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빛은 예언처럼 다가오고 외 1편 / 박민서

흰빛은 예언처럼 다가오고 외 1편 / 박민서 흰빛은 예언처럼 다가오고 거리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있고 모두 반쪽의 얼굴이다 먼지는 과묵한 청부업이고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세계대전이다 사막에 쓰러진 얼굴 위로 모래가 서서히 덮인다 숨 쉬는 구멍마다 먼지를 채운다 지나가는 먼지의 계절이다 누워 있는 머리카락에서 자꾸만 꽃이 피고 고요한 수의처럼 덮이는 먼지, 열린 바지주머니를 지우고 신발을 지운다 국경이 폐쇄되고 마스크의 역사가 얼굴을 지배한다 바이러스는 입을 벌린 채 무덤으로 끌어들이고 발목이 묶인 여행객들은 어둠을 생각한다 입을 덮어놓은 마스크 속에서 떠들고 싶은 간질거린 시간들, 사람들은 표정의 말을 볼 수 없다 입을 틀어막는 장례가 뿌옇다 입을 틀어막는 예언이 목이 아프다 먼지를 보면 마지막 죽어 가는 표정들이 묻어 있다 누워 있는 사람의 얼굴을 다 뜯어 먹고 배를 채웠다 싶으면 다른 나라로 옮겨 갈까 사막의 꼬리를 건들지 않으려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얼굴을 들키지 않으려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다 유리 마스크를 쓴 액자가 덜커덩거린다   귀환 오색 깃털 원앙은 어느 항공사의 문양 붉은 어린 부리와 흙색 부리가 결합한다 칠월, 웜홀 주위를 빙빙 또는 것이 도킹하는 우주선 갈다 솜털의 고립 낮은 풀숲이나 물가의 주변을 물어 나르는 새는 번식 중 나무의 중간 높이에 집을 마련한다 허공에 문 지상과 하늘이 닿을 수 없는 지점에다 하늘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부화의 두께가 얇아지고 조금씩 날갯짓 포섭이 넓어지는 둥지 안에서의 시간 나무속에 열매를 숨기는 어느 새의 귀환을 위해 계절마다 나뭇잎 색깔을 바꾸고 날개에서 시작된 소리가 부리 끝을 열고 나간다 풍선 하나 들고 있는 아이의 손이 새들의 출발점 손에서 풍선을 놓는 순간과 새의 첫 날개가 둥지에서 떨어지는 순간이다 가본 적 없는 땅 밑 기지로 귀환하는 어린 새끼들 근처 흐르는 물소리를 따라가는 새들의 행렬 하루에도 수십 번 도킹하던 우주기지가 팅 비어 있다   박민서_2019 시산맥 등단.   《2023 모던포엠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