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이 눈이 부시다 / 한권종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중학교에서 경험했던 것보다 어려운 일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시골 중학교에는 가르치는데 열정이 부족한 선생님들이 가끔 계셨는데 그분들이 가르친 과목이 영어와 과학이었다.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은 출근도 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고, 교실에 오셨어도 자습을 하는 일이 많았다. 이 문제가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어려움을 주었기에 아쉬움으로 남는다. 농촌 중학교를 졸업하고, 강원도 영동지방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진학하는 학교에서 학업을 따라가기란 어려움이 많았다. 담임 선생님이 친구들과 학력 차이가 심하니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리라 하였다. 가정 형편을 알기에 말씀드리지 않았고, 스스로 극복할 용기도 없는 상태로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하굣길에 하루 동안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가슴이 아팠다. 옆에 친구들이 있으나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외톨이가 되어 있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나를 믿고 기다려준 부모님의 도움으로 변화가 생겼다. 2학년이 되어 사회 교과목이 많아지면서 조금씩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꾸준한 노력으로 3학년 때부터 성적이 상위권에 진입하였다. 대학 입학 전형에서 3학년 내신 성적만 반영하여 다행이었다. 하지만 친구들이 대학 진학을 생각하고 있을 시기에 나는 행정직 공무원시험(현재 9급)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대학에 가고 싶다는 말은 할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아버지도 고민을 많이 하고 계셨다. 아버지는 내가 다닌 학교가 대부분 학생이 대학에 진학한다는 이야기는 시내로 시집을 간 고모에게 들어서 알고 계셨다. 고민을 많이 하던 아버지는 막내의 대학 진학을 허락해 주셨다. 내가 대학을 다닐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희생과 소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생활비가 부족하여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면서 잘 견딜 수 있었다. 결국, 내 직업은 아버지가 결정해주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등록금이 가장 싼 국립 사범대학에 진학해야만 했다.
군대에서 전역 후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하였다. 발령받을 때까지 하는 일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대화에 오르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님이 알게 되었다. 공부를 잘한다고 소문만 무성했지 취업도 못 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농촌 사람들은 남의 사정을 잘 모르면서 자기 생각을 쉽게 말한다. 아버지는 집에서 책이나 읽으라 했지만, 부모님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으로 생활하던 나는 소문은 신경쓰지 않고 계속 농사일을 하였다. 발령 소식을 듣던 날 나는 아버지와 감자를 캐고 있었다. 아버지는 발령 소식을 듣고 기뻐하지 않아 당황했는데 사실은 너무 좋아서 울고 계셨다. 저녁에 아버지는 교사가 되었으니 남의 자식들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일러주었다. 교사 생활을 하는 동안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면서 학생들과 공감하는 교사가 되었다. 외톨이 경험이 있는 교사로서 학생들의 심리적 어려움을 도와주고자 하였기에 보람도 있었다.
후배 교사들과 함께할 기회가 있으면 가르치는 사람은 경험이 무척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우리는 경험에서 대화의 소재를 만든다. 여러 경험을 하다보면 자신을 변화시키는 순간이 생기고, 이런 경험은 교사에게 매우 중요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유익한 경험을 하는데 투자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간접 경험으로는 독서를 권했고, 독서 동아리 활동도 소규모로 진행하였다. 신규 교사들과 만남에서 ‘카우아이섬의 종단연구’의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의 중요성을 말했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하기에 기뻤다.
나는 시간을 보내는 데에 선택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은퇴 후에 나타난 변화이다. 30년간 직장 생활도 즐거웠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할 일이 많았는데 이제는 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여유로움속에서 도청 옆에 있는 한옥 마을 대지에서 텃밭을 가꾸고 있다. 가끔 가지만 노동을 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수확물을 나누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다. 처가 부근에 사는 할머니들의 일손을 돕는 일도 가끔 생긴다. 할머니들로서는 힘든 일이지만 내가 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아닌 단순 노동이 대부분이다. 하루하루가 즐거운 시간으로 채워지니 날로 새로움을 느낀다. 이러한 삶이 가능하도록 등허리가 굽어지는 희생으로 가르친 아버지에게 감사하다.
첫댓글 소소한 행복을 누리시는 기쁨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단순한 삶에 반성도 하고 있습니다.
한옥에서 제 2 인생을 찾으셨군요. 할머니들 좋아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한옥은 없고 처형 소유의 대지에서 농사만 하고 있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보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지는 따뜻한 글이네요. 선생님도 아버지처럼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시네요.
가르치는 사람은 경험이 중요하다는 데 동의합니다. 은퇴 후 즐거운 생활 응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와우!
선생님, 글이 겁나게 좋아졌어요.
저도 무산계급 출신인데 지나고 보니 교직 생활 하는 데는 오히려 장점이더라고요.
말하지 않아도 아이의 어려움이 저절로 읽혀졌지요.
분명 좋은 선생님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제2의 인생은 글쓰기로 더 풍요로워지겠습니다.
그동안의 노고로 만들어 낸 결실이라 생각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