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차량의 시동을 걸자 조수석의 최는 문자로 받은 화성 어디쯤이라는 화재 현장의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한다. 내비게이션은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이 45분이라고 알려준다. “해 뜨기 전에 도착하겠군.” 아마도 최는 어둠 속의 불을 원하고 있는 듯싶다. 도착하면 깨울 테니 한숨 자라는 말에 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쪽잠 대신 수다를 선택한다. “4년 전인가, 아니 벌써 5년이나 됐네. 아무튼 너 들어오기 전에 있었던 일인데 말이야. 안산의 펜션에서 새벽에 화재가 발생했어. 샌드위치 판넬로 설렁 지은 데다 투숙객들이 모두 취해 있어서 11명이나 죽었지. 문제는 방송들이 자막을 내보내고 취재기자를 전화로 연결해 상황을 전달하고 있는 데도 명색이 통신인 우리는 1보도 내보내지 못했다는 거지. 당연히 나한테도 늦게 연락이 왔고. 한 마디로 된통 물을 먹은 거지. 그런데 기사만 물을 먹은 게 아니야. 뒤늦게 도착해 맥없이 내려앉은 건물 사진만 찍어 몇 장 보냈는데 방송에 화재 당시 사진들이 뜨는 거야. 어둠 속에서 불길이 치솟는, 11명의 목숨을 그대로 잡아먹을 것만 같은 그런 불길을 담은 사진이 말이야. 소방서에서 찍은 것이 아니라 인근 다른 펜션 업자가 찍은 것이라는데 도무지 그걸 구할 수가 없는 거야. 결국 방송 화면을 찍어 보냈지. 그 일 이후로 한동안 나뿐만 아니라 사무실 전체가 화재에 예민해졌지.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 몸은 고달파졌어. 일단 화재나 사고가 발생했다고 하면 현장으로 달려가야 했으니까.” 최가 조수석 창문을 약간 내린다. 순식간에 차 안 공기가 바뀐다. 다시 창을 올리며 최가 말한다. “싸늘하군.” 시선은 앞으로 둔 채 묻는다. “오늘도 사람이 많이 죽었습니까?” 최는 조금 미안한 듯이 말한다. “아니. 2명이야.” 살짝 고개를 틀어 최의 얼굴을 바라본다. 궁금증을 풀어주겠다는 듯 최가 이어 말한다. “그렇게 몇 개월 보낸 다음에 나름 기준을 세웠어. 화재나 사고가 났다고 계속 무작정 달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현장 취재가 필요한 피해 상황에 대한 기준 말이야. 그래, 일반인이 4명 이상 죽거나 공무원이 2명 이상 죽으면 현장 취재를 한다, 이런 기준을 세운 거지. 오늘 죽은 두 사람은 모두 진화 작업에 나섰던 소방관이야.” 2와 4. 두 개의 발과 네 개의 발가락. 그 숫자가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밤이라기에는 밝고 아침이라기에는 어두침침한, 그렇다고 새벽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에는 빛의 힘이 모자란 즈음에 화재 현장인 가구 공장에 도착한다. 군데군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지만 불꽃은 보이지 않는다. 불꽃도 보이지 않지만 다른 취재 차량도 보이지 않는다. 서둘러 내린 최를 뒤로 하고 현장을 통제하는 경찰관의 유도에 따라 화재 공장이 내려다보이는 인근 다른 공장의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차에서 내려 불구경꾼들이 모여 있는 난간으로 가 최의 모습을 찾는다. 노란 통제선을 슬쩍 넘어선 최가 셔터를 누르기 시작한다. 그의 머리 위로 스트로보 불빛이 팡팡 터진다. 곁에 서 있던 구경꾼들의 입에서 중구난방으로 정보가 쏟아진다. “그냥 확 무너졌다네.” “3명이 깔렸다고 하던데.” “아니, 2명이래.” “젊은 사람들이라고 하던데.” “군대랑 똑같지, 뭐. 쫄다구들만 죽어나가는 거야.” 쫄다구라는 말을 듣는 순간 오른발 끝이 시큰거린다. 통증이라 부르기에 모자라는 가려움에 가까운 신호다. 오른발에 힘을 싣지 않으며, 그래서 약간 절뚝거리며 차로 돌아온다.
