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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길고도 긴여름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원한 소식하나가 전해지니 일제 감정기의 전성시기에 상해와 만주에서 한창 독립운동이 열을 더하고 청산리대첩등 으로 한껏 독립의 기운이 넘쳤지만 국내는 평온을 유지하다 시피한다. 이에 울분에 찬 글귀를 천왕봉의 영험을 빌어 독립을 기원하면서 쓴 글씨가 발견되었다. 독립운동가 묵희선생은 고대 동이의 성자 묵자(墨子)의 후예로서 그 의미는 매우 크고, 글을 쓴 권륜(權倫)도 의미 깊은 이름이다.
일제 전성기, 새긴 의병의 염원
지리산 천왕봉 바로 아래 바위에 새겨진 의병의 울분이 담긴 글씨가 최근 확인됐다. 이번 발견은 지리산의 역사적 가치와 함께, 당시 의병들의 강렬한 독립 염원을 드러내는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된다.
국립공원공단은 13일 지리산국립공원 천왕봉 아래 바위에서 392자의 한자 바위글씨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글씨는 1924년 7월 1일, 일제강점기 당시의 항일 독립 의지를 담아 구한말 문인 묵희(墨熙, 1875~1942)가 지었고, 권륜(權倫)이 글씨를 쓴 것으로 판독됐다.
바위의 크기는 폭 4.2m, 높이 1.9m로, 현재까지 전국의 국립공원에서 확인된 근대 이전 바위글씨 중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하며 글자 수도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발견의 배경과 의미
이 바위글씨는 2021년 9월, 경남 합천 출신 권상순(1876~1931) 의병장의 후손이 처음 발견했다. 이후, 지난해 11월 국립공원공단에 조사가 요청되었고, 4월부터 6월까지 3차원 스캔과 탁본 작업을 통해 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졌다.
국립공원공단의 연구진은 바위글씨의 전문을 판독하기 어려운 상태였으나, 최석기 한국선비문화연구원 부원장과 한학자 이창호의 도움을 받아 구한말 문인 묵희의 작품임을 확인했다.
글의 내용과 해석
바위글씨에는 "오늘날 천지가 크게 닫혔다고 하는데, 다시 열리는 기미는 언제쯤일까? 오랑캐를 크게 통일하여 문명이 밝게 빛나고 넓게 퍼져가는 날을 반드시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울분과 원통함을 금치 못하고서 피를 토하고 울음을 삼키며 이 남악(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만세 천왕의 대일통을 기록한다. 아! 슬프다”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최 부원장은 이 글이 "천왕을 상징하는 지리산 천왕봉의 위엄을 빌어 오랑캐를 물리쳐 밝고 빛나는 세상이 오기를 갈망하면서,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비분강개한 어조로 토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역사적 가치와 보존
국립공원공단은 이번 발견이 지리산의 자연적 가치뿐만 아니라 역사적 가치 또한 높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송형근 국립공원공단 이사장은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 정상에서 일제에 대항한 의병과 관련된 바위글씨가 발견된 것은 국립공원 문화유산의 가치를 높여주며, 지리산 인문학과 지역학 연구에 매우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묵희는 독립운동가로서 구기언과 함께 활동하며 3년간의 옥고를 치른 바 있으며, 상해 임시정부의 연락책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그는 또한 지리산 일대에서 은둔하며 독립운동을 지속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바위글씨 발견은 지리산의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고, 의병들의 독립 염원을 기리는 중요한 자료로 기록될 것이다.
천왕봉 각석 원문
※ 참고 : ()안에 쓴 글자는 앞 글자의 正字. (?)는 앞 글자 판독이 애매한 경우
帝典日 蠻夷猾夏二(夏)夷之防明矣尚矣
春秋大一統者乃以扶陽抑陰尊王出伯(覇)崇華夏攘夷狄顯忠良誅亂賊 者此也其尊崇畑(黜)攘不亦凜二(凜)爾乎盖皇極物國(?)王才拱傳 摠若 干紀皆(時)則聖人作興任天下而為君師此包羲神農黃帝為三皇之紀 摠 先世幾年少昊顓頊帝嚳堯舜氏以悳相承此之五帝之紀摠幾歲已夏后受 舜禪 單商湯續禹服 周武王伐湯業此三王之紀 摠幾世年漢祖眦(?)周王之
隙仍起成帝傳幾世而曺(?)瞞綴(?)羿莽暫(?)竊神器然昭烈仗義克終總
幾年晉武值炎興綿歷幾年五胡亂華宋齊梁陳僅保名位摠幾年隋一幾 年李淵父子自發為唐傳幾世年 趙宋氏康紀亦幾年焉請獨嚙宋途遇鐵
木兒 蝕之焉 大明享天傳幾世幾年然努(?)哈(?)赤(?)蝕之庶(?)幾絕
嗚乎天道非耶是那奈皇昊不振何或將永曆之連續耶然四海洪洞百蠻 (?)跳梁抑何省(時)以定耶且无乃六万來年斯(?)入禽獸耶日今天地大閣 閉機栝在何(?)必復見獯戎狄(?)夷(?)大統以烘(?)燿漬(?)溢(?)之日也然 自不勝憤怨 瀝血飲泣陟此南嶽之天王以寫(?)万世天王之統嘻噫 悲夫 崇禎六甲子秋七月壬子朏罔僕遺民
孤竹墨熙撰 花山權倫書
번역본
서경 「제전(帝典)」(「순전(舜典)」)에 "만이(蠻夷) 1)가 중하(中夏)2)를 어지럽혔다."라고 하였으니, 중하와 오랑캐가 사방을 경계로 한 것이 분명하고 도 오래되었도다. 춘추의 대일통(大一統)3)은 곧 양(陽)을 부지하고 음 (陰)을 억제하며 왕도(王道)를 존숭하고 패도(霸道)를 내치는 것으로 화하(華 夏:중화문명)를 숭상하고 이적(夷狄)을 물리치며 충량(忠良)을 현양(顯揚)하 고 난적(亂賊)을 주벌(誅罰)하는 것이 그것이니, 그 중하를 존숭하고 오랑캐 를 물리친 것이 또한 늠름하지 않은가.
