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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8 '이제 이곳을(파샤이) 떠나 여기에서 동남쪽으로 이레거리에 있는 케시미르라는 이름을 가진 지방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본격적으로 케시미르(카슈미르)를 둘러보기 전에 앞에서 4편과 3편에서 메모했던 것을 먼저 인용해 보자.
'-신두푸에서 평원과 계곡을 거쳐 5일거리의 테베트로 가 보자.
테베트 - TEBET - 카라코룸산맥의 해발 8611M의 고드윈오스턴 산과 히말라야산맥의 해발 7817M의 난다데비 산 사이의 지역이 바로 카슈미르 지역이다. 이슬라마바드에서 카슈미르지역까지 가는 데, 현재는 고속도로로 한시간정도 걸리는 거리다. 카슈미르의 중심도시는 스리나가르다.
대당서역기에서는 가습미라국(迦濕彌羅國)이라고 했는데, P103의 가습미라국조를 몇줄 인용한다면, '가습미라국의 둘레는 7천여리이며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산들은 매우 가파르고 험하다. .....농사 짖기에 적합하며 꽃과 열매가 풍성하다. 품종이 좋은 말과 울금향, 화주(火珠), 약초가 많이 난다. 모갈(毛褐)을 입으며 흰 모직 옷을 입는다. 풍속은 경박하고 사람들의 성품은 겁약하다. .... 사람들의 용모는 아름다우나 성품은 속임수를 많이 쓴다.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많이 들으며, 삿된 가르침과 바른 가르침을 같이 믿는다.'
이제 동방견문록 몇줄을 인용해 보자. P311에서 '주민들은 아주 사악해서 강도질이나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죄악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나쁜 악당이며 도적들이다. .... 그들의 옷은 초라하고 의복이라고는 동물가죽이나 삼베 혹은 부크람으로 만든 것이 고작이다..... 이지방에는 낙타털로 짠 천이나 금실과 비단 등으로 짠 여러 옷들이 있고, 우리 고장에서는 보지 못했던 여러 종류의 향초들이 자라고 있다.'
그런데 왜 마르코폴로는 카슈미르지역을 테베트로 불렀을까? 현지의 주민들은 당연히 주변이 카라코룸산맥과 히말라야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태백(산)지방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일년 사시사철 흰눈으로 덮여 있는 지방, - 그래서 태백지방을 마르코폴로는 테베트지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방향과 거리표시 없이 가인두지방으로 넘어간다.'
P214 '점쟁이 혹은 마술사를 테베트 혹은 케시미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두 민족의 이름이다.' - 아마도 테베트 혹은 케시미르(카슈미르)는 두 민족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민족을 부르는 두가지 방식일 것이다. 이 구절을 보고 내 자신이 먼저 깜짝 놀랐다. 한헌석칼럼 14호, 마르코 폴로의 실제 여행경로를 밝힌다 - 5에서 테베트를 카슈미르라고 단정적으로 결론 내렸는데, 마르코 폴로가 같은 명칭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고 등줄기에 전율이 일어나고, 잠시 머리가 멍-했었다.'
여기 인용한 두 구절만 봐도 테베트와 케시미르가 동일한 지역을 두가지로 부른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 그런데 P. 펠리오는 케시미르는 현재의 카슈미르에 비정하고, 테베트는 현재의 티베트에 비정하여 현 북경에서부터 서남쪽의 방향에있는 지역을 가리키도록 조작하여, 중국의 위치를 일만리 이상을 동쪽으로 옮겨 놓는다. 앞의 두 인용문의 추측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방향과 거리로 그 비열하고 뻔뻔한 조작을 백일하에 드러내 보자.
처음 중국으로 가는 2편 중앙아시아에서는 현 페샤와르에서 동남쪽으로 7일 거리에 카슈미르가 있다고 했다.
대도에서 서남방의 여행을 하는 4편에는 이슬라마바드(신두푸)에서 5일거리에 테베트가 있다고 했다.
지도를 꺼내 놓고 페샤와르와 이슬라마바드를 지나서 카슈미르의 스리나가르로 가는데 2일과 5일이 걸려서 페샤와르와 카슈미르의 스리나가르 사이가 7일 거리라고 하는 2편의 이야기가 정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두푸를 성도부로 조작을 한다면,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성도에서 티베트로 가는 길은 일단 그런 길은 없다.
있다고 해도, 최소 2~3개월은 걸리게 되어 있다. 최소 10개 이상의 산맥을 넘어야 하고,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지금도 티벳 가는 길은 고약하기 이를 데가 없어서, 사천성 섬서성 감숙성 청해성을 돌아서 가는 수밖에 없다. 결단코 단연코 신두푸가 성도도 아니고 더군다나 테베트가 티벳은 더욱 아니다. 엉터리 억지 끼워 맞추기의 조작배기일 뿐이다.
이 테베트가 카슈미르이기 때문에 카슈미르의 바로 옆지방인 간다라로 바로 돌아 올 수 있는 것이다.
이제 P158~159의 케시미르조의 내용을 인용해서 그 진실 속으로 파고 들어가 보자.
'1) 케시미르 역시 우상숭배자들이 있고 자기들 고유의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 지방이다. 그들은 악마의 주술에 관해 놀라울 정도로 잘 알고 있고 우상으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할 정도이다....그들은 우상숭배자들의 우두머리이며, 우상은 그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2) 주민들은 검고 야위었지만 여자들은 검은 피부치고는 매우 아름답다. 그들의 음식은 고기와 쌀이다.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기후의 땅이다. 많은 도시와 마을이 있고, 수풀과 사막,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험난한 산길들이 있어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누구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고 정의로써 다스리는 왕이 있다.
3) 그들의 관습에 따라 은신처에 머무는 은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탐하지 않고 잘 절제하기 때문에 매우 정결하며, 신앙에 어긋나는 어떠한 죄악도 범하지 않으려고 아주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매우 성스럽게 여겨지고 또 굉장히 장수한다....우리 고장에서 실려 나가는 산호가 그곳에서처럼 잘 팔리는 곳도 없다.'
-1)2)3)은 필자가 편의상 붙인 분류이다. 1)3)의 내용은 카슈미르의 수도승들이 독실하게 수련, 공부하여, 그 전통과 지혜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기 때문에, 우상숭배자 즉 불교도들의 우두머리로 보일 정도로 존경받고, 매우 성스럽게 여겨질 정도라는 것이다.
도력이 높은 수도승들을 존경하고 성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을 P311에서 '주민들은 아주 사악해서 강도질이나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죄악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나쁜 악당이며 도적들이다.'라고 악의적 조작을 해댄다. 3)에서 '신앙에 어긋나는 어떠한 죄악도 범하지 않으려고 아주 조심스럽게 행동한다.'와 너무나 대조적이지 않는가?
대당서역기의 '사람들의 용모는 아름다우나 성품은 속임수를 많이 쓴다.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많이 들으며, 삿된 가르침과 바른 가르침을 같이 믿는다.'와 같은 묘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마치 동방견문록의 논조에 맞추어서 대당서역기를 조작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당서역기의 또 다른 예를 보자. '풍속은 경박하고 사람들의 성품은 겁약하다.' 이 문장의 앞과 뒤에 '적들이 침공, 정벌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나라는 용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이로써 마침내 인근 국가들을 다스리게 되었다.'는 자체 문맥의 정반대되는 문장을 끼워 넣은 것이다.
