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내가 바라던 삶이야." _ 무릎
나의 배우자의 어머니 캐시(Kathy)는 미국 북부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다. 지난 1월, 코로나19 확산으로 해외입국자 격리가 필수요건이 되었을 때, 캐시는 열흘간의 격리도 마다않고 한국을 방문했다. 생후 2개월 된 새 손주를 품에 안아보고, 2년 동안 못 만나는 사이 훌쩍 커버린 두 손주와 매일 밤 같이 잤다. 리조(Lizzo)의 음악을 좋아하고,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캐시와 와인 한 잔 하며 긴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빠르게 2주가 흘렀고, 캐시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내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나는 캐시에게 긴 문자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아들의 배우자와 함께하는 인터뷰가 불편하진 않을까 습관처럼 잠시 고민했지만, 흔쾌히 승낙하는 답장이 왔다. 그래 맞아, 캐시는 나와의 첫 만남에서 스스럼없이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던 사람이었지. 시차 때문에 이른 아침 영상통화로 캐시를 만났다. 캐시가 있는 곳은 늦은 오후, 얼음이 든 음료가 화면에 비추어질 때마다 무얼 마시고 있나 궁금했지만 끝내 묻지 못했다. 묵묵히 캐시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불타오르는 브래지어를 보고 자란 아이
캐시는 1961년, 네브래스카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60년대 미국에서 여성 해방 운동이 활발히 일어났고, TV에서 브래지어를 태우는 장면을 봤다. 왜 여자는 브래지어를 입어야 하는가, 왜 가사노동을 다 여자가 해야 하는가 외치는 여성들의 태도를 보면서 자랐다. 어린 시절 캐시의 집에서 여자 아이들은 집안일을 하고 남자 아이들은 마당일을 했다. 남자들은 잔디를 깎거나 눈을 치울 때에만 일을 하고, 여자들은 매일 일을 해야 했다. 불공평해 보였고, 화가 났다. 여성의 평등에 대해 늘 강하게 정의감을 느꼈다. “그래서 내 아이들은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일을 함께 하도록 했어.”
열다섯 살에 임신을 하다
처음 임신인 걸 알았을 때 너무 무서웠다. 임신 7개월이 넘을 때까지 엄마에게 어떻게 말해야할지 몰랐다. 리바이스 청바지에 배를 구겨 넣고 매일 학교에 갔다. 바지를 벗으면 배가 불룩 튀어나왔다. 어느 날 편지를 써놓고 학교에 갔더니 엄마가 학교로 전화를 했다. 캐시의 목에 걸려있던 목걸이가 심장박동에 맞춰 오르락내리락했다. 캐시를 집으로 데려온 엄마는 ‘아빠가 누구냐’고 물었다. 성인 남성, 오빠의 친구라고 대답했다. 그때 처음으로 엄마는 캐시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 후로 엄마랑 매우 친해졌다. “엄마는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어.”
매우 안 좋기도 매우 좋기도 했던 어린 시절
캐시의 아빠는 엄마와 결혼한 지 14년이 지난 후 게이라고 커밍아웃했다. 남자친구를 집으로 데려와 1년 반 동안 한 집에서 살았다. 엄마는 그들에게 친절했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네가 우리 엄마를 만나봤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보이던 캐시는 양쪽 조부모님의 농장에 놀러가던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며 어떤 부분에서 매우 좋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매우 안 좋기도 했지만. 아빠의 남자친구가 오빠를 성추행했다. 그가 자신의 음경을 보여줬고, 그 사건은 오빠를 성애화해서 캐시와 동생들에게 성적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정신질환이 있었던 아빠는 자살했다.
네브래스카에서 캘리포니아로
아빠가 돌아가신 후 엄마가 어떤 남자랑 결혼했는데 다 엉망이 됐다. 캘리포니아로 이사했고, 새 아빠는 캐시와 동생들을 성폭행하려고 했다. 엄마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끔찍했다. 캐시는 17살이 되었을 때 다시 임신했다. 사실을 알게 된 새 아빠가 캐시를 집에서 쫓아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됐기 때문에 갈 곳이 없었다. 섹스를 함께한 친구의 할머니 집으로 갔다. 그 친구는 양부모의 학대를 피해 할머니 집에 살고 있었다. 하루 종일 담배 연기 가득한 곳, 매우 작고 지저분한 그 곳의 소파에서 아기를 데리고 잠을 자며 7주를 보냈다.