대개 황극(皇極)4)이 나라를 창업하고 왕도(王道)를 행할 재주를 가진 사람이 받들어 전하였는데, 총 얼마 동안의 기년(紀年)5)이 지난 뒤에는 성인이 태어 나 천하를 책임지고서 임금과 스승이 되었으니, 이것이 복희(伏羲)·신농(神 農)·황제(黃帝)가 삼황(三皇)6)의 기년이 되며 모두 상고시대의 여러 해이다. 소호씨(少昊氏)·전욱씨(顓頊氏)·제곡씨(帝嚳氏)·당요씨(唐堯氏)·우순씨(虞 舜氏)가 덕으로 서로 계승하였으니, 이것이 오제(五帝)의 기년이며 모두 몇 년
이다.
하후씨(夏后氏)가 순(舜)임금의 선양(禪讓)을 받았고, 상(商)나라 탕(湯)임금 이 우(禹)임금의 하(夏)나라를 계승하였으며, 주무왕(周武王)이 탕임금의 상 나라를 정벌하였으니, 이것이 삼왕(三王)7)의 기년이며, 모두 몇 대 몇 년이 다.
한고조(漢高祖)가 주나라 천자가 쇠미해진 틈을 엿보고서 일어나 황제가 되어 몇 세대를 전했는데, 조만(曹瞞)8)이 유궁후예(有窮后羿)9)와 왕망(王莽)10) 을 이어 잠시 신성한 기물을 훔쳤다. 그러나 촉한(蜀漢) 소열황제(昭烈皇 帝)11)가 의기를 떨쳐 잘 끝마쳤으니, 총 몇 년이다.
1) 만이(蠻夷): 중국 황화문명권을 중심으로 동쪽의 오랑캐를 夷, 서쪽의 오랑캐를 戎, 남쪽 의 오랑캐를 蠻, 북쪽의 오랑캐를 狄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사방의 오랑캐를 가리키는 의미로 쓰였다.
2) 중하(中夏): 중국 황하문명권을 가리킴, 中華 또는 華夏라고 한다.
3) 춘추의 대일통(大一統): 공자가 나라 역사를 취해 微言大義를 붙여 춘추를 저술하면서 드러낸 크게 하나로 통일된 문명권을 말하는 것으로, 天命을 받은 천왕(天王:天 子)이 모월을 正月로 하는 책력을 만들어 천하에 반포해서 하나로 통일되게 하는 것을 가리 킨다.
4) 황극(皇極): 서경 「洪範」에 보이는 말로 大中至正한 큰 표준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는 天王을 가리킨다.
5) 기년(紀年): 세월 또는 年歲를 가리킨다.
6) 삼황(三皇):伏羲,神農,黃帝를 가리킨다.
7) 삼왕(三王):夏나라 禹王, 商나라 湯王, 周나라 文王·武王을 가리킨다.
8) 조만(曹瞞): 후한의 정승으로 삼국시대 魏나라를 세운 曹操를 가리킨다. 조조의 어릴 적
이름이 阿瞞이었기 때문에 그를 비하하여 부른 칭호이다.
9) 유궁후예(有窮后羿): 夏나라 때 활을 잘 쏘던 인물로 하나라 임금 相을 내치고 천자의 자리를 찬탈한 인물이다.
평화의 사도 대동이족 묵태의 후손 송나라 사람 묵자 그의 후손 묵희가 이런글을 남겼다는 것도 대단하고 이글을 쓴 권윤 또한 의병장 권상순과 일가일 것이고 더구나 이 엄중한 시기에 나타난 것은 만족정신의 준엄한 명령이 무엇인지 알려주려는 열성조가 알려주는 신의 계시이다. 바로 준동하는 토왜박멸이라는 것이다. 사진 MBC
정확히 100년전 1924년 8월은 일제강점기의 최고 전성기여다. 3.1운동 이후 상해임정성립과 만주독립군의 무장투쟁이 한창이지만 국내는 이른바 댜이쇼(大正)데모크라시와 이른바 문화정책으로 일제의 경제와 문화가 식민지청년들을 혼미하게 하던 시기에 좌절하지 않고 조국의 독립을 염원한 이 문장은 포기를 모르는 끈기의 韓流정신이 민초들의 의병활동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리산 천왕봉에 새긴 이 글자는 이후 우리의 힘으로 독립을 이루지 못한 댓가로 피의 계곡이 되니 이 또한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척양척왜의 정신이 저 피울음의 애국열사들의 각인으로 우리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그것이 우리에 핏속에 흐르는 오상(五常)의 정신이고 이는 토왜(土倭)가 준동하는 시점에서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할 것이다. (글 권오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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