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로지 기적만 제공하니, 기적이 내게 돌아오게 하려 하기 때문이다.
1.
아버지, 기적은 당신께서 당신의 아들인 제게 주시는 선물을 반영합니다.
그리고 제가 주는 모든 기적은 제게 돌아와, 사랑의 법은 보편적임을 상기시킵니다.
이곳에서조차 기적은 제대로 작동함을 인지할 수 있는 형식을 취합니다.
제가 주는 기적은 제가 지각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바로 그 형식으로 제게 돌아옵니다.
아버지, 하늘에서는 이와 다르니, 거기에서는 아무런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 땅에서는, 기적이야말로 제가 줄 수 있는 다른 어떤 선물보다도 당신의 선물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저로 하여금 오늘 오로지 이 선물만 주게 해주십시오.
참된 용서로부터 태어난 기적은, 당신을 기억하기 위해 제가 걸어야 하는 길을 밝혀줍니다.
2.
오늘 구하는 모든 마음에게 평화가 있기를!
지친 세상을 축복하기 위해 빛이 와서 기적을 제공한다.
오늘 세상은 쉴 수 있을 것이니, 우리가 받은 것을 세상에게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
[예수의 추가 설명]
이곳에서 그대가 할 일은 기적심을 갖는 것이다.
기적심은 증오, 분리, 두려움을 제공하는 대신에, 사랑, 합일 및 연결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물리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먼저 그대 자신의 마음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으며, 또한 거기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그대는 자신이 사람들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는지, 사람들에 대해 무엇을 느끼는지, 사람들에 관하여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살펴야 한다.
일이 이루어져야 할 곳은 바로 그곳이다.
기적이 일어나는 곳도 그곳이다.
기적은 기적심을 가진 존재 안에서 일어난다.
기적은 마음이 변하고, 사고 과정이 치유된 다음에 일어나는 물리적인 행위이다.
일단 마음이 치유되면, 자연스럽게 행위가 뒤따른다.
마음이 치유되지 않으면, 행위는 스트레스와 갈등을 야기할 것이다.
보다 영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마음 안에 분열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분열이 일어남은, 그대가 믿지 않는 방법으로 행동하도록 자신을 강요함을 의미한다.
이런 행동을 그대의 세상에서 많은 사람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체크하지 않으며, 실제로 행동을 영원히 바꾸는 것은 생각임을 알지 못한다.
식습관을 바꾸려고 애쓰는 누군가에게서 그런 점을 볼 수 있다.
.그 사람은 즉시 결과로 달려갈 것이다.
다시 말해, 계속 선택하고 있는 음식, 체중을 불리는 그 음식으로 달려갈 것이다.
결과를 바꾸려 노력할 테지만 고작 한 동안만 그렇게 할 수 있을 뿐이다.
체중을 줄이거나 늘리고자 한다면 먼저 마음을 바꾸어라.
달성하고 싶은 것에 대한 영화, 다큐멘터리나 동영상을 보기 시작하라.
아주 멋진 육상 선수에 대한 비디오를 보라.
그대는 육상선수가 아니기에 그 세계가 전혀 친숙하지 않겠지만, 말하자면 더 건강해지기 위해 정보를 시청할 수 있고 건강한 이들에게서 배우기 시작할 수 있다.
그대의 행위나 신체 구조로부터는 그것을 배울 수 없을 것이 자명하다.
몸의 구조에 대해서는 배우지도 않았으며,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재프로그래밍하고 새로운 정보를 얻음으로써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말하자면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그대의 마음은 늘 하던 것으로, 늘 알던 것으로 돌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에고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에고는 개선을 추구하지 않는다.
에고는 같은 것을 구한다.
따라서 건강하지 않은 습관이 형성되면, 건강하지 않은 행위 안에서 에고의 선택을 볼 수 있다.
어디서든, 어떤 방법으로든, 어떤 이유로든 에고에게 그럴 듯하게 보인 것이다.
에고의 목적은 몸을 살아있게 유지하는 것임을 기억하라.
에고는 건강하게 되기를 원치 않는다.
사실 에고는 그대가 장기적으로 살아있는 것도 원치 않는다.
에고는 아주 짧은 기간에만 초점을 두는 의식의 측면이다.
에고는 이렇게 말한다.
“내 앞에 음식이 있다면 나는 먹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 시간 후에는 음식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음식을 먹지 않으면 한 시간 후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그야말로 아주 단기적인, 두려움에 기반한 믿음이다.
믿음은 뇌, 마음, 에고 마음의 아주 원초적인 부분이다.
보다 진화한 높은 진동의 마음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곳곳에 충분한 음식이 있다.
