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막, 동냥거리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 있지는 않지만 우리 지역 방언으로 ‘동냥거리’가 있다. 이 말의 뜻은 ‘외상 술값을 갚고 난 뒤에 공짜로 얻어먹는 술’이다. 요즘이야 카드가 보편화 되어 웬만한 주당이 아니고는 술값을 외상으로 달아놓은 강심장은 없지 싶다. 주선으로 통하는 당나라 이백과 동시대 시성 두보는 하급 관리 신산한 시절 퇴근길 관복을 주막집에 맡기고 술을 들었다.
“朝回日日典春衣 (조회일일전춘의) 조정에서 나오면 봄옷을 잡혀 놓고 / 每日江頭盡醉歸 (매일강두진취귀) 날마다 강 언덕에서 만취하여 돌아오네. / 酒債尋常行處有 (주채심상행처유) 가는 곳마다 외상 술값 있지만 / 人生七十古來稀 (인생칠십고래희) 인생 칠십년은 옛부터 드문 일” 인용구는 두보 ‘곡강’ 가운데 제2 수다. 유명한 ‘인생칠십고래희’가 여기서 나왔는데 이제는 백세 시대다.
봄이 무르익은 사월 셋째 일요일이다. 전날은 가끔 산행에 동행하는 벗과 근교 산행을 다녀왔다. 시내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는 대학 동기는 주말이면 테니스를 치거나 자전거 라이딩도 나서는데 나와 한나절을 보냈다. 우리는 북면 양미재로 올라 바디나물과 취나물을 뜯어 하산길에 맑은 술을 기울였다. 산나물은 취향 따라 호불호가 엇갈려 벗은 제피나무 순을 좋아해 제법 채집했다.
벗과 헤어진 뒤 귀로에 나는 집 근처 다다라 같은 아파트단지 사는 초등학교 친구와 접선했다. 연전 도청에서 정년퇴직해 백수인 친구는 창원천 생태 탐방과 아파트단지 뜰에 꽃을 가꾸면 소일한다. 친구는 손수 가꾸는 꽃을 유튜브로 소개하면서 내가 메일로 넘기는 생활 속 글도 동영상으로 올린다. 우리는 어제 아파트단지 맞은편 주점에 접선해서 가는 봄날의 진한 두릅 향기를 나누었다.
올해는 벚꽃을 비롯해 봄 야생화들이 일찍 피고 저물었다. 산나물들도 마찬가지라 두릅 순은 진작 피었고 참취나물도 연속해 두 주째 뜯어와 일용할 찬거리로 삼는다. 산나물은 해발고도 따라 잎이 돋는 차가 있고 양달인가 응달인가도 달랐다. 어제 오른 양미재는 낮은 고개라도 작대산 가는 산등선 북향은 응달이라 손을 타지 않은 첫 두릅 순이 억세지 않아 데치면 먹을 정도는 되었다.
귀가 전 미세먼지를 뒤집어쓰고 땀내 절은 차림으로 친구가 먼저 와 자리한 주점으로 들었다. 배낭의 산채 두릅과 산나물을 주인 아낙에게 건네주었다. 잠시 뒤 데쳐 나온 두릅은 곡차 안주로 훌륭했다. 넉넉하지 않았지만 옆 탁자 손님들과도 나눌 여분은 있었다. 이어서 몇 종류 섞인 산나물은 다듬어 전으로 부쳐 나와 빈 곡차 병을 늘려갔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자리서 먼저 일어났다.
날이 밝아온 이튿날 일요일이다. 점심나절 거제로 돌아와야 하기에 즐겨가는 산행이나 산책은 자중하고 집안에 머물렀다. 생활 속 글을 몇 줄 남기고 시골 큰형님 문집 간행 선행 작업인 칠언 율시를 한자로 입력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점심 식후 이웃 학교 근무하는 같은 아파트단지 지기가 운전하는 차에 동승해 시내를 벗어났다. 안민터널을 지나 석동에서 진해터널을 지나니 용원이었다.
가덕도로 건너는 눌차대교는 거제 방향은 부산으로 들어오는 차량들이 줄을 이었다. 휴일을 맞아 해금강 바람을 쐬고 오는지, 가덕도 연대봉이나 천성 포구를 찾은 행락객인지 분간이 안 되었다. 거가대교를 건넌 장목에서 대금산 외포리 나들목으로 빠졌다. 대금마을 갓길에는 매미성을 찾은 사람들이 세워둔 차들이 빼곡했다. 우리는 율천마을에서 고개를 넘어 명동 대금산 주막을 찾아갔다.
주막집 할머니는 집 앞 고사리밭에서 김을 매고 있었다. 거제로 돌아오면 주막집에 들려 막걸리를 마련해 반주로 곁들인다. 할머니는 호미를 두고 우리와 같이 안마당으로 들어 곡차를 챙겨주었다. 말려둔 고사리도 다섯 봉지 샀다. 곡차와 고사리 값을 치르면서 할머니가 들고 나온 동냥거리 곡차를 잔에 따라 비웠다. 데친 오가피 순이 향긋했다. 마당귀에는 모란꽃과 메발톱꽃이 화사했다. 21.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