2)에서도 '수풀과 사막,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험난한 산길들이 있어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누구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고 정의로써 다스리는 왕이 있다.'와 같이 아무도 두려워 않고, 누구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고 정의로써 다스린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경박하고 겁약하다니 심해도 너무 심하지 않은가? 지금도 인도와 파키스탄간의 전면전을 세 차례나 치르고 끝없는 위기국면을 만들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동서로 분리되어 있는 카슈미르인데 말이다.
2)에서 '주민들은 검고 야위었지만 여자들은 검은 피부치고는 매우 아름답다. '동방견문록과 대당서역기를 읽어 나가면, 뱃속이 알싸하게 아파 오면서 가슴에서 부터 열이 끓어오르고 머리가 뜨거워지면서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나도 몰래 어리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이 구절도 바로 그런 경우다. 이 모멸감과 치욕과 모욕을 내 자식 새끼들에게까지 유산으로 남겨주고 가야하는가?
먼저 재미있는 인용을 하나 해 보자. 이 모욕의 땅 카슈미르 출신 자와하를랄 네루의 네루자서전/간디서원 P41~42 '큰아버지 가족과 함께 델리를 떠날 때 누이동생도 함께 있었는데, 이 나이 어린 여동생은 일부 카슈미르 아이들이 그렇듯이 아주 흰 피부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도중에 마주친 영국 군인들이 고모를 영국 소녀로 오해하여, 나의 큰아버지가 그녀를 유괴한 것이라는 의심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일단 혐의를 받게 되면 즉결재판을 거쳐 처형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이 불과 몇 분밖에 걸리지 않던 시절이었다.
다행히도 큰아버지가 영어를 알았기 때문에 옥신각신 시간을 끌고 있던 차에 큰아버지를 아는 분이 지나가다가 그와 가족들을 구해 주었던 것이다.' 20세기 중반에 나온 네루자서전에서 이렇게 묘사되는 카슈미르 여성을 13세기에 마르코 폴로가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 심한 악의적 조작이다. 카슈미르인들에 대한 인종청소정책을 완수했다는 자신감이 그 밑에 깔려 있는 대단히 불온한 문구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지독한 너무나 지독한 악마적 문구다(영 국 군 인 들 이 혐 의 가 있 으 면 즉 결 재 판 으 로 처 형 하 기 까 지 몇 분 밖 에 걸 리 지 않 는 것이 영국신사들의 식민지 경영의 현실이었다. - 모골이 송연하고 불온하고 참으로 악마적이지 않은가?).
3)에서 '우리 고장에서 실려 나가는 산호가 그곳에서처럼 잘 팔리는 곳도 없다.'는 문장은 분명히 케시미르 조에 있는 문장인데, 테베트를 설명하는 P312의 '이 지방 사람들은 산호를 아주 귀한 보석으로 여겨 자기 아내의 목이나 우상에 걸어 주기 때문에 값이 매우 비싸다. 이지방에는 낙타털로 짠 천이나 금실과 비단 등으로 짠 여러 옷들이 있고, 우리 고장에서는 보지 못했던 여러 종류의 향초들이 자라고 있다.'
그리고 다시 대당서역기에서 가습미라국조의 인용과 비교해 보자. P312 '품종이 좋은 말과 울금향, 화주(火珠), 약초가 많이 난다. 모갈(毛褐)을 입으며 흰 모직옷을 입는다.' 현장의 묘사가 테베트의 설명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가? 케시미르와 테베트의 산호이야기가 일치하지 않는가? 테베트는 케시미르이고 가습미라국이고 현재의 카슈미르지방을 말하는 것이 100% 확실하다.
케시미르조에서 '우상숭배자들의 우두머리로서 악마의 주술'을 언급하는데, 테베트조에서는 '영악한 마술사와 노련한 점쟁이들의 진기한 마술과 놀라운 술수'를 이야기한다. 그 전후의 여정도 정확히 일치한다. 케시미르 조에서는 바닥샨에서 페샤와르를 거쳐 카슈미르로 갔다가 도로 바닥샨으로 돌아가는데, 테베트 조에서는 발흐에서 이슬라마바드를 거쳐 카슈미르로 갔다가 간다라지방으로 돌아온다.
이 테베트 지방의 정확한 지리적 비정이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너무 장황하게 서술하는 것이 민망스러울 지경이다. 다시 한번 이렇게 확실하게 결론 내리고 넘어가자. "동 방 견 문 록 의 테 베 트 는 현 카 슈 미 르 지 방 이 다."
P312 '테베트는 매우 커다란 지방으로 주민들은 자기 고유의 언어를 갖고 있으며 우상숭배자들이다. 만지라든가 다른 여러 지방들과 경계를 접하고 있다. '
- 여기 결정적으로 중요한 만지의 개념을 보여 주고 있다. 지금까지 필자가 만지는 파미르 남쪽의 비중화지역이라고 개념잡고 있던 생각을 여지없이 깨뜨려서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어 준 구절이다. 자- 한번 보자. 파미르 남쪽이 만지라면, 테베트가 만지라고 해야 하는데, 여기서는 테베트가 만지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즉 테베트는 만지가 아니라는 말이다.
테베트가 만지가 아니라면, 만지의 개념이 잘못 잡혀 있었다는 것이다. 무언가에 의해 누군가에 의해 조작당하고 세뇌당해서 실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인 것이다. 그 조작과 실상은 무엇이란 말인가? 마르코 폴로의 만지에 대한 다른 언급을 살펴보자.
발흐에 대한 묘사에서 P306 '도읍은 악크발렉크 만지라고 불리는데 '만지변경의 하얀도시'라는 뜻이다.'
간다라지방의 페샤와르의 묘사에서 P307 '내가 여러분에게 위에서 말한 산지를 (발흐에서) 서쪽으로 20일 동안 가면, 역시 만지의 변경지역의 하나인 평원에 위치한 신두푸라 불리는 어떤 지방에 도달하게 된다. 그곳의 도읍은 한때 매우 크고 당당했으며 신두푸라는 이름을 가졌고, 옛날에는 강력하고 부유한 왕들이 있었다.'
-파미르 이남을 만지라고 알고 있었을 때는 '그럼 만지의 쎈타는 간다라지방쯤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간다라지방의 동쪽 끝에 해당하는 페샤와르를 가리키는 신두푸를 역시 만지의 변경지역의 하나라고 하지 않는가? 이게 어찌된 일인가? 당혹감과 좌절감으로 무릎 꿇을 수 밖에 없었다. 알 수 없는 영역이거나, 마르코 폴로가 잘못 알았겠지 정도로 결론내리고 백기를 들고 꼬리를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기 대원전의 대하조에 아무다리아 남쪽의 대하(박트리아)의 수도 박트라(발흐)를 란시성(藍市城)이라고 부르고 있지 않은가? 고구려사와 수당史의 그 유명한 만 주 의 양 만 춘 장 군 의 안 시 성 이 여기에 있었다는 것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
아하! 만지변경의 하얀도시 - 악크발렉크 만지라는 말이 만주의 밝달(박트라, 발흐[발간-밝은 땅])이라는 말이구나. '밝은'이라는 말을 페르샤어 흰색을 의미하는 '악크'와 도시를 의미하는 '발렉'으로 (더군다나 발렉은 발크나 발흐와 발음도 비슷하니) 조합하여 조작해낸 것이다. 만 지 는 만 주 였 구 나!!!!!!
