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이민 2기 237. 한적한 시골 길
우리 차를 몰고 나갈 때면 대부분 죠셉이 운전을 하게 된다.
이 곳에서는 거의 대부분을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내가 운전을 할 기회가 거의 없다.
기껏해야 매 주 한 번씩 수사님들의 한국어 수업을 하기 위해서 나 혼자 수도원을 찾아 갈 때 유일하게 내가 운전을 하고 간다.
그런데 사실 함께 차를 타고 나설 때마다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길은 대부분 2차선이고 요즘들어 4차선으로 확장 공사를 했다고 해도 양쪽 옆길엔 장애물이 많다.
서 있는 차, 튀어 나온 큰 나무, 가끔씩은 길가에 쌓아 놓은 코코넛 더미들... 갓길로 차가 달리기엔 안전하지 않다.
게다가 심하게 매연을 내뿜는 지푸니라도 만나면 추월할 수 있을 때까지 꼼짝없이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가야 한다.
지푸니는 그래도 낫다. 트라이시클은 시도 때도 없이 좁은 틈을 헤집고 들어와서 위험천만하게 앞을 가로막거나 요리조리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
그러니 우리 차도 반대 차선이 비기만 하면 재빨리 추월을 시도하게 마련이다. 어쩌랴?
이 곳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것은 우리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다. 우리 차가 아니면 발이 묶인다.
마닐라나 알라방 등 큰 도시에 나갈 땐 정규 노선 버스를 탈 수도 있긴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대로변에 몇 군데 있는 버스 정류장까지 우리 차를 타고 찾아가야 하고 버스의 노선을 확인하는 것도 우리에겐 낯설고 힘들다.
이 곳 사람들은 대부분 노선 별로 지푸니를 세워서 타거나 노선이 아닌 길은 택시처럼 트라이시클을 이용한다.
몇 년씩 살아온 우리지만 지푸니의 노선도 잘 모르겠거니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트라이시클을 잡아 탈 용기도 없다.
그러니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이 우리 자가용이다.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정신을 차리고 강박감 속에 달리는 게 대부분인데 그런 중에도 가끔씩은 즐기는 드라이브도 있다.
아무 할 일도 없는 오후엔 가끔씩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한적한 길을 골라서 남편과 함께 느긋하게 돌아보는 것이다.
낮은 산 하나 없이 이어지는 벌판 속에 망고나무는 늘 배경처럼 보이고 어느 곳엔 코코넛 나무가 빼곡하다.
들판 어디쯤에 나타나는 길가의 허름한 집들. 집보다 화려하게 담벼락을 치장한 보간빌리아 꽃무더기들.
천진하고 해맑게 웃으며 놀고 있는 아이들. 들판 저만치 한가로운 흰 소와 백로들.. 하늘 가득 피어나는 하얀 뭉게구름...우린 볼 게 많다.
계절을 가늠할 수 없는 이름 모를 꽃들이 펼쳐진 들길을 천천히 달리며 나는 사진을 찍어댄다.
혹시 내 그림의 소재가 될까 해서다. 글을 쓰는 대신 그림을 그리겠다고 한 지가 언제인데 이젠 그 열정마저도 식었나보다.
도무지 그릴 만한 , 아니 그리고 싶은 사진 한 장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유로운 이런 드라이브의 시간은 내 마음 속에 여운으로 남는다. 그림보다 더 아름답고 생생한.
첫댓글 글 솜씨는 물론 사진 실력 또한
대단 하신데
거기에 그림까지? ...................................
사람이 사는데는 인적이 보이고
늘 생각하게 만들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