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나는 30대초반에는 소개팅도 하고, 동호회에 가입하기도 하여, 여성들과 사귀고자 노력하였으나,
외모도 보잘 것 없고, 직장도 그저 그렇고, 잘사는 집도 아니라서, 매번 실패와 좌절을 겪었다.
내나이 40세 노총각이 되었을 때, 그당시 나는 연애를 포기한 상태였다.
늘 직장과 집을 오가는 게 일상이었고, 결혼한 친구들을 만나면 부러웠으며,
나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져서, 친구들을 피하게 되었다.
그와중에 4년전에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그때 아버지마저 교통사고로 돌아가셔서, 더욱 쓸쓸하고 허전하였다.
그러한 나의 상황을, 불알친구인 명진이가 늘 걱정해 주었고, 어느 금요일 저녁 회사근처에 와서, 술한잔 하자고 하였다.
그래서 고깃집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한잔 하고 있는데, 웬 여자 한명이 들어왔다.
연예인급 미모와 긴 생머리에 말간 피부, 뚜렷한 이목구비를 갖춘 아리따운 여자였다.
그녀에게 마음이 끌려, 나도 모르게 저절로, 시선이 갔다.
그 고깃집은, 금요일 저녁에는 손님이 많기때문에, 1인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가, 우리 테이블로 와서, "저기요, 괜찮으시면 합석해도 될까요?"라고 제안하였다.
그래서 얼떨결에 내옆자리에 앉게 되었고, 삼겹살 2인분을 더 시켜서,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술을 마셨고,
그녀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뛰어난 미모와는 다르게, 매우 소탈하고 친근한 성격이었는데,
"삼겹살이 너무 먹고 싶어서, 퇴근하자마자 먹자골목으로 달려왔어요"고 했다.
세사람이 종종 만나, 함께 밥도 먹었으며, 나중에는 단둘이 만나서, 가끔 술도 마셨는데, 그녀는 5살연하의 회사원이었다.
그녀의 매력에 끌려서, 점차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만난지 3개월만에, 내가 꽃다발을 주며 고백하였고,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그녀는 나이보다 어른스러웠고, 배려심이 많았다. 쑥맥인 나를, 어떤 때는 부드럽게, 또 어떤 때는 강렬하게 이끌어,
나는 점차 그녀에게 매료되어 갔다.
그녀와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보는 매순간이 행복하였고, 꿈만 같아서, 헤어져 집에 갈 때는 눈물까지 났다.
만난지 1년이 채안되었지만, 빠른 시일내에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있던 차에, 우리사이에 위기가 닥쳤다.
항상 밝게 웃던 그녀가, 잘 웃지도 않고, 밥도 잘 먹지 못하였다.
그래서 내가 "무슨 걱정이 있냐?"고 물어보니, 그녀가 말하길,
"아빠가 친구 보증을 섰는데, 친구가 잠수타는 바람에, 1억정도 빚이 생겼다"고 하였다.
"아빠가 매일 울고 신세한탄해서, 내가 적금깨서 6,000만원은 해 드릴 수 있는데,
나머지 4,000만원을 어디서 구할지 막막하다"고 하였다.
"어릴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가 고생해서 나를 키웠는데, 꼭 해드리고 싶다"면서,
"4,000만원을 빌려달라"고 나에게 눈물로 호소하였다.
부모님 사망보험금과 부모님집 판 돈, 2억원 가량이 통장에 들어 있었지만,
부모님 목숨값이라, 손대고 싶지 않아서, 주저하고 있었다.
그랬더니, 여친은 "내가 매달 이자까지 쳐서, 꼬박꼬박 갚을게! 아빠도 나도 돈을 벌고 있으니,
금방 갚을 수 있을거야. 상황이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부탁한다"면서, 큰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나에게 간청하였다.
내가 그렇게 큰 돈은 빌려주기 어렵다고 하자, 그녀가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후부터, 그녀의 태도가 점점 차가워져 갔다. 나에게 무관심해졌으며,
자주 한숨을 쉬고, 내말을 건성으로 듣고, 핸드폰만 들여다 보고 있었다.
