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폐기되는 물건들이다. 우리가 사는 집도 예외는 아니다. 주택의 대부분은 공업적으로 생산된 규격품을 조립해서 만드는 대체 가능한 개체로서의 집이다. 일본의 경우는 연간 약 10만 호의 주택이 해체되고, 이 가운데 재료의 60퍼센트가 쓰레기로 폐기되는데, 이러한 주택 폐기물은 전체 산업 폐물의 37퍼센트에 해당한다. 이를 보더라도 일본의 주택이 얼마나 환경 파괴적인 '패스트 하우스(fast house)'인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슬로 하우스'란 대체 어떤 것일까? 그것을 생각하는 데 좋은 힌트가 되는 것은 '스트로베일 하우스(straw-bale house)'다. 이 집은 짚으로 만든 블록을 쌓아서 짓는다.
스트로베일 하우스는 최근 몇 년 사이 북미나 호주 등지에서 궁극의 친환경 주택으로 불리며 크게 각광받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발군의 단열성이다. 일반적인 고단열 주택에 비해 두 배에서 세 배 이상의 단열성을 자랑한다. 내가 머물렀던 멜버른 근처의 스트로베일 하우스의 경우, 한겨울 바깥 기온이 5도일 때 실내 온도는 40도였다. 반대로 40도에 이르는 한여름 날씨에도 실내는 냉방이나 블라인드 없이도 24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단열성과 함꼐 방습성, 방음성도 뛰어나서 에너지를 적게 소비하고도 쾌적한 생활이 가능해진다.
건설 단가 역시 상대적으로 싼 편이다. 주요 소재인 짚을 생산하는 데 오랜 세월이 소요되는 나무와 달리 매년 식량 생산의 부산물로 얻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논이나 밭이 있는 곳이라면 현지에서 소재를 조달할 수도 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최근까지 수확한 후의 볏짚을 소각 처리해 왔으나, 대기 오염 방지법으로 인해 난관에 부딪치게 되자, 이를 계기로 스트로베일 하우스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내구성, 내진성, 방충성도 북미와 호주에서 검증을 거쳤으며, 이미 일부 주에서는 법적으로도 허가되었다. 화염 방사기에 의한 연소 실험에서도 난연성을 검증받은 바 있다.
또한 건축 방법이 비교적 단순해서 전문가가 아니어도 쉽게 설계나 건설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스트로베일 하우스의 미덕이다. 내가 캘리포니아 주에서 보았던 스트로베일 하우스는 대부분 주인이 직접 설계와 시공의 중심 역할을 맡았으며,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짓고 있었다. 건설 중인 2층짜리 아치형 주택은 고에너지 소재인 시멘트를 피하고 대신 돌을 쌓아 토대를 만들었으며, 나무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쪽으로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 집의 경우에도 주인이 주말을 이용해 직접 짓고 있었으며, 우기에는 건설을 중단했다가 건기가 되면 다시 재개하는 식으로 유유자적한 집 짓기를 하고 있었다.
지난 날의 가옥이라는 것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고 모든 동물들의 보금자리가 그런 것처럼, 스트로베일 하우스는 그 지역의 땅에서 난 자연 소재로 만들어지고 언젠가는 다시 그 땅으로 돌아간다. 스트로베일 하우스는 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금 깨우쳐 주고 있다.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