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정말로 헤일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의견을 교환했으며 같이 웃고 울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 큰 의미 없이 스쳐갔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내 영혼의 깊숙한 곳에 반석처럼 자리를 잡았다.
거래처의 업무 파트너로 만났던 그 사내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만난 지 약 십여 년 까지는 서로를 잘 알지 못한 채 그냥 일만 열심히 했다.
나도, 그도 순차적으로 각자의 회사를 떠났고 새로운 분야에서 자신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서로 비슷한 시기에 회사를 떠났다.
철저하게 업무를 배제한 채 간혹 그를 만나니 더 좋았다.
개인적인 얘기들을 조금씩 나눠갈수록 그는 큰 산처럼 내게 다가왔다.
그는 나보다 2살 선배였다.
흉금을 털어놓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비로소 그의 출신지역이나 나이, 취미, 특기, 소망, 가족을 알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죽어라 일만 했었다.
거래처의 담당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그를 형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조건이나 어떤 거래 때문이 아니라 그의 매력과 고결한 인품 때문이었다.
그는 나보다 훨씬 투명했고 광활한 사람이었다.
마치 수평선을 가슴에 품고 있는 넓은 바다 같은 남자였다.
같은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매력을 깊게 느낄 정도였다.
숲이 깊고 물이 맑으면 수많은 조류와 야생 동물들이 그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편안하게 살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포용력이 강하고 배려심이 깊으며 넉넉한 인품이 있는 사람의 주변엔 항상 많은 이웃들이 깃들기 마련이었다.
재물이나 권력으로 이 세상을 쥐락펴락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향기로운 인간애와 깊은 영혼의 이끌림은 절대로 돈이나 권력으로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청년기 때 형은 종로에서 알아주는 'DJ'였다.
그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가요든, 팝이든 형은 음악에 대해 매우 해박했다.
특히 '올드팝송'의 분야가 더 그랬다.
나는 형을 만날 때마다 그의 융숭한 심연과 인간적인 매력에 늘상 빠져들곤 했었다.
그랬던 형이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김우찬 TV'다.
아직은 초창기지만 나는 퇴근하면 늘 형의 채널을 켜놓고 감미로운 음악을 듣는다.
이젠 아예 나의 일과가 되어버렸을 정도다.
마음이 푸근해 지고 편안한 쉼을 얻을 수 있어 저녁시간이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혹여 음악을 즐겨 듣는 분이 있다면 이 채널도 한번 청취해 보면 좋겠다.
연둣빛 신록이 넘실대는 예쁜 산야를 바라보며, 구수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둔 채 턱 괴고 감미로운 음악을 듣는 것 같은, 마냥 편안하고 까닭 없이 미소가 벙글어지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한다.
소중하고 귀한 사람들.
그들의 따뜻한 가슴이 있어 참 좋은 봄날이다.
오늘도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격려와 잔잔한 위로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첫댓글 올드 팝 들으며 구독과 좋아요 눌렀습니다. ㅎㅎ
좋은 분을 소개시켜 주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