시르다리아와 아무다리아 유역이 만주 지방인데, 간다라 지방의 16국을 통합했던 수나라가 망하자 고구려의 만주지방이 확대되어 간다라 지방까지 확대되었다. 그런데 신라가 중원을 장악하면서 후고구려세력이 간다라지방을 장악하여 발해(대진국)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하자, 만주지방이 발흐 선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다시 왕건의 고려가 후백제(페르시아)를 통합하고, 발해를 통합(조작사에서는 거란의 요나라가 발해를 멸망시켰다고 해 놓았다)하면서 만주 지방이 다시 간다라 지방으로 확대되었다. 그래서 '만지변경의 하얀 도시, 발흐이고, 만지변경의 신두푸인 것이고, 카슈미르는 만지와 변경을 접하고 있다'고 한 것이다.
-이래야 말이 되는 것 아닌가?
하나만 더 짚어 보자. 발흐와 페샤와르가 만주의 변경이면 만주의 센타는 어딜까? 페르시아의 이란(테헤란)일까? 아랍의 이라크(바그다드)일까? 인도의 중부지방 어디일까? 아랄해 주변의 어디(우르겐치나 히바)일까? 도대체 서아시아, 남아시아, 남부 중앙아시아의 센타는 어디일까? 당연히 옛 진나라의 수도였던 진도(금도, 신두푸, 페샤와르)와 함양(안시성, 함흥, 발흐)이 중심이지 다른 중심이 있을 수 없다.
아하! 이것을 숨기고 싶어서 계속 만지변경이라는 말을 썼던 것이었구나. 힌두쿠시 남쪽이 독립적인 세력이 되면, 페샤와르와 발흐는 대치하는 쌍방이 되고, 통합이 되면 보완적인 양대 센타가 되는 것이었다. 아하! 아하! 천하의 센타에서 볼 때 천하의 경략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던 것이다. 바로 서아시아, 남아시아, 남부 중앙아시아의 센타이니까.
당신이 천하의 주인인 황제라면, 이 포인트에 누구를 세우고 싶은가? 장남은 태자로서 천하를 상속시켜야 하니까, 장남은 아니라도 최소한 차남 정도는 이 포인트에 세워야 할 것 아닌가? 무굴제국을 세웠다는 바부르는 조선 천하(조선 천지)의 제 2인자 정도가 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대당서역기의 중국의 개념
대당서역기 P103 '이 나라는(가습미라국-현 카슈미라) 본래 용이 사는 연못이었다. 옛날 불세존께서 오장나국(스와트지방)으로부터 사악한 신을 항복받고 나신 뒤 중국(中國)으로 돌아 오고자 허공을 타고 오시던 중 이 나라(가습미라국) 상공에 이르셨다가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
-이때 중국이란 간다라 지방을 말하는 것으로, 서경은 현 베그람(카피사, KAPISA-대당서역기의 가필시)이고, 동경은 페샤와르(신두푸, 진도, 금도, 동방견문록의 파샤이, 대당서역기의 포로사포라)이다.
동방견문록을 다시 한번 인용해 보자. P307 '내가 여러분에게 위에서 말한 산지를 (발흐에서) 서쪽으로 20일 동안 가면, 역시 만지의 변경지역의 하나인 평원에 위치한 신두푸라 불리는 어떤 지방에 도달하게 된다. 그곳의 도읍은 한때 매우 크고 당당했으며 신두푸라는 이름을 가졌고, 옛날에는 강력하고 부유한 왕들이 있었다.'
'옛날에는 강력하고 부유한 왕들이 있었다.' - 옛날의 왕들을 한번 열거해 보자. 마우리아조(진나라), 쿠샨 굽타조(한나라 구려의 직할지), 수나라, 발해의 강력하고 부유한 왕들의 東京이었다는 것이다.
중국이란 바로 이 남천축국의 서경 동경이 있는 간다라 지방이다.
왕오천축국전/학고재,정수일 P281~285 '간다라국은 대체로 오늘의 파키스탄 라왈핀디와 페샤와르,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을 포함한 인도 펀자브 지방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곳은 중앙아시아로부터 인도로 진입하는 인후로서 전략상 요지였을 뿐만 아니라 동서 문명 교류의 요로이기도 하였다.... 건타라를 찾은 현장은 이 나라가 동서로 천여 리이고 남북이 팔백여 리나 되며, 동은 신도하에 임해 잇고, 대도성인 포로사포라(페샤와르 - 파샤)는 주위가 40여리에 달하며, 왕은 후예가 없어 가필시국(계빈국)에 복속되어 있다고 하였다.
사실 현장이 방문했을 때는 2)돌궐이 1)에프탈을 대신해 간다라국을 지배하고 있었다. 현장이 귀국한 후 얼마 안되어 서돌궐이 3)당조에 의해 멸망(658년)하자 돌궐은 몽지와 곤릉의 2도호부로 나누어졌고, 중국은 세력을 가필시와 개실밀(카슈미르)일대까지 확장하였다. 그리하여 가필시는 안서도호부 예하의 수선도독부로 편입되고 왕은 당조가 책봉하였다. 4)753년에 오공이 당나라 사신 장도광을 수행하기 위해 건타라국에 갔을 때는 이 나라가 계빈국(가필시) 동부의 한 도성이 되어, 왕이 여름이면 이곳에 머물고 겨울에는 계빈에서 보내곤 했다.'
- 1)에프탈은 수나라를 의미한다. 수나라를 숨기기 위해서 조작했던 것이다.
2)돌궐은 고구려를 의미한다. 고구려를 숨기기 위해서 조작했던 것이다.
3)658년 당나라 신라가 이 지역을 정벌해서 고구려의 도호부에 소속되었던 군대를 2개 도호부로 나누어서, 안서도호부에 소속시켰다는 말이다.
4)그러나 너무나 뜻밖에도 수선도독부에 편입된 이 지역에 당 사신 장도광이 온다(753년). 당조가 자신이 정벌하고 도독부를 둔 지역에 웬 사신을 보내는가? 자신의 군대가 패퇴하여 그 지역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어느 세력에게 패퇴했을까? 바로 대조영을 중심으로 한 후고구려(대진국, 발해)세력이 당군을 패배시키고 이 지역을 장악하고 웅거하고 있기 때문에 사신을 보낸 것이다.
이때 포로사포라가 가필시국(대진국, 발해)의 동부의 한 도성(동경)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여기가 남부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남아시아 동북쪽의 중국과의 모든 교역과 문화, 정치, 전략의 중심이 되는 중국이 되는 것이다. 대진국 발해와 이름이 같은 진나라가 바로 이 지역을 근거지로 하여, 중원을 장악하였던 것이다.
진나라와 마우리아왕조(마가다-굽타왕조) 관련된 년표(한국사연표/한국정신문화연구원)
BC627, 진목공, 효에서 진(晉)과 싸워 패배(뒤에, 목공은 춘추오패로서 크게 영토를 넓힘)
BC563, 갠지즈강 유역에 앙가, 마가다등의 소국가 분립(마가다국은 BC6세기무렵부터 강성하기 시작함.)
