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2일 판단 중지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루카 6,42)” 살레시오 성인은 형제를 교정해 줄 때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을 수 없다면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간디는 한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가 설탕을 너무 많이 먹으니 설탕을 끊게 말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몇 주 후에 다시 오라고 했는데, 자신도 설탕을 좋아해서 그것을 끊은 후에야 말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내 눈의 들보 이야기는 아예 남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썩어 없어질 육신이 영혼을 무겁게 하고 흙으로 된 이 천막이 시름겨운 정신을 짓누릅니다.”(지혜 9,15) 지혜서의 이 말씀은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잘 말해 주고 있다. 어릴 때 생존하느라 한 아픈 여러 경험을 통해 얻은 잘못된 교훈들이 내 육체와 신경계 그리고 내 무의식 안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 그것은 마치 비석에 새겨진 글씨처럼 견고하고 컴퓨터 프로그램 같이 나를 자동으로 반응하게 한다. 거기에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들도 있을 거다. 예외 없이 우리 모두 그렇다. 그것이 병적이어서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이도 있다. 초인적으로 수련하지 않는다면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니 그런 내게서 나온 생각을 어떻게 옳다고 주장할 수 있겠나. 그건 그냥 내 생각일 뿐이다.
대침묵 피정을 하면 처음에는 조금 불편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편해진다. 거기에 기도 성찰 묵상을 통해서 주님과 더 가까워지니 함께 피정하는 이들을 더 많이 배려한다.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피정이 끝나고 입을 열기 시작하면 제자리로 돌아온다. 다시 시끄러워진다. 안 해도 될 말로 소란스럽고 그러지 말아야 행동으로 마음 불편해진다. 이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육체를 벗어야 비로소 있는 걸 있는 그대로 보고 해야 할 말만 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판단하거나 심판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이웃과 세상사에 대한 나의 판단은 즉각적이고 자동적이다. 안 할 수 없고 막을 수 없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군침이 도는 것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막을 수는 없어도 있는 힘을 다해 그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다. 그걸 그냥 내다 버린다. 설령 그것이 옳다고 해도 이웃을 심판하지 않는다. 내게 그를 교정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고 또 그가 그걸 바란다면 아주 조심스럽게 최대한 그가 아프지 않게 그걸 말해 준다. 나는 심판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해야 하는 사람임을 잊지 않는다.
예수님, 온갖 거짓 정보와 잘못된 교훈들이 저의 무의식을 지배합니다. 주님, 이런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고, 심판과 판단의 감옥에 갇히지 않게 주님의 계명을 사랑하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저를 도와주시고 온유하고 겸손한 아드님 마음을 제게 전해 주소서.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