 곡물과 채소류가 재배되기도 했던 곳이다. 둑섬, 뚝섬, 둑도, 뚝도, 살꽂이벌, 전관, 전교, 동교 등의 명칭으로 불렸으며, 한자로는 둑도(纛島)라고 표기한다. 지역 전체가 낮고 평탄하며 홍수 때에는 많은 피해를 입기도 했었다. 여름이면 아이들이 몰려들어 물놀이를 즐겼을 만큼 물 맑고 모래가 유난히도 고왔던 장안 제일의 유원지 뚝섬이다. .현재는 뚝섬한강공원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365일 받고 있는 유원지이다. 수영장은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일뿐이다. 엄마 아빠들은 자녀들의 감시원이며 먹을 것을 제공하는 보호자이다. 노객들이 붙일만한 장소는 거의 보이지를 않는다. 그늘막도 모두가 가족단위의 차지이다. 간식 먹을만한 곳도 찾기 어렵다. 수영장 물줄기를 따라 걸으며 지난 날의 추억만을 되살리고 있다. 간만에 햇살에 노출된 노구의 피부가 버얼겋게 달아 오른다. 강가에 유람선 레스토랑으로 발길을 돌린다. 강물이 일렁이는 창가에 앉아 시원한 쏘맥이 가슴을 시원스레 쓸어내린다. 수제 돈까스를 안주로 학창시절에는 접하기도 어려운 고급음식이 아니던가. 세월은 벌써 여기까지 왔는 데 얼마나 보람된 시간이었는가. 별로 한 것도 사회나 국가에 보탬은 고사하고 우대만 받는 게 아닌지. 생맥주로 자리를 옮겨 알콜의 농도를 올린다. 언제나 그러하듯 각자의 생각과 인생관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올리는 화제가 정치판이면 더 더욱 치열해진다. 메뉴에서 삭제하자고 정치와 종교문제는 말이다. 주위 시선도 마다 않는 노객들이 언제까지이련가. 그 세월이 지나면 어디로 가야할까. 향하는 곳은 누구에게나 같은 곳이리라. 오늘의 뚝섬유원지는 까까머리 때의 모습과는 완전히 몰라보게 바뀌고 변했다. 큰 소리로 목에 힘을 주는 이 시간이 노객들에겐 변함이 없는 즐거움이려나. 곰곰히 되씹어본다.
2019년 8월 17일 무 무 최 정 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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