BC430, 인도 와가다왕국, 갠지즈강 유역을 통일. - 와가다는 박달 혹은 배달족인 진나라의 이명 마가다(마하가타 - 대가라 즉 대가야)로 사료됨.
BC325, 진이 왕을 칭하니, 열국이 이에 따름.(혜문왕-지역제후가 아닌 왕조를 설립)
BC317,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왕조 설립.(~BC180)
BC300, 인도의 마우리아왕조, 인더스 강, 갠지tm 강 유역을 통일.
BC292, 마우리아왕조, 빈두사라왕 즉위. (소양왕[진시황의 아버지], BC306년[~250년) 즉위)
BC268, 마우리아왕조, 아소카왕 즉위.(왕조 최전성기 시작)
BC261, 아소카왕, 동남인도 카링가 왕국 정복.
BC260, 진, 장평에서 조에 대승.
BC256, 진, 주나라를 멸함.
BC249, 진, 여불위, 재상이 됨
BC246, 진시황 즉위.
BC244, 아소카왕, 제3차 불전 결집.
BC237, 진시왕, 이사 등용.
BC232, 아소카왕 죽음.
BC221, 진시왕, 중국 통일
BC210, 진시황제, 죽음.
BC206, 진나라 멸망.
BC184, 마우리아왕조 멸망.
- 아무 의도 없이 그 년표에 나오는 진과 마우리아조를 시대별로 뽑아 보고 필자 스스로가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렇게 그 시작과 끝이 이렇게 똑 같을 수 있단 말인가? 그 대표적 군주와 사건을 비교해 보자.
진나라의 대표적 군주 /진목공-춘추오패 /혜문왕 /소양왕 /진시왕
마우리아의 대표격 /갠지즈유역통일 /찬드라굽타 /빈두사라왕 /아소카왕
진나라와 마우리아왕조는 같은 사건을 조금 다른 지역으로, 조금 다른 사건으로, 조금 다른 시대로 각색한 이란성 쌍생아임이 분명하다.
진(秦)은 匠隣切의 발음으로서 중국어 발음은 QIN 즉 친으로 발음한다. 상나라가 망해서 이 간다라지방으로 이동해 온 상도(시앤도, 신도, 신두, 힌두, 진도)를 原天竺(天毒, 身毒, 信度)으로 바꿔치기를 했지만, 秦都 혹은 震都 혹은 錦都로 불렀던 것이다. 그래서 그 지역을 장악했던 발해의 이름이 大震國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간다라지방은 워낙 거대한 지리적 장벽으로 인해 원 천축인 중원과 상대적으로 독립된 지역인 서아시아와 남아시아의 쎈타로서 중국이라고 불릴 수 있었던 것이다.
법현전의 중국의 개념
고승전 P499~500 '이 강(신두하)을 건너 곧 오장국에 이르렀는데, 그 오장국은 바로 북인도이다. 여기서는 모두 중인도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중인도는 소위 중국이라고 한다. 속인들의 의복이나 음식도 또한 중인도와 같으며 불법이 대단히 성했다.'
-우리가 이 문장을 보면 조금도 무리 없이 바닥샨 바로 아래 지역인 오장국은 북인도 혹은 북천축이고, 그 아래쪽에 있는 간다라 지방은 중인도 혹은 중천축인 중국으로 이해되고 아무 의심 없이 깔끔하게 스무드하게 넘어갈 수 있다. 여기까지라면, 대당서역기의 중국 개념과 모든 역사적 왕조와도 크게 무리 없이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왕오천축국전/학고재,정수일 P302 '의상과 음식, 풍속은 건타라국과 비슷하나 언어는 같지 않다.'고 나와 있다. 언어는 건타라국과 같지 않단다. 여기 무언가 수상한 냄새가 난다.
이제 대당서역기 P83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얀 모직 옷을 입는데 소수의 사람들은 그 밖의 옷차림을 한다. 언어는 다르기는 하지만 인도와 대체로 같으며, 문자와 예의는 자못 인도와 서로 관계 있다.' - 여기서 이제 그 윤곽과 정체를 어느 정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그 언어가 인도와 대체로 같다면, 문자와 예의가 인도와 관계가 있다면, 인도에 들어가서 이런 문장을 굳이 남길 이유가 있을까?
만일 오장나국이 중원에 있는 중국의 한 부분인데 인도말을 한다면, '야 그거 신기하네! 왜 인도 말을 한담. 뭐 좀 다르기는 하지만 완전히 인도말이네.'라고 말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그 실 내 용 은 인 도 에 왔 는 데, 오 장 나 사 람 들 은 원 천 축 의 말 을 그 대 로 쓰 고 있 다 는 말인 것이다. 原 천축 즉 조선천축의 말을, 즉 신라 고구려의 말을 즉 신강 지역과 감숙성 지역과 만주 지역의 말을 그대로 쓰고 있다는 말인 것이다.
그 문장을 '언어는 다르기는 하지만 원 천축과 대체로 같으며, 문자와 예의는 자못 원 천축과 서로 관계가 있다.'고 고치면, 그 문장이 의미도 닿고, 상식에도 통하고, 그 문장이 존재의미도 가지는 것이다. '옷도 우리하고 똑같이 흰 옷을 입네, 소수 예외도 있지만.' 이렇게 되어야 그 앞문장도 의미를 가지는 문장이 되고, 현장이 좀 덜 떨어진 중‘님’으로 보이지 않게 될 것 아닌가?
이제 대당서역기 P83의 주2)를 한번 보자. ‘"법현전"에는 '오장나국은....모두 중천축국의 말을 쓴다. 중천축국이란 중국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이 스와트강 근변의 SWAT KOHISTAN은 DARDISTAN이라 불리며, 그 방언은 언어상 DARDIC어파라는 이름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것은 고래로 고립적인 상황이면서도 언제나 서쪽 인접 지역인 이란어와 교섭을 가져왔던 본질적으로는 인도 아리아어에 속하는 언어이다.'
- 쩌-릿 쩌-릿한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 가고, 전신의 모든 피부가 흥분으로 부들부들 떨린다. 여기 주2)에서와 같이 그 원문을 살짝만 노출시키면, 완전히 다른 의미내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바로 우리가 대당서역기 본문을 분석했던 내용이 바로 튀어 나오는 것이다. 이 중천축 즉 중국이라는 말로 다시 본문을 바꿔 보자. '언어는 다르기는 하지만 중천축(중국)과 대체로 같으며, 문자와 예의는 자못 중천축(중국)과 서로 관계가 있다.' 어떤가? 말이 통하는 문장이 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또 이란어 타령을 하고 있다. 그러면 뭔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과연! 과연 그랬던 것이다.
고승전 속고승전 명고승전 해동고승전이라는 고승에 관한 한 '대백과사전'과 같은 대 시리즈물이 먼저 완성되어 출간되어 버렸는데, 이를 어쩌나? 그 중의 딸랑 한권 고승전에 이 '법현전'이 끼워져 있는데, 아-차! 이 한 어구를 놓쳐버린 것이다. 이런 실수를 발견한 대당서역기와 왕오천축국전의 집철 교감자들이 이 흠집 때우기 작업에 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1) 대당서역기 P103의 가습미라국조에서 '이 나라는(가습미라국-현 카슈미르) 본래 용이 사는 연못이었다. 옛날 불세존께서 오장나국(스와트지방)으로부터 사악한 신을 항복받고 나신 뒤 중국(中國)으로 돌아오고자 허공을 타고 오시던 중 이 나라(가습미라국) 상공에 이르셨다가 아난에게 말씀하셨다.'고 오장나국에서 중천축국이라고 심어 놓은 고라크푸르, 바라나시, 파트나가 있는 비하르주로 오는 직선거리의 중간에 있는 가습미라국조에서 중국이라는 어구를 살짝 끼워 넣어 놓았다.
