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로 솟아 있는 높이 4m 폭 10m정도의 바위면에 각가 삼존불 좌상과 입상을 새겨놓았다. 흔히 선각육존불이라고 부르지만 이는 틀린 말이다. 삼존불좌상은 높이 2.4m의 본존좌상과 2.6m 높이의 협시보살을 음각으로 새겼다. 두광과 신광 그리고 연화대좌도 음각으로 새겼다. 삼존불입상은 높이 2.65m의 본존입상과 높이 1.8m의 좌상협시보살을 새겼다. 특히 협시보살이 무릎을 꿇고 본존을 향해 꽃을 공양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를 윤왕좌(輪王座)라고 부른다.
대체로 삼존불좌상을 석가삼존불로 삼존불입상을 아미타삼존불로 보고있는데 이처럼 하나의 사역 안에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이 공존하는 가람배치 양식은 불국사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다라서 이 삼존불좌상과 입상도 불국사와 같이 동서로 배치된 점으로 보아 불국사가 조영된 이후인 8세기 말에서 9세기 초의 조각이 아닌가 한다.
석가모니불은 사바세계에서 중생들에게 깨달음에 대한 설법을 하시는 부처님이시고, 아미타불은 중생의 사후에 극락세계를 관장하시는 부처님이시다. 중생이 죽으면 서방극락정토로 가기 전에 명부에 들러서 생전의 덕업을 평가받고 선업을 많이 쌓은 사람은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으로 가게 되는데 이때 아미타불께서 직접 마중을 나온다. 이를 내영아미타(來迎阿彌陀)라고 한다. 내영 아미타여래상은 일반적으로 여래가 앉고 협시보살이 서 있는 일반적인 삼존불 구도와는 달리 여래가 서고 양협시보살이 앉는 특이한 도상을 취하고 있다.
삼존불입상의 양협시보살은 여래에게 꽃을 공양하는 모습이다. 공양에는 차공양을 비롯하여 살신공양, 소신공양, 연꽃공양, 향공양, 소리공양 등 여러가지가 있다. 이차돈의 순교는 일종의 살신공양이라 하겠다. 살신공양을 대공양이라고도 부르며 차공양은 헌다(獻茶) 라고도 부른다. 차는 오늘날에는 매우 흔한 음식이었지만 고대에는 매우 귀하고 소중한 음식이었다고 한다. 소리공양이란 사찰에서 종을 치는 것을 말한다.
삼존불좌상과 입상은 자연 암벽을 다듬지 않고, 바위의 크랙을 그대로 이용하여 조각함으로서 주위환경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어 조각가의 창의성이 단연 뒤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바위의 윗면에는 목조가구를 설치했던 흔적이 보이는데 당시에는 이러한 마애불도 법당 안에 모셔졌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조명시설이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에 석각으로 새긴 후에 채색을 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커 보인다.
<2006. 12. 10>
첫댓글 경주 남산 삼릉계곡 선각육존불(慶州 南山 三陵溪谷 線刻六尊佛)은 하나의 거대한 병풍 바위에 선각(선으로 새김)으로 두 조의 삼존불, 즉 총 6구의 불·보살상을 나누어 새긴 독특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한 암벽에 입상 삼존과 좌상 삼존이 사이좋게 나란히 조각된 예는 한국 불교 미술사에서 매우 보기 드문 형태이다.
깊게 깎아낸 입체 석불과 달리, 바위에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 정교하고 유려한 선으로 묘사하여 통일신라시대 불화(佛畫)의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선의 유려함과 인체의 자연스러운 비율, 옷주름 표현 등으로 보아 8세기 후반~9세기 초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쪽에 위치한 삼존불은 연화대좌 위에 서 있는 모습(입상)으로 표현된 석가여래입상과 무릎을 꿇고 앉아서 본존불을 향해 공야하는 자세의 협시보살상이다.
중앙에 커다랗게 새겨진 본존불은 당당한 체구로 연화대좌 위에 직립해 있다.
오른손은 가슴 높이까지 들어 올리고, 왼손은 내려 배 앞쪽에 대고 있는 수인을 취하고 있다.
머리 뒤에는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원형 두광(頭光)이 표현되어 있다.
양 어깨를 모두 감싼 통견(通肩)의 옷주름이 부드러운 곡선 형태로 흘러내려 선각 기법 특유의 유려함이 잘 살아있다.
본존불 좌우에 배치된 협시보살상들 역시 연꽃으로 만든 대좌 위에 앉아서 본존을 향해 살짝 몸을 틀고 있다.