스스로 결정하지 않은 길을 헤쳐나가며
그 이후에 엄마가 캐시를 찾아와서 도와줬다. 캐시가 성인은 아니지만 부모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의미의 서류를 작성해서 정부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다. 캐시 혼자 아이들을 돌보며 지내다가 한 남자를 만났다. 어느 날 우편배달부가 캐시의 집에 남자가 산다고 신고했다. 같이 사는 남자가 있으면 부양은 그의 책임이라고 보조금을 주지 않았다. 결혼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생길 거라는 말에 덜컥 겁이 나서 결혼했다. 두 아이를 낳고 캐시 혼자 일하며 생활고를 겪었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강가에서 노숙하기도 했다. 결국 캐시는 그를 떠났다. 그가 약물중독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내 삶엔 스스로 계획하고 결정한 일이 없었어.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며 헤쳐 나갈 뿐이었지.”
일곱 아이의 엄마가 되다
16세에 첫째 아이를 낳고, 31세에 일곱 째 막내를 낳았다. 넷째를 낳을 때까지 임신은 캐시에게 축복이 아니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우울하기도 했다. 남편과 이혼 후 만난 조(Joe, 나의 배우자의 아버지)와 사랑에 푹 빠져서 다섯째 임신을 했을 때, 임신을 확인하기 전부터 임신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항상 피곤하고, 많이 힘들었다. 아이들이 많은 만큼 걱정도 많았다.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추억을 만들 수 있어 좋았다. 똑같은 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사람
막내가 2살이 되었을 때 대학에 다니면서 일을 시작했다. 성폭력 피해자와 병원에 동행하여 돕는 활동과 학교에서 10대들과 성폭력/가정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봉사활동을 했다. 점점 일이 늘어나서 전체 프로그램 책임자가 되었다. 석사학위가 없는데도 전문가로 인정받아 지역 대학에서 몇 년간 강의했다. 캐시는 그 일을 너무 사랑했다. 자기가 당한 일 때문에 엄청난 수치심을 가지고 사는 피해자들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줄 수 있어서 좋았다.
편안하고 즐거운 할머니의 삶
캐시는 어렸을 때부터 나이가 들어 다정한 파트너가 옆에 있는 삶을 기대해왔다. 캐시는 지금이 그 순간인 것 같다며 이틀 뒤 파트너와 비행기를 타고 LA에 간다고 했다. “우린 같이 즐거운 일을 해. 가을엔 아일랜드에 갈 거야. 좋은 삶을 살고 있어. 행복해.”
한 시간 반으로 60년 삶의 긴 이야기를 다 듣는 건 불가능했다. 더 묻고 싶어도 묻지 못한 이야기가 남았지만 상관없었다. “지금이 내가 바라던 삶”이라며 눈물을 훔치는 캐시와 기쁜 마음으로 함께 울 수 있어서, 이 정도면 됐다며 끝인사를 나누었다.
첫댓글 포기하지마세요 ㅎㅎ 글 기다릴게요 :)
고맙습니다 덕분에 포기하지않고 드뎌 끝냈어요!!
세상에 너무 좋아요. 김윤아의 강을 들으며 지금 읽었는데, 저녁 노을로 강물이 반짝이며 일렁이는 것 같았어요. 울컥했어요. 눈시울이 뜨거워졌어요. 무릎의 인터뷰 낭독도 듣고싶어요.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자마자 세라 스마시가 쓴 <하틀랜드> 가 생각났어요. 작가 엄마와 할머니가 겪었던 임신과 남편들과 독립적인 삶과 결혼생활에서 얻고자 했던 것. <지금이 내가 바라던 삶>이라는 말을 나눌 수 있어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