조작해 놓은 문구들의 형식논리학 상으로는 말이 되지만, 의미론적 맥락으로는 서아시아 남아시아의 중국은 간다라지방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이 의미론적 맥락을 아는 우리에게는 이 땜질이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오히려 자기들이 바라는 것과는 정반대로 위의 대당서역기의 중국의 개념과 같이 실제 의미론적 맥락의 중국일 수밖에 없는 간다라 지방의 모든 역사적 실상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주게 된 것이었다.
거기다가 덤으로 의미론적인 맥락으로 볼 때의 남천축국의 중국이 간다라 지방이라면, 원천축국 혹은 중천축국의 중국이 현 중국의 맨 서쪽 끝에 붙어 있는 것과 똑 같이 현 인도의 맨 서쪽 귀퉁이에 붙어 있게 된 것이다. 오히려 인도를 벗어나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북쪽 지방에 붙어 있게 된 것이다. 왜 그럴까? 현 인도의 중국이나, 현 중국의 중국이 아니라, 간다라 지방은 서아시아 남아시아 중앙아시아의 중국이고, 신강지방은 천하의 중국이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는 우리의 의식에서 베어 내버렸기 때문에 서쪽 귀퉁이에 붙어 있는 것처럼 인식되는 것이다. 언제쯤 우리의 마음이 동서좌우가 균형잡힌 전체를 아우르는 온전한 원상태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인지 아직은 마음이 갑갑하기만 하다.
2) 대당서역기 P83의 오장나국 조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얀 모직 옷을 입는데 소수의 사람들은 그 밖의 옷차림을 한다. 언어는 다르기는 하지만 인도와 대체로 같으며, 문자와 예의는 자못 인도와 서로 관계있다.'와 같이 고심에 찬 어색한 문장으로 땜질을 시도하는 것이다.
3) 그래도 부족하고 아쉬우니까 주3)의 완전범죄의 땜질을 시도하다가 '중천축국이란 중국이다'는 구절을 노출하는 실수를 다시 범하는 바람에 완전히 들통나고 말았다.
4) 왕오천축국전 P302 '의상과 음식, 풍속은 건타라국과 비슷하나 언어는 같지 않다.(言音不同)'의 땜질은 좀 특별한 데가 있다. 건타라를 서아시아와 남아시아와 남부 중앙아시아의 중국(건타라국)이라고 살짝 노출시켜서, 의상과 음식, 풍속이 원천축국(중국)과 같다는 말을 살짝 돌려 놓은 것이다.
거기다가 대당서역기의 '언어는 다르기는 하지만 인도와 대체로 같으며, 문자와 예의는 자못 인도와 서로 관계가 있다.'는 문장의 의미가 '대체로 같고, 자못 관계가 있다'는 내용을 뒤엎어서 '다르기는 하지만'의 조건절만 살려서 '언음부동'(언어는 같지 않다)이라고 쳐박아 넣고 덮어버렸다. 대단히 천재적인 발상과 솜씨이다. 덕분에 간다라 지방이 의미론적 맥락으로 볼 때에 서아시아와 남아시아와 남부 중앙아시아의 중국이라는 힌트를 얻게 되었지만, 그 실력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저릿저릿한 흥분에 겨워 그대들의 실수를 감싸 안고 환희에 벅찬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이제 칠흑같은 밤은 보내고 환한 아침을 이리도 기쁘게 맞이 하노니! 법현 현장 혜초의 참으로 길고도 멀리 뻗치는 깊고도 큰 법력 덕분이로다. 내 반드시 남석 스님이 계신 개태사에 찾아뵙고 간단한 차례상을 차리고 세분의 억울한 온갖 누명을 하날님께 고하여 벗겨 드리는 제를 지내고 백팔배의 감사기도를 드리리라!!!
그러니까, 결론은 북천축도 동천축도 서천축도 남천축도 중천축도 없었다. 오직 천축뿐이었다. 조 선 천 축. 나머지는 전부 조작이었던 것이다.
-가령 이 필자의 출생지가 이리라고 하자. 우리 집안의 증조할아버지 형제들이 하도 살기 힘들어서 선산 지킬 우리만 빼고, 1900년대초에 나머지 4형제가 모두 현재의 만주 흑룡강 성으로 이주를 했는데, 거기 무인지대의 무한에 가까운 광야를 발견하고, 친구와 집안사람들에게 연락을 해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주를 했는데, 위생관념이 발전하고 의료혜택도 없지 않았고, 그쪽 현지인 작은 부인도 얻고 해서 보통 한 집안 당 자식수가 한 15명 정도가 되기도 해서 집안 식구들만 근백년 사이에 몇 천 명이 되고 친구 등 아는 사람의 집안도 또한 몇 천 명이 되었단다.
그래서 어엿한 소도시를 하나 이룰 정도의 대 집성촌을 형성하자, 거기 읍내에 흐르는 강을 이리강(이리 시내를 흐르는 강의 이름)이라고 부르고, 그 읍내를 이리라고 부르게 되고, 물론 그 동네에서 통용되는 말은 이리의 사투리를 그대로 사용했단다. 물론 현실은 항상 뻑뻑한 법이라, 일본어를 때로는 중국어를 때로는 러시아어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이리 사투리를 많이 사용했다. 물론 장례식이나 결혼식등의 행사가 있으면, 항상 흰 두루마기와 치마 저고리를 빠지지 않고 다 입었단다.
아버지 고향은? 아버지는 어디 사람고? 물으면, 이리 분, 이리어른, 이리양반 일리스키등 정말 갖가지 온갖 표현의 답을 다 했단다. 한국의 다른 지역 출신이나, 러시아나 중국의 교포출신이 들을 때 이미 많이 헷갈려서, 나중에는 그분들을 부를 때는 이르어르노므(이리어른놈)로 부르기도 했단다. 그런데 정작 러시아 중국 일본사람들이 듣고 일얼스키, 일분살진등 얼토당토 않은 명칭이 다 나오고, 거기에 복잡하게 전라도내기 호남인, 남반부 아-, 조선인, 반도놈, 식민지놈, 조작배기, 엽전, 이주민 등등 복잡하기 짝이 없었단다.
그런데 거기에 정식 행정명칭과 우편주소 명칭이 필요해지고, 일본식민지가 시작되면서, 엉뚱하게도 발음도 안되는 훌룬베이얼현 두얼보터멍시 우란하오터구 등등등, 좀 있다가 소련군이 밀고 와서 이노켄트예브카 노보트노이치코예(가칭), 좀 있다가 인민해방군이 와서 랴오양똥뻬이구 메이허커우가, 좀 있다가 홍위군이 와서 랴오허티엔구 메이허거우로 부르더니, 다시 헤이룽장성 쑹화자치현 이리시로 불린다고 한다.