보살상들은 화려한 보관(寶冠)을 쓰고 천의(天衣)를 두르고 있으며, 본존에게 바칠 공양물(연꽃 등)을 손에 들거나 공양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협시보살이 서 있지 않고 본존을 향해 앉거나 꿇어앉아 꽃을 바치는 모습은 한국 불교 조각에서 매우 드문 공양 방식으로, 이 선각육존불만의 독특하고 뛰어난 예술적 특징이다.
좌상 삼존불은 동쪽의 입상 삼존불(본존입상+보살좌상/공양상)과 대비를 이루는 구도로, 본존불은 앉아 있고(좌상), 양 협시보살은 서 있는(입상) 구도를 취하고 있다.
좌상 삼존불의 본존불은 화려하게 표현된 연화대좌 위에 양다리를 꼬고 가부좌(端坐)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오른손은 위로 올려 설법인을 짓고, 왼손은 가슴 앞에 대어 중생에게 설법하는 인상을 취하고 있다.
머리 뒤에는 커다란 연화문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이 둘러져 있으며, 당당하고 안정감 있는 체구와 유려한 옷주름 선이 돋보인다.
양 협시보살상은 동쪽의 꿇어앉은 보살상들과 달리, 연꽃 대좌 위에 서서 본존불을 향해 있는 자세이다.
보관을 쓰고 정성스럽게 본존을 향해 서 있으며, 온화한 표정과 함께 손에는 연꽃이나 공양물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한 병풍바위 안에서 두 삼존불이 서로 대칭·대비되는 독특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동쪽 본존여래는 서 있고, 좌우 보살은 무릎을 꿇고 공양 올리는 모습(입상 본존 + 좌상 협시)
서쪽 본존여래는 앉아 있고, 좌우 보살은 서서 본존을 모시는 모습(좌상 본존 + 입상 협시)이다.
이와 같은 불보살 교차 배치는 동양 불교 미술사에서도 매우 보기 드문 예술적 연출로, 통일신라시대 화공이자 조각가들의 뛰어난 공간 구성 감각과 정교한 선각 기법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걸작이다.
6구 존상들의 정확한 명칭(존명)에 대해서는 통일신라 당시의 명문(각석)이 직접 남아있지 않아, 학계와 학자(미술사학자)에 따라 명칭을 해석하는 견해에 다소 차이가 있다.
가장 보편적인 견해는 석가여래와 아미타여래설이다.
동·서 양쪽의 불상이 설법하는 모습과 공양하는 모습을 각각 나누어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동쪽의 삼존불은 아미타삼존불이며
본존불은 아미타여래입상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서서 오시는 부처)이고
좌우 협시보살은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무릎을 꿇거나 앉아 아미타불에게 연꽃과 공양물을 바치는 보살)이다.
서쪽 삼존불은 석가여래삼존불이며
본존불은 석가여래좌상 (연화대에 앉아 중생에게 법을 전하는 설법인의 석가모니불)이고
좌우 협시보살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본존 좌우에 서서 법을 수호하고 시위하는 보살)이다.
다른 하나의 견해는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설(내세 구원과 현세 기원의 조합)이다.
신라 하대 대중적으로 크게 유행했던 약사신앙과 아미타신앙이 한 바위에 결합된 형태로 보는 견해이다.
동쪽 삼존불이 아미타삼존불 (극락왕생과 내세 구원을 상징)이고
서쪽 삼존불은 약사여래삼존불 (질병 퇴치와 현세의 고통 구제를 상징)이며, 협시보살은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다.
공양보살상처럼 무릎을 바닥에 꿇고 앉은 자세를 이르는 정확한 불교 미술사 용어는 궤좌(跪坐)이다.
부처님께 경의를 표하거나 연꽃·향·꽃쟁반 등의 공양물을 바칠 때 취하는 대표적인 공양 자세이다.
하나의 암벽 두 면에 석가삼존불(서쪽)과 아미타삼존불(동쪽)을 함께 배치한 것은 통일신라시대 불교 신앙의 핵심인 현세 구복(現世求福)과 내세 극락왕생(來世極樂往生)의 결합을 상징한다.
석가삼존불은 사바세계(현세)에서 중생에게 직접 부처의 법을 전하고 가르침을 주시는 '현세의 부처님'이고
아미타삼존불은 죽음 이후에 이르게 될 극락정토를 관장하며 중생을 맞아들여 구원하는 '내세의 부처님'이다.
아미타불을 향해 보살이 무릎을 꿇고 공양을 올리는 모습(궤좌형 공양상)을 통해, 중생을 구원하러 오시는 마중의 순간(왕생극락)을 입체적으로 연출했다.
석가삼존불이 연화대에 안정되게 앉아 설법하는 모습(좌상)을 통해, 법을 전파하고 수행하는 성스러운 설법 공간(영산회상)을 형상화했다.
