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의문문은 의문사가 있을 경우 의문사가 가장 먼저 앞으로 나온다. 예컨대, Why do you think so?에서 Why가 의문사로서 가장 먼저 나온다. 의문사가 있든 없든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은 동사의 시제 성분이나 조동사이다. Why do you think so?에선 do가 think의 시제 성분이다.
왜 이런 어순이 확립되었을까?
‘주어가 동사한다’로 영어 정보의 서술은 완결된다.
예) I think so. I=주어 think+.=동사로 서술 완결[.]
영어 정보의 완결은 명사적인 것, 즉 이 경우 정보가 기억 속에서 적히는 곳[address]인 주어에 서술 정보[동사 및 동사에 딸린 식구] 내용이 확정적으로 ‘.’로 완결됨으로써 정보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때 가장 핵심적인 뼈대는 명사적인 주어[address]이고 그다음 핵심적인 뼈대가 되는 것은 정보 내용의 서술 및 첨가이다.
영어는 개체에서 전체로, 좁은 데서 넓은 데로, 그리고 뼈대가 되는 핵심적인 정보의 순서대로 단어를 배열한다. 그리하여 ‘명사가 어떠한 것’이라는 걸로 문장 단위별 정보가 완결된다. 박기범 샘의 말투로 하자면 “영어는 궁금해야 해. 궁금한 순서대로 나와.”(유튜브 ‘한마디로TV’ 참조)
의문문에서 가장 핵심적인 정보는 무엇일까? 의문사가 있을 때는 의문사가 가장 핵심적인 정보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가장 앞에 나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간다.
그러면 의문문인 주어 앞에 조동사나 동사의 시제 성분이 나오는 것은 어떤가?
의문문은 정보의 완결이 아니라 정보의 의심이다.
예) 그렇게 생각하니? Do you think so?
정보의 완결보다 정보를 의심한다는 사태가 문장에서 더 중요하고 핵심적인 뼈대이다. 즉 정보의 의심을 강력하게 나타내는 표지인 동사의 어미 “~니?”가 주어보다 더 중요하고 궁금한 것이다. 다시 말해, 정보를 듣는 입장에선, 완결된 정보를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정보를 의심함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가, 정보내용의 address인 주어보다 더 중요한 것이고 더 궁금한 것이다. 영어에선 조동사 부분이나 동사의 시제 성분이 이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부분(Do)이 명사적인 주어(you)보다도 더 앞에 나오는 것이다.
영어 문장은 중요한 순서대로 “궁금한 순서대로” 단어가 배열된다.
여기서 의문문의 어순에 대해 한국어와 영어의 입장을 하나씩 강조한다.
첫째, 한국어의 입장에서 이 의문문의 어순은 한국인이 익숙해지는데 엄청 노력과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이다. 평서문의 어순의 기본 골격인 “명사’[명사적인 것]+동사”에 익숙해져서 <명사’+동사>면 <주어+동사>로서 <명사’가 동사하다>[실감나는 현재형으론 <명사’가 동사한다>]는 뜻으로 거의 자동으로 파악되기 시작하는 영어 초급 수준의 한국인의 입장을 살펴보자. 이 한국인에게, 의문문의 어순 <(의문사)+조동사/일반동사 시제성분+주어>의 어순은 참으로 빡센 벽으로 느껴진다. <주어+동사> 어순이 겨우 익숙해졌는데, 이제 다시 주어 앞으로 동사의 일부분을 내보내라니? 참으로 난감하다. 그래서 자동적으로 의문문의 어순대로 영어가 speaking 되는 사람은 드물다. 빡세게 연습해서 의문문의 어순이 자동적으로 나오는 사람은 영어회화 초급의 벽을 넘고 중급에 들어설 것이다. 한국인이 평서문의 어순을 통달하고 다시 무진장 연습해서 숙달시켜야 하는 게 이 의문문 어순이다.
둘째, 영어 원어민의 입장에서 영어 의문문의 순서는 말하는 문장이 의문문인지 평서문인지를 의문사 다음의 핵심 정보로서 신속하게 전달해준다는 것이다. “Why do you think so?” (왜 너는 그렇게 생각하니?)에서 보다시피 영어 원어민은 첫 두 단어에서 이것이 완결된 정보를 전달하려는 평서문인지, 정보에 대한 의심을 전달하려는 의문문인지를 파악하고 전달하려는 내용의 뼈대에 접근하는 것이다. 원어민은 “Why do”의 2단어를 듣는 순간 – 의문사(Why)가 가 없는 경우 첫 단어(Do)를 듣는 순간 - 의문문임을 직감하고 대처할 수 있다. 이와 비교하여 “Why you think so isn’t important.”(왜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아.)는 “Why you” 즉 <의문사+주어>로 시작하는 평서문이다. “Why you”로 시작하는 평서문인지 “Why do”로 시작하는 의문문인지 두 단어만 듣고도 아는 것이다. 이런 영어에 익숙해진 원어민은 한국어를 들을 때 엄청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영어 원어민은 “왜 너는 그렇게 생각하”까지 무려 4개의 말토막을 들어도 말하는 사람이 완결 정보[평서문]를 전달하고자 하는지, 아니면 정보에 대한 의심[의문문]을 말하고자 하는지가 도무지 파악이 안 되어 답답하다. ‘I have to put up with it(참아야 하느니라).’를 속으로 외치며 “왜 너는 그렇게 생각하니?”라는 “?”까지 들어야 ‘아하 정보에 대한 의심을 말하는구나, 이유를 댈 준비를 해야지’가 나온다. 한국어 평서문의 경우엔 “왜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아.”의 “.”까지 들으면 평서문이므로 완결된 정보를 접수할 준비를 하고 정보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사실 이것은 비교적 짧은 문장의 경우다. 한국어는 서술어의 끝인 동사나 형용사 어미로 보통 문장이 끝난다. 따라서, 서술어로 끝내기 이전에도 할 말이 많은 한국어를 들을 때, 한국어 학습을 시작하는 영어 원어민은 힘겨운 암벽 등반을 시작한다. 예컨대 “왜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중요한 말일 수도 있고....며...고...해서...하니..하면..하여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까지 듣기까지 영어 원어민은 거의 까무러치기 직전의 극도의 참을성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마침내 “?”까지 듣기까지, ‘I should listen to Korean to the end of the sentence(한국어는 끝까지 들어야 해). I have to put up with it(참아야 하느니라).’를 수십 번 반복하고 무량한 인내심을 발휘하고 나서야, 영어 원어민은 말하는 사람이 정보에 대한 의심을 표하려고 하는지 완결된 정보를 전달하려고 하는지를 파악한다. 비로소 그 사람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계산하는 안전진단을 일단락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