그런데 국내에 있는 원 이리는 일제식민지를 겪고, 분단과 함께 미군정도 겪고 남북전쟁도 겪고, 군사독재도 겪는 바람에 많은 전변을 겪고, 조선어 맞춤법도 생기고 이후 맞춤법이 몇번 바뀌기도 하고, 창씨개명도 하고 지명개칭도 하다가 박 정권 때 최종적으로 익산시라고 확정되었다고 하자. 그리고 세월이 100년이 흐른 뒤에는 이리는 흑룡강에 있는 곳이고, 익산은 한국에 있는 곳이 되어 버린다.
흑룡강과 한국의 양쪽에서 벌어진 역사적 추이의 흐름을 감을 잡지 못하면, 이리가 5천리나 떨어진 흑룡강이 원 이리인 것으로 인식되어 버린다.- 실제 필자의 증조부의 고향은 밀양이다. 고향이라고 할 수는 없다. 증조부 때 대륙에서 피난을 오신 것으로 추정되니까.
이제 실제 조선천축의 이주민들이 자리 잡았던 만주의 한 지역, 마르코 폴로가 '만지의 변경지역의 하나인 신두푸'를 예를 들어서 살펴 보자. BC1520년경 하나라가 망하면서 남쪽으로 밀려 온 사람들은 자기를 '하(샤)'라고 했을 것이다. 그 이전에 온 사람들은 '팕트ㄹ 혹은 밝 혹은 샼트(얔트, 야르)'라고 했는데, 요즘 고향 고국에서는 간단하고 편하게 '夏(샤-사카)'라고만 하는구나 하고 짐작했을 거다.
좀 더 발전한 청동기와 세련된 제사양식과 새로운 무기로 무장한 군대와 좀 더 우위에 있는 생산력을 가진 여태껏 황제(불천-법왕)로 모시던 제일 큰 어른이 오셨으니, 모두가 받들어 夏부다(카부라>카불 혹은 카부타>카푸라>카피라 혹은 카피티>카피시-카부타>구부타>굽타, 가라, 가락, 고락, 가야)성으로 모셨을 것이다. 가장 존경받는 큰어른으로 대접받았을 것이다.
여기 다시 BC1122년의 상조의 멸망으로 간다라지방으로 대이주하여 자기를 商(샹-天[티엔, 치엔, 시엔, 친, 신])이라 부르고, 자기 왕도를 상도(商都-天竺 天毒 身毒 信度 信頭) 혹은 신라(<神那-神[天 혹은 佛]의 땅 즉 불국토란 의미, 실라, 슈라)라고 불렀다. (BC1100, 아리아인, 갠지스 강 유역으로 이주. 인도에 철기문화 전파.-한국사연표, 단, 이때 갠지스 강이란 마르코 폴로가 키안수 혹은 GANGE-S[강수]라고 부르는 현 인더스강을 의미, 신강성의 동북쪽에 있던 상조의 세력은 감숙성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을 기자동래설로 정리하여 한국사연표에 나와 있음.)
이제는 한자문화와 강력한 철기문화와 세련된 통치술과 신기술과 합리적 사고방식 등으로 또다시 가장 존경받는 큰 어른으로 대접받고, 한 지역에 웅거했으니, 인도사에는 마우리아조로 기록이 남아 있으나, 중국사에는 秦나라로 남아 있는 세력이다. 그 한 지역이 현 페샤와르(건타라 국의 포로사포라{PURUSAPURA>PERSHAWAR]) 지역이다. (슈라바스티[室羅伐悉底] 혹은 사위성 - 조작세력은 이를 저 북동 인도의 고락푸르와 바라나시 지방으로 옮겨 조작해 놓았다.)
또한 이 페샤와르 지역은 파사국 혹은 파랄사국(페르시아))으로 조작해 놓았다. 이제 서아시아 남아시아 남부 중앙아시아 지역에 철기문명을 들고 온 조직적인 세력이 주도권을 쥐고 역사를 주도할 수밖에 없다. BC1100년대에 페샤와르에 자리잡은 이 秦은 왕사성 혹은 사위성(슈라바스티-파사- 현 페샤와르)에서 교역과 산업과 정치와 문화의 급속한 발전으로 남아시아의 가장 번화한 중심으로 변모해간다. 바로 이때(BC1000년경) 100년 전까지만 해도 이 남천축의 중심이었던 카필라국의 태자였던 석가모니가 이 번화한 신문명과 권력의 중심(실라 슈라 수도)으로 출가해서 필사적인 고행의 구도를 한다.
그리고 앞글의 두산백과사전의 가비라국조에 말하는 것 같이 사위국이 그 서쪽에 있는 가비라국(현 카피사 혹은 베그람)을 정복한다. 商의 세력(秦나라 세력)이 이주한 지 약100여년 만이다. 참고로 전등록 1권/바로보인,문재현 P45~48 '이때(부처님이 탄생하실 때)가 주소왕 26년 갑인 4월 8일이다....이때(부처님이 돌아가실 때)는 곧 주목왕 53년 임신년 2월 15일이었다.' 주소왕 26년은 BC1027년이고, 주목왕 53년은 BC949년이다.
두산백과사전의 秦조에
'BC 10세기 목축으로 이름이 나 있던 대구(大丘)의 비자(非子)는, 주나라 효왕(孝王)으로부터 진읍(秦邑:甘肅省 淸水縣)에 봉해져 서융(西戎)의 방위를 맡음으로써 진을 일으켰다. 그 후 진은 BC 8세기 초, 주나라가 견융(犬戎)의 공격을 받을 때 유왕(幽王)을 도왔고, BC 771년 평왕(平王)이 동쪽 낙읍(洛邑)으로 천도하였을 때에는 이를 호위한 공으로 산시성[陝西省]의 서부 지역을 맡아 제후(諸侯)로 승격하였다. 이가 襄公이다.
진나라는 BC 7세기의 무공(武公) 때부터 정복지를 현(縣)으로 만들기 시작했는데, 현이라고 해도 그것은 명목일 뿐 실상은 읍과 다름이 없었다. 진나라는 간쑤성[甘肅省] 동부에서 웨이수이강[渭水] 연안을 따라 이동하다가 무공의 동생인 덕공(德公) 때에 옹성(雍城:陝西省 鳳翔縣)으로 이동하였다.' -물론 다 조작이다.
다시 한번 정리하자.-
진나라와 마우리아왕조(마가다국) 관련된 년표(한국사연표/한국정신문화연구원)
BC627, 진목공, 효에서 진(晉)과 싸워 패배(뒤에, 목공은 춘추오패로서 크게 영토를 넓힘)
BC563, 갠지즈강 유역에 앙가, 마가다등의 소국가 분립(마가다국은 BC6세기무렵부터 강성하기 시작함.)
BC430, 인도 와가다왕국, 갠지즈강 유역을 통일. -와가다는 박달 혹은 배달족인 진나라 혹은 마가다로 사료됨.
BC325, 진이 왕을 칭하니, 열국이 이에 따름.(혜문왕-지역제후가 아닌 왕조를 설립)
BC317,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왕조 설립.(~BC180)
BC300, 인도의 마우리아왕조, 인더스 강, 갠지스 강 유역을 통일.
BC292, 마우리아왕조, 빈두사라왕 즉위. (소양왕[진시왕의 아버지], BC306년[~250년) 즉위)
BC268, 마우리아왕조, 아소카왕 즉위.(왕조 최전성기 시작)
BC261, 아소카왕, 동남인도 카링가왕국 정복.