어느날 내가, "방어회 사줄테니, 먹으러 가자"고 했더니,
"지금 팔자 좋게 방어회 먹을 때냐? 카페 알바라도 할 생각이다.
이제 투잡이라도 뛰어야지!"라고 하면서, 화를 내었다.
점점 차가워지는 그녀의 태도에 나는 지쳐갔고,
마침내 그녀가 "우리 여기까지만 하자! 내가 오빠 신경쓸 여력이 없어! 마음의 여유가 없다구!" 라고 소리쳤다.
그리고는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오빠가 돈 못 빌려준다고 했을 때, 솔직히 서운했다.
내가 오빠한테, 그 정도밖에 안되는 사람인가하고,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지.
이해하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잖아?
이런 이야기 하는 것도, 구질구질하니까, 이제 그만 만나자! 앞으로 다시는 연락하지마"라고 말하고는, 매정하게 가버렸다.
그녀와 헤어진 후, 나의 삶은 황폐화되었다.
아무리 술을 마셔도, 첫사랑 그녀가 잊혀지지 않았다.
그때 친구 명진이와 술을 한잔 하게 되었다. 명진이가
"그러지 말고, 결혼하자고 해. 빚도 다 갚아주고... 여친과 돈중에서, 어느 것이 더 소중한지 한번 생각해봐!"라고 날 설득하였다.
술집에서 나와서 바로 그녀에게 전화하여, 늦은 밤 두달만에 카페에서 만났다.
여친이 "오빠 미안해! 그동안 계속 오빠 생각이 나서, 괴로웠어. 내가 오빠를 많이 좋아했나봐.
우리 다시 만날까?"라고 해서, "나도 그말을 하려고 했다"고 말해 주었다.
비온 뒤 땅이 굳어지듯이, 우리 사이가 더 좋아져서, 결혼준비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결혼식도 소박하게 하기로 하고, 신혼여행도 가까운 곳에, 짧게 다녀오기로 서로 합의하였다.
그녀가 "우리 아빠가 면목이 없다고, 맛있는 밥 사주겠다고 하네"라고 말해서, 그 주말에 예비장인 어른을 만났다.
그분은 생각보다 젊고 호쾌하였다. 그냥 헤어지기 아쉬웠는지, 집에 가서 한잔 더 하자고 하였다.
통상적으로 술을 자꾸 먹자면서, 같이 가자고 할 때, 절대 따라가면 안된다.
왜냐하면, 술에 취하면,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실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친집이 궁금하기도 해서, 따라갔다.
낡은 주택가에 있는 빌라였는데, 쇠로 된 현관문이 있는 오래된 집이었다.
여친이 소박한 술상을 차려와서, 소주를 연거푸 마셨다.
예비장인이 냉장고에 가서, 소주를 또 꺼내왔다.
내가 그만 마시겠다고 하니, "남자가 술에 취할 경우, 술주정을 하는지, 술버릇이 어떤지를 직접 확인해봐야 한다"라고 하면서,
계속 소주를 따라 주었다.
화장실에 가서 토하고 와서, 또 술을 마셨다.
의식이 흐릿해 지면서, 정신을 잃고서, 테이블 위에 고개를 처박고, 잠이 들고 말았다.
둘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잠결에 들려, 귀기울여 들어보니, 충격적이었다.
"지금, 이놈 있는 돈 다 빼낸 게 맞아?" "그래, 핸드폰에 있는 은행앱으로 들어가서, 전부 내통장으로 보내놓았어.
얼마나 철두철미한지, 핸드폰 잠금패턴이랑 앱비밀번호 훔쳐보는데, 몇달이나 걸렸어."
"지갑 뒤져서 신분증도 빼내.
그래야 사채라도 빌리든지 하지"라고 예비장인이 말하자, 그녀가 내지갑을 빼가서, 신분증만 빼고,
다시 지갑은 내뒷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자기라고 호칭하는 등, 두사람의 대화로 볼때, 둘은 내연관계였다.
사기꾼의 덫에 걸려든 것이었다. 충격에 빠져 공황상태가 되었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탈출하여, 이들을 경찰에 신고해서, 붙잡아야 했다.
그들도, 나를 가두고 도망갈, 짐을 챙기고 있었다.