지금 당장 과식할 필요가 없으니, 나는 그 장기간 과식에 따른 결과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내 교육과 내 지성에 비춰볼 때, 언제라도 저 음식을 먹을 수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조금 먹고, 나중에 배가 고파지면 다시 더 먹을 수 있다.
지금 배를 채울 필요는 없다!”
우리는 몸무게나 음식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그대의 사회는 이 주제에 관하여 매우 왜곡되어 있으며, 많은 이가 음식을 통하여, 특히 마케팅 시스템을 통하여 오도(誤導)되고 있다.
기적은 그대의 마음에서 시작한다.
그러므로 거기서 시작하라!
보다 큰 선(善)과 사랑으로 일치하지 않는 것, 그리고 시간을 두고 바꾸고자 하는 것에 대한 그대의 마음을 바꾸기 시작하라.
...
[알렌의 설명]
오늘 레슨의 기본적인 생각은 어제 레슨과 같습니다.
내가 주는 것은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서 나는 오늘을 시작할 때, 매일을 시작할 때 오직 내가 원하는 것, 기적만을 주겠다고 결심합니다.
기적을 준다는 것은 나의 형제들에 대한 환상 너머를 보겠다는, 그리고 그들을 실제로 있는 그대로 신이 창조하신 이들로 보겠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형제가 스스로에 대해 가진 제한된 에고로서의 이미지, 몸 안에 갇힌 작은 조각으로서의 이미지를 받아들이거나 지원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 대신에 나는 형제를 한계 없는, 영광스럽고 장엄한 영적인 존재로 봅니다.
텍스트 8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네가 어떤 형제를 육체적인 개체로 바라볼 때 그의 권능과 영광이 너에게 상실 되며, 따라서 너 자신의 권능과 영광도 너에게 상실된다.
너는 그를 공격했지만, 그 전에 먼저 너 자신을 공격했음에 틀림없다.
너 자신의 구원을 위해 그를 이런 식으로 보지 마라.
너의 구원은 그에게 그의 구원을 가져다 줄 수밖에 없다.
너의 마음 안에서 그가 스스로를 왜소하게 만들도록 허락하지 말고, 오히려 그를 왜소함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해방시켜라.
그럼으로써 너 자신의 왜소함에 대한 믿음에서 벗어나라."
이것이 기적을 주는 것입니다.
형제를 그가 스스로를 보는 제한된 방법으로 보기를 거절하는 것, 형제를 위해 형제 안의 그리스도를 보는 것.
그러므로 기적은 나와 형제 모두를 축복합니다.
내 마음이 환상으로부터 치유될 때, 그것은 형제에게 반영되고 그의 마음에 빛을 가져다줍니다.
나는 형제에게, 자기 자신을 신이 창조하신대로 볼 기회를 줍니다.
사랑의 법칙은 보편적입니다.
심지어 여기에서도, 사랑의 법칙은 그것이 작동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볼 수 있는 형태를 취합니다.
어제 레슨은 사랑의 법이 “내가 형제에게 주는 것은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법이 여기에서 취하는 형태는 무언가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법은 그저 추상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형태를 취합니다.
구체적으로 됩니다.
내가 형제들에게 기적을 제공할 때 기적은 나에게 돌아오지만, 내가 그들에게 제공한 것과 정확히 똑같은 형태가 아니라, 내가 지각하는 대로의 나의 필요를 충족하는데 필요한 형태로 돌아옵니다.
천국에는 어떤 필요도 없습니다.
여기 지상에서 나는 필요들을 지각하며, 또한 사랑의 법칙은 나의 지각에 맞춰 조정됩니다.
나는 깊은 용서의 행위로, 또는 지나치는 사람에게 “당신은 사랑받고 있어요.”라는 메시지를 담은 미소로 기적을 줄 수 있습니다.
나는 친절함을 담은 몸짓으로 공손함을 보여줌으로써, 존중을 표현함으로써, 배려의 몸짓으로 기적을 제공합니다.
형태가 어떻든 그 메시지의 내용이
“당신은 사랑받고 있어요.
당신은 가치 있어요.
당신은 결백합니다.”라면, 나는 기적을 제공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적은 내게 돌아올 것입니다.
아버지, 저로 하여금 오직 형제들에게 기적을 제공하려는 결심을 하고 오늘을 시작하게 하소서.
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다음과 같이 말하게 하소서.
<오늘, 구하는 모든 가슴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지친 세상을 축복하기 위한 기적들을 주기 위해 빛이 왔습니다.
오늘의 분주한 일상으로 발을 내딛기 전에, 저로 하여금 잠시 멈춰 제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갈구하는 마음들에게 평화를 주며 시간을 보내게 하소서.
저의 그런 노력은 이제까지 허비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주려하는 만큼 받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