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 / 韓 江 <2024. 10. 16>
문득 외할머니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얼굴이다.
사랑이 담긴 눈으로 지그시 내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손을 뻗어 등을 토닥 이는 순간.
그 사랑이 사실은
당신의 외동딸을 향한 것이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등을 토닥인 다음엔 언제나 반복해 말씀하셨으니까.
엄마를 정말 닮았구나. 눈이 영락없이 똑 같다.
외갓집의 부엌 안쪽에는 널찍하고 어둑한 창고 방이 있었는데, 어린 내가 방학 때 내려가면 외할머니는 내 손을 붙잡고 제일 먼저 그 방으로 가셨다. 천장 서랍을 열고 유과나 약과를 꺼내 쥐어주며 말씀하셨다. 어서 먹어라. 내가 한입 메어 무는 즉시 할머니의 얼굴이 환해졌다. 내 기쁨과 할머니의 웃음 사이에 무슨 전선이 연결돼 불이 켜지는 것처럼.
외할머니에게는자식이 둘 뿐이었다.
큰아들이 태어난 뒤 막내딸을 얻기까지 십이 년에 걸쳐 세 아이를 낳았지만 모두 다섯 살이 되기 전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늦게 얻은 막내딸의 둘째 아이인 나에게, 외할머니는 처음부터 흰 새의 깃털 같은 머리칼을 가진 분이었다. 그 깃털 같은 머리칼을 둥그렇게 들어 올려 은 비녀를 꽃은 사람. 반들 반들 한 주목 지팡이를 짚고 굽은 허리로 천천히 걷는 사람.
대학 1학년 여름 방학에 혼자 외가로 내려가 며칠 머물다 올라오던
아침, 발톱을 깎아드리자 할머니는‘하나도 안 아프게 깎는다...
(네 엄마가) 잘 키웠다고‘ 중얼거리며 내 머리를 쓸었다.
헤어질 때면 언제나 했던 인사말을 그날도 하셨다. 아프지 마라. 엄마 말 잘 듣고
.
그해 10월 부고를 듣고 외가에 내려간 밤, 먼저 내려와 있던 엄마는 나에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 얼굴 볼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손을 잡고 병풍 뒤로 가 고요한 얼굴을 보여 주었다.
유난히 흰 깃털을 가진 새를 볼 때, 스위치를 켠 것 같이 심장 속 어둑한 방에 불이 들러올 때가 있다.
(2024. 10. 16 일자 <조선 비즈에 실린 오은선> 기자의 글입니다.) 맞춤법, 띄어쓰기 등 원문 그대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