BC260, 진, 장평에서 조에 대승.
BC256, 진, 주나라를 멸함.
BC249, 진, 여불위, 재상이 됨
BC246, 진시황 즉위.
BC244, 아소카왕, 제3차 불전 결집.
BC237, 진시왕, 이사 등용.
BC232, 아소카왕 죽음.
BC221, 진시왕, 중국 통일
BC210, 진시황제, 죽음.
BC206, 진나라 멸망.
BC184, 마우리아왕조 멸망.
이 이후의 진의 후세의 궤적을 추적해보면, 왕오천축국전 P148 '기원전 2세기 말엽에 마우리아왕조가 망한 후 순가왕조, 칸바완조, 등승왕조, 사카족이 세운 쿠샨왕조에 점령되었다. 쿠샨왕조의 쇠퇴를 틈타 320년 화씨성에서 기의한 찬드라굽타 1세는 강대한 통일 굽타 왕국을 건립하였다. 마우리아 왕조의 영토와 비견되는 영토를 확보하고....법현전에 '여러 나라 중에서 이 나라의 도읍이 가장 크고 사람들은 부유하며 인의를 다투어 행하고 있다고 하였다.'
P150 '신당서 "천축국전"에서 마가다국을 인도의 별명이라고 했을 만큼 마가다국은 중국에 잘 알려진 중요한 국가였다.' P156 '마가다국이 중국인들에게 북인도의 지배국으로 간주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혜초는 마가다국에 녹야원(첫 설교지), 구시나(열반지), 사성(왕사성, 사위성-구도지, 25년간 설교지, 영취산과 죽림정사-마우리아조의 창건주인 빔비사라왕[두산백과에서 진을 일으킨 비자]이 세워준 최초의 정사), 마하보리사(대각득도지)등의 4대영탑이 있다고 했다.
슈라바스티(사위성)가 있던 페샤와르 지방이다. 이것을 중인도에 조작해놓은 것이다. 빔비사라왕은 BC10세기에 마우리아조를 일으킨 그래서 그 옆에 있는 가비라국(석가모니의 출생국인 사카족의 나라)을 멸망시킨 석가시대의 商 출신의 왕이다.
마가다국의 별명을 보자. 마게타 마가타, 마갈, 묵갈제(묵갈타)등 여러 이름이 있다. 먼저 집사 2권 칭키스칸기 P274 '힌두와 카시미르의 언어로 키타이 지방을 친 마친 지방을 마하친 즉 커다란 친이라고 부른다.'의 용례와 같이 마가다 혹은 무갈의 마나 무는 마하의 줄임말이다. 그러면 마하가타라는 말은 대가타 대가라 대가야라는 말이다. 찬드라굽타 1세는 16가야(가락국)을 통일한 대가타 대가라 대가야의 창건자라는 말이다.
굽타왕조는 에프탈과의 전쟁에서 6세기 말에 붕괴되었다. 에프탈은 사카족이 세운 수나라다. 619년에 수나라가 망하자 고구려의 도호부가 들어선다. 그리고 당나라의 공격으로 659년에 당의 도호부가 들어선다. 698년 발해세력이 대진국을 세우는데, 대진국이 마하친 혹은 마친이다. 왕건의 고려의 직할지가 되어서 고려의 만주의 도호부로 존속하다가 근세조선의 만주 도호부로 존속했다.
18세기 인도에 대한 영국의 식민지정권이 이 지역의 실력자 무굴(마하구르 - 대고려 - 조선의 제후국)왕국을 앞세워 무굴제국으로 조작하였다. 무굴이란 말도 마가다국의 다른 이름 마갈이나 무갈과 같이 무정형모음의 약점을 이용해서 마하가라 즉 대고려 대가라 혹은 대가야제국을 무굴(모굴)제국으로 이름을 변형 고정시킨 것이다.
조선을 명나라나 청나라로 변모시킨 것과 거의 똑 같다. 그 변모된 명나라나 청나라(사실상의 조선)를 동쪽으로 이동시켜서, 사실상 정식 국가권력의 시스템 안으로 들어오지 않던 동쪽 왜의 세력권을 명나라 청나라의 주류역사로 만든 것과 똑같이 석가시대부터 인도의 동북지방을 석가의 활동무대인 것처럼 꾸며 놓고, 인도의 중국인 것처럼, 중천축 혹은 중인도로 이름붙이면서, 마지막 무굴제국까지 인도의 중심이 마치 중인도(현 인도의 중부지방)인 것처럼 조작해 놓은 것이다.
원천축인 조선 중조의 역사의 주무대가 신강 감숙 지방을 포함한 중앙아시아인 것과 똑 같이 남천축국(마친, 대진, 마가다, 무굴)인 인도와 서아시아 남부 중앙아시아의 역사의 주무대는 간다라지방인 것이다. 인도역사의 두축 夏(샤-사카 스키타이 키타이 카타이 카레이 코레이 구르 가라 가야 카부타 굽타)와 商(시앙-천 티엔 친 신)의 대결과 협력으로 진행되던 이 역사를 영국의 식민지정권은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는 잘라내 버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 역사로 조작한 것인데, 장기간 좀더 강력했던 商都(天竺 天毒 身毒 信度 信頭 실라 슈라 사위)를 현대 인도의 고대사로 확정하고, 원 천축 중국은 역사에서 삭제해버린 것이다.
원 천축에서 온 기본철학(原 불교)은 브라만교 혹은 힌두교로 정리하고, 이는 코카서스지방에서 온 아리안이 가지고 온 것이라고 간단히 정리해버린다. 원 천축 즉 조선천축의 근본뿌리와 그 사상 종교를 감 잡기 위해서는 힌두교 경전들을 참고하는 수밖에 없다. 우파니샤드를 연구해야하는 소이연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코카서스 지방 근처에 원천축의 흔적을 조작해 놓고 일본과 유럽의 사학자들의 몇몇 논저들로 얼버무려 놓고 있다.
동방견문록에서 그 흔적을 찾아 보자. P111 '도시(바우닥-현 바그다드) 한가운데로 굉장히 큰 강(티그리스 강) 하나가 지나고, 그 강을 따라가면 무사히 인도양에 도달할 수 있으며, 상인들은 상품을 갖고 그곳을 왕래한다. 그 강이 바우닥에서 인도양까지 족히 열여드레 거리이며, 인도양으로 가려는 상인들이 그 강을 따라 키시라는 도시까지 내려가 거기서 인도양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47)에서 '이 부분은 마치 바그다드에서 티그리스강을 따라 내려가면 바다로 들어가는 항구도시 키시를 만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인도양 무역의 주요 거점 항구인 키쉬는 티그리스 하구에서 동남쪽으로 200마일(320킬로-서울 부산간 직선거리)이나 떨어진 해안에 위치해 있다.' 동방견문록을 집철 교감한 자들이 바그다드와 키시를 마치 가까이 있는 한 짝인 듯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 조작한 사실을 주47)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신시배달과 힌두쿠시와 천축학시의 짝을 키시와 함께 여기 바그다드(縛達, 白達, 報達-P111 주43에서)에 심을려고 했는데, 영민한 김호동교수님께 들켜서 지적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바그다드 바로 남쪽에 바빌론 유적지가 대대적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슈메르 유적지도 함께 조성되어 있다.
대당서역기와 왕오천축국전에서 페샤와르에 있던 파사(파랄사, 포로사푸라 - 슈라바스티 혹은 사위성)를 페르시아로 조작하는 것은 '중아아시아 5 파샤이'에서 보여 주었다. 목적은 원 천축과 남천축을 숨기고, 그것이 페르시아나 그 이동 쪽쯤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 상기하자 파샤이 때려잡자 조작혼란!
이제 한단고기/정신세계사,임승국 P25 주2)에서 '한단고기를 처음 번역한 가지마 노보루(鹿島昇)는 한국사나 일본사를 히브리, 바빌론, 아카드, 슈메르 역사의 후손인 것으로 해석하고, 여기 나오는 나반과 아만을 아담. 이브일 것이라고 해석하고 아이시타를 노아의 방주와 관련지어 아라라트 산일 것이라는 식의 주해를 달았다.' P28 '한때 중국문화나 중국인의 기원을 바빌로니아부터라고 하는, 서양 내지 바빌로니아 기원론이 득세한 적도 있었으니 아마 가지마도 그런 학설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이런 학설로 한 때 유행했던 국내저작도 몇권 있다. 지중해문명과 단군조선/집문당,박용숙, 황금가지의 나라/철학과 현실사,박용숙, 한국미술사 이야기/예경, 박용숙, 이 세권만 보면, 서양 바빌론 기원론의 서양 일본 논저들이 다 나올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대단한 이론이나 증거가 나온다 하더라도, 그 문명을 담지한 언어의 뿌리 역사를 본다면, 온갖 거짓말이 금방 다 들통날 것을 뭐 그리도 야단들인지, 끙 안스럽고 가소롭다. 쯧.
고대 아리아인의 언어의 뿌리에서 페르시아>그리이스>로마 라틴어의 순서라는 것은 기본일 텐데, 어찌 그것을 역으로 돌린다는 말인가? 아리아인들은 코카사스에서 오지 않았다. 조선천축에서 온 것이다. 서구어의 모어인 아리아인의 언어 즉 산스크맅은 ㅎ한서글이다. 바로 한글이다. 한글의 고어인 실담어다. 바로 실라(신나, 신라)어다.
여기 케시미르(카슈미르) 지방을 떠나기 전에 카슈미르 출신의 인도 정치가 네루의 이야기 한 토막을 인용해 보자.
1935년에 나온 네루자서전을 1940년에 재판을 내면서, 그 서문으로 나온 글이다.
네루자서전/간디서원 P629 '내가 그리고 있는 미래는 중국, 인도, 버마, 실론,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가능하다면 다 른 나 라 들 까지를 포함하는 연방정부이다.'
-지중해부터 인도네시아까지의 나라들의 경계를 인도인이 결정하지 않았다. 중앙아시아와의 경계를, 중국과의 경계를 인도가 결정하지 않았다. 대영제국이 파키스탄에서 방글라데시까지 중국, 네팔의 남쪽까지 식민지의 영역으로 만든 것뿐이었다. 인도의 양심인 무저항주의자 네루는 대영제국과 프랑스와 러시아와 미국과 일본이 그어 놓은 이 악마의 경계선이 정치, 경제, 문화, 역사와 운명의 오랜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는 것에 대한 무저항적 저항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는 하나다!
아시아는 하나다! 아시아는 하나다! 아시아는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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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폭발이 시작되었습니다. 한선생님의 사자후가 드디어 온갖 거짓학문의 껍질을 부수어 버리고 있습니다.
천축국은 고대 한국의 성지라고 하더라구여..고대 원시 불교 태동지..이면서 한민족의 주무대...
아리아인들은 코카사스에서 오지 않았다. 조선천축에서 온 것이다. 서구어의 모어인 아리아인의 언어 즉 산스크맅은 ㅎ한서글이다. 바로 한글이다. 한글의 고어인 실담어다. 바로 실라(신나, 신라)어다.: 아주 명확합니다.
대체로 이 사이트에서 산해경에 근거해 [조선=천축], 즉 천축은 조선을 표현하는 형용사이거나, 다른 이름이라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아리아인은 고대 조선인으로 천산 신강성이 본 고향인 것입니다.
조선천축이 그곳이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리아인의 이동경로는 DNA분석으로 정립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류의 이동경로이기도 한 것이죠...
오! 아쇼카왕이 진시황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佛法으로 천하를 통일하지 무력으로 할 수 있겠는가? 징기스칸 역시 德으로 천하를 통일했을 것이다. 현재 미국 역시 겉으로는 덕치가 아닌가?
夏가 사카족인 것은 영문 위키 번역에서 충분히 드러냈습니다. 대하 박트리아 왕국은 이름이 벌써 夏이고, 주 백성은 월지족, 사카족, 이란(아리안족)족, 페르시아족이라고 위키에 나와 있습니다. [그레코-박트리아]왕국은 진실을 드러내면서 조작하는 것이었으니, 바로 [고려-배달] 또는 [고려-발해]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레코를 그리스의 형용사인 것처럼 꾸몄지만, 이제는 들통이 났습니다. 배달과 발해의 의미는 佛을 뜻하는 것입니다.
신강성 중조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케샤와르 지방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같은 것으로 싯담어(범어/신라어/크샤트리아어/사투리)인 것입니다. 대화할 때 사용하는 언어는 싯담어이고, 관청에서 사용하는 것은 한문이었을 것입니다. 한문이 발전하여 관화가 되고, 이것이 북경어가 된 것입니다.
商은 장사상과는 별로 관계가 없고, 음차였습니다. 이 商자를 지금까지 제가 풀지를 못했습니다. 관련된 글자가 없는 고립된 문자입니다.
방금 商자를 풀었습니다. 바로 高+人입니다. 高=夏=사카=색=이렇게 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음이 왜 "상"인지 풀지 못하겠습니다. 북경어로는 "샹(shang)"이고, 다른 음은 없습니다.
商자의 자원(字源)을 찾아보면... 갑골문, 금문에는 건축물의 모양으로 보입니다. 상나라 사람들이 세운 신사(神社)... 제사를 지내던 건물로 해석을 합니다. 갑골문 풀이를 보아도 상나라 사람들은 점을 치고, 조상의 제사를 잘 받든 것으로 나옵니다.
대륙의 지명에 商자가 많다는데, 상나라가 도읍을 13번이나 옮겼기 때문이고, 그래서 각지의 특성을 잘 알아서 물물교환에 능해서 장사를 잘했다고 합니다.<商>의 훈에 "헤아리다, 장사..."등의 뜻이 생긴 것은 그렇기 때문으로 보는데, 한선생님의 풀이로 보면, 商은 중앙아시아의 샤캬족이고, 그들이 동쪽으로 이주해 올 때, 여러지역에 넓게 분포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샤캬족이 장사에 능했다면 商자에 장사라는 의미가 생긴 것도 이해가 되지요.(샤캬족이 장사를 잘했는지는 풀어야 할 문제)
카슈미르, 파미르, 합밀 등에서 미르=밀은 우리말 용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용에는 水룡과 火룡이 있고, 수룡은 보통 굽이치는 강을 가리키고, 화룡은 산맥을 가리킵니다. 파미르 산맥과 카슈미르 산맥이 마치 용과