차에 오른 최가 장례식장 이름을 댄다. 기억에 있는 장소다. 이곳에서 가는 길도 얼추 머릿속에 그려진다. 하지만 왜 그 장례식장이 기억에 남아 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최는 노트북을 꺼내며 혼잣말을 한다. “가족들이 와 있겠지?” 기억나지 않지만 당연히 누군가 죽었기에 그곳에 갔겠지, 라고 생각한다. 일반인이든 공무원이든,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누군가가 죽었기에 장례식장엘 갔을 것이다. 다행히 운전을 할 때 오른발은 시큰거리지 않는다. 완전히 어둠이 벗겨진 거리를 달린다.
장례식장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최의 마감은 끝나지 않는다. 최는 화재 관련 기사와 자신이 찍은 사진을 번갈아 노트북 창에 띄우며 사진 설명을 작성한다. 노곤함에 운전석에 앉아 잠시 눈을 감는다. 무언가가 차의 유리창을 두드려 눈을 뜬다. 최가 앉은 조수석 창 옆에 그녀가 서 있다. 최가 창문을 내리자 그녀가 말한다. “선배, 여기 취재도 끝나셨어요?” 최가 고개를 젓는다. “아니. 현장 사진 마감하고 움직이려고. 너는? 지금 도착한 거야?” 그녀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최의 노트북을 들여다본 뒤 말한다. “그럼 저 먼저 들어가 유가족 만나볼게요.” 최는 자판을 두드리던 오른손을 들어 살짝 흔든다. 그녀가 장례식장을 향해 10여 미터쯤 걸어갔을 때 최가 뒷좌석으로 손을 뻗어 회사에서 지급해준 짙은 갈색의 점퍼를 집어 든다. “쟤 옷이 너무 화려하지 않냐? 죽음에는 예의가 필요한 법이지. 이거 입고 취재하라고 해.”
그녀를 향해 뛴다. 발가락의 가려운 통증은 없다. 움켜잡지 못한 점퍼의 팔 한쪽이 흘러내려 나풀거린다. 이름을 부르지 않았지만 신발 밑창이 시멘트 바닥이 만나는 소리에 그녀는 이내 고개를 돌린다. 점퍼를 건네며 말한다. “최 차장이 이거 입고 취재하라는데요.” 행여 최의 귀에 들어갈까 싶어 어색하지만 존대를 한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취재수첩을 오른손 왼손으로 번갈아 잡으며 점퍼에 팔을 넣는다. 그리고 낮지만 따뜻한 목소리로 말한다. “피곤하지? 새벽에 나왔다며.” 그녀의 물음에 대답 대신 씩 웃는다. 그 웃음에 그녀도 미소로 답한다. “아, 싫다. 유가족 취재는 정말 싫어. 한 사람은 임신한 아내가 있다고 했는데.” 그녀의 미소가 찡그림으로 바뀐다. 죽음과 그 죽음 뒤에 남는 것들을 취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인다. 거의 목까지 지퍼를 올린 그녀가 말한다. “사랑한다면, 떠난 사람이 더 힘 들까? 아니면 남겨진 사람이 더 힘 들까?”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녀는 이번에는 협박하듯 얼굴을 바투 들이대고 말한다. “운전 조심해. 난 이렇게 남겨지는 것은 싫으니까.” 다시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그녀를 몇 초 바라본 뒤 몸을 돌린다. 최가 서둘러 노트북 쪽으로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보인다. 나름 배려였던 것일까. 천천히 차를 향해 한 걸음 디뎠을 때 이번에는 제법 날 선 통증이 오른발 어디쯤을 찌른다. 외침 같은 통증이다.
좋은 자료라 퍼 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