주방에 있는 작은 창문으로 뛰어내리려는 순간, 그 내연남이 "이 새끼, 거기서 뭐하는 거야?"라고 소리쳤다.
과감하게 4층에서 뛰어내렸다. 무릎이 깨졌는지 피가 나고,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두사람이 계단으로 뛰어 내려오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앞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였다.
깊은 밤 주택가에는 지나가는 사람도, 개미새끼 한마리도 없었고, 고요하고 어둡기만 하였다.
나를 발견한 내연남이 "저놈, 저기 있다"라고, 여친에게 소리치면서 바짝 쫓아왔다.
필사적으로 도망쳤지만, 다친 다리로 속력을 내기엔, 한계가 있었다.
얼마후 그 놈의 손에 붙잡혔다. 땅바닥에 나를 짓누르고, 그위에 올라타 꼼짝 못하게 하였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분명 술이랑 수면제 엄청 먹였는데, 어떻게 눈을 뜬거야? 너 우리 대화 다 들었지?"라며,
주먹으로 배를 강타하였다.
"너 그냥 죽어줘야겠다"라면서, 목을 조르기 시작하였다.
숨이 막혀오고, 눈앞이 캄캄하였다. 여친은 내눈을 외면하였다.
그동안의 꿈같은 시간들이, 모두 거짓이고 날조된 것임이 확인되었다.
궁지에 몰리면, 힘이 솟는다고, 흙먼지를 한움큼 쥐고, 내연남 얼굴에 뿌렸다.
그러자 그놈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그 순간 나는 벌떡 일어나, 다시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거기 안서!" 소리치면서, 계속 쫓아왔다.
앞을 향해, 골목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경광등을 깜빡이면서, 경찰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경찰차를 막아서서, "살려 주세요"라고 하였다.
내가 머리는 산발이고, 신발도 없이 맨발에다가, 무릎에 피까지 흘리고 있으니, 경찰도 깜짝 놀랐다.
"예비장인이 나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죽일려고 한다"고 횡설수설 설명하였다.
그들은 이미 도망가고 없었다.
경찰차를 타고, 그 빌라로 가보았다. 아무도 없어서 뒤돌아 나오려는 순간, 익숙한 향수 냄새가 났다.
경찰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이야기 해주었다. 경찰들이 집안을 탐색하기 시작하였다.
작은 방의 옷장을 열려는 순간, 내연남이 튀어 나왔고, 여친도 함께 있었다.
경찰들이 총을 들고 있어서, 긴장상태로 대치하던 중, 내연남이 여친을 집어던지며, 현관으로 도망쳤다.
그놈의 행동을 예상했던 내가,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두사람 다 수갑을 채우고, 경찰서로 연행하였다.
그 다음날 하루종일 사기꾼들과 분리해서, 나도 조사를 받았다.
조사결과, 그들은 전과 8범의 악질적 범죄자였다.
두사람이 한패가 되어, 순진한 남자들을 등쳐 먹었고, 명의를 도용하여,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려서,
그 사람의 인생을 파탄내기도 했다.
놀랍게도 친구 명준이도 공범이었다. 수익의 10%를 받기로 하고, 이일에 가담하였다.
그들 모두 감옥에서 복역하게 되었고, 나는 피해금액 전부를 환수하였지만,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몇년후 그 연놈들이 출소하였지만, 그후 친구 명진이는 이혼당하여, 그렇게 좋아하던 딸 얼굴도 못보고,
알콜중독으로 간이 다 망가져서, 오늘 내일한다고 한다.
한편, 전여친은 출소후에도 꽃뱀짓을 계속 하다가, 다시 교도소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 내연남은 어둠의 세계에 있는 사람들과 시비가 붙어,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되었다고 들었다.
추측하건데, 화장실에서 토했기 때문에, 수면제의 효과가 사라져, 잠에서 깰 수 있었다고 본다.
절체절명의 위기속에서도, 정신을 차리고, 4층에서 뛰어내리고, 사력을 다해 도망쳤기에,
간신히 살아날 수 있었다고 판단된다.
한편 작은 징후도 놓치지 않고, 잘 포착하였기에, 마침내 사기꾼들을 붙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