통일신라 하대로 갈수록 특정 종파에만 매달리기보다, 현세의 삶을 지켜주는 신앙과 내세의 구원을 주는 신앙을 하나로 묶어 대중에게 정서적 안식처를 제공하려는 보편적 불교관이 유행했다.
이 두 가지 대중적 신앙을 한 암벽 안에 예술적으로 통섭한 대표적인 결정체이다.
아미타여래입상은 내영아미타(來迎阿彌陀)의 성격을 강하게 띤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내영(來迎)은 중생이 수명을 다할 때, 아미타부처님이 협시보살들을 이끌고 극락세계에서 내려와 그 중생을 맞아들여(내영) 극락정토로 인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만히 앉아 계신 것이 아니라,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정토에서 발걸음을 떼어 직접 마중 나오시는 동적인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 입상(立像)으로 표현된다.
오른손은 가슴 높이로 올리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 손가락을 대고 있는 수인은 중생을 맞이하여 극락으로 이끄는 '접인인(接引印)' 또는 '내영인(來迎印)'의 형태와 통한다.
협시보살들이 꿇어앉아(궤좌) 부처님께 연꽃과 공양물을 바치는 극적인 연출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이는 아미타불이 중생을 맞아들일 때 보살들이 연화대를 들고 함께 내려오는 '아미타나한/내영도(來迎圖)'의 구도를 바위 위에 선각으로 입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아미타입상은 단순한 정적인 존상이 아니라,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해 오신 내영아미타불의 신앙적 염원이 반영된 작품이다.
석가여래좌상과 아미타여래입상의 배치는 불교의 공간적·신앙적 세계관인 '이승(현세의 사바세계)'과 '극락(내세의 정토)'의 대비를 상징한다.
석가여래좌상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세이자 고통과 중생이 존재하는 사바세계(이승)를 뜻한다.
석가모니불은 이 세계에 직접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진리를 깨닫고 중생에게 법을 설하신 부처님이다.
연화대에 안정되게 앉아 설법인(說法印)을 짓고 계신 모습은 지금 우리가 사는 이승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음을 얻는 현장(영산회상)을 형상화한 것이다.
아미타여래입상은 저승(극락정토)과 내세의 구원
세계이다. 죽음 이후에 다다르고자 하는 고통이 없는 서방 극락정토(저승/내세)를 뜻한다.
아미타불은 중생이 수명을 다했을 때 극락으로 이끌어 주는 구원의 부처님이다.
서서 중생을 마중 나오시는 내영(來迎)의 자세와, 꿇어앉아(궤좌) 연꽃을 바치는 보살들의 모습은 이승의 삶을 마친 영혼을 맞아 극락으로 인도하는 환희로운 순간을 나타낸다.
"이승에서는 석가모니불의 가르침을 따라 바르게 살고, 삶을 마친 후에는 아미타불의 내영을 받아 극락정토로 왕생하기를" 바라는 신라인들의 현실적 염원과 내세적 구원관을 한 바위에 완벽하게 조화시킨 결정체이다.
삼릉계곡(三陵溪) 일대는 신라 왕실 및 귀족들의 상장례(喪葬禮) 및 제의 공간이었다는 학설과 깊이 연결된다.
삼릉계곡은 왕릉이 자리한 '죽음의 공간(묘역)'에서 신령스러운 남산의 '부처님 세계(정토)'로 들어가는 신성한 통로 역할을 했다.
망자(亡者)를 화장하거나 묻은 뒤, 그 넋을 기리고 극락왕생을 비는 재(齋)를 올리거나 추모 의식을 거행하던 의례 공간으로 삼릉계곡 전체가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석가모니불(현세)과 아미타불(내세)이 한 암벽에 공존하는 것은, 산 사람이 죽은 이의 넋을 달래며 "이승의 삶을 잘 마치고, 이제 아미타불의 내영을 받아 저승(극락)으로 건너가라"는 이교(離交)와 왕생의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무릎을 꿇고 연꽃을 바치는 보살의 모습은 망자의 영혼을 극락으로 실어 나르는 연화대좌를 준비하는 장면으로 해석된다. 이는 장례 의례 중 망자를 떠나보내는 추모객/유족의 염원과 보살의 구원 행위가 만나는 접점을 의미한다.
현세와 내세의 경계이자 '임종과 왕생'의 공간적 연출이다.
바위 상단에 남아 있는 사각형 홈과 배수로 자국은 이 불상들을 보호하고, 그 앞에서 의식을 치르기 위한 목조 전각(齋堂 또는 공양당)이 존재했음을 증명한다.
즉, 이 암벽 앞은 단순히 지나치며 바라보는 길목이 아니라, 망자의 넋을 기리는 장례·추모 의식이 구체적으로 진행되었던 '현세와 내세가 교차하는 성소'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