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쫓던 개 / 최종호
교감으로 발령 받은 첫해 9월의 일이다. 기간제 교사였던 여 선생님이 신규교사 발령이 나서 그 자리를 채워야 했다. 교감의 업무는 크게 학사와 복무, 인사인데 그중에 인사와 관련한 업무가 만만치 않다. 승진하기 전에는 해 보지 않은 행정 업무인데도 그 절차에서 조금만 어긋나도 민원이나 감사의 대상이 되기에 부담도 크다. 특히, 교원을 뽑는 일은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롭다. 내부 결재, 채용 공고와 면접을 거쳐 경찰서에 범죄 사실 유무를 확인한다. 경력 서류를 받아 호봉을 책정하고, 교육청에 보고하며 업무 시스템에 등재도 해야 한다. 2학기가 되면 기간제 교사를 구하기는 일은 더 어려워진다. 예비 교사가 임용 고사를 준비하느라 지원하지 않아서다.
무턱대고 채용 공고를 내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선발할 가능성도 있다. 그 여교사가 영어을 전담했기에 원어민과 대화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수업이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은 임용 대기자 중에서 뽑는 것이다. 복잡한 서류 대신 임용 대기 확인서만 받으면 되니까 서류도 간소하다. 더구나 젊고 패기 넘치는 교사일 가능성이 높다. 요즘 젊은 세대는 영어도 잘한다. 경력이 없으니 호봉 책정은 하고 말 것도 없다. 이런 이유로 그 여교사에게 후임자를 알아 보라고 부탁했다. 이왕이면 발령 대기자 중에서도 순번이 뒤에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근무하다가 발령이 나면 또 구해야 하는 불편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며칠 뒤, 남자 후배에게 부탁하여 어렵게 허락을 받아 냈다고 했다. 기간제 교사 채용 지침대로 도교육청과 군교육청 그리고 학교 홈페이지 이렇게 세 곳에다 공고를 냈다. 내정했더라도 채용 절차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통 공고 기간은 1주일이지만 이처럼 학기 중간에 발령이 나서 긴급하게 뽑아야 할 상황에서는 3일이어도 된다.
그런데 공고를 낸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남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소리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중년쯤 된 듯했다. 그는 거주할 관사는 있는지, 여의치 않으면 가까운 곳에 월세방이라도 얻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당혹스러웠다. 이미 약속한 사람이 있고, 형식적인 절차만 거치는 중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분의 관사도 없다. 가까운 곳에 방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교통도 불편하고, 목포에서 자가용으로도 3~40분이 걸리는 곳에 있는 작은 학교여서 통근하기도 쉽지 않다."라고 하며 지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에둘러 얘기했다.
그런데도 그는 서류를 우편으로 보내왔다. 발송처는 대구였는데 지원서와 경력 증명서가 들어 있었다. 광주교대를 졸업하고 교사를 하다가 그만두고 독일에서 종교 음악을 전공한 후 다시 교단으로 돌아온 분이었다. 공부를 많이 했는데 다시 기간제 교사로 들어오려고 한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지원하지 말라고 에둘러 얘기했는데 설마 여기까지 면접을 보러 오겠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제발 면접을 보러 오지 않기를 바랐다.
면접 당일, 오후에 택시 한 대가 학교로 들어왔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택시를 대절하여 대구에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더구나 면접이 끝나면 그 택시를 타고 되돌아간다고 했다. 무슨 말을 물었는지 자세한 생각은 나지 않는다. 다만 당황스럽고 너무나 미안했다. 그렇다고 아쉬운 소리 해 가며 어렵게 섭외해 둔 교사를 떨칠 수도 없었다. 객관적으로도 젊은이가 여러 면에서 비교우위였다. 다만 미리 내정해 놓고 형식상 면접을 한 것은 부끄러운 짓이 아닌가! 아이들에게 최대한 피해를 줄이려고 한 일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속된 말로 ‘짜고 치는 고스톱’의 희생양이 된 그분께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생활 근거지 가까운 곳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할 텐데 굳이 먼 곳까지 와서 지원서를 냈는지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다. 하여튼 그때의 일을 교훈 삼아 이후에는 미리 내정하여 교사나 강사를 뽑는 일은 경계했다.
사실 2년 동안 여러 번 기간제 교사를 채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3월 1일자로 해남에서 지역이 다른 우리 학교로 전근을 오자마자 출산 휴가를 낸 젊은 여교사 때문이었다. 본가가 있는 광주와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으로 옮기려는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출산 휴가가 예정되어 있으면 지역 간 이동을 자제하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겠는가. 중간에 담임이 바뀌는 일은 아이들에게도 큰 피해가 가는 일이다. 그 교사 때문에 기간제 교사를 채용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 당시 젊은 교사들이 전남에서 근무하다 임용 고시를 봐서 광주로 가 버리는 예가 많았다. 교사 수급 상황에 비상에 걸린 도교육청에서는 실태를 파악하여 보고하도록 공문을 내려보냈다. 해당 교사에게 사실 여부를 묻는 방법 외에 별다른 묘책이 없다. 하지만 ‘그런 일 없다.’라고 하면 그만이다. 그 여교사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그럴 계획이 있느냐고 묻는 말에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결국 2년 동안 단 하루도 근무하지 않고 광주로 가 버렸다. 어쩌면 육아 휴직을 핑계 삼아 임용 교시 공부를 하지 않았나 싶었다. 그러고도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정교사 없이 기간제 교사로 버틴 학교나 아이들에게 당연히 미안해 해야 한다. 자기 이익에 충실한 그 교사의 처사가 꽤 오래 마음에 남았다. 염치를 아는 교사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 이런 교사를 만난 아이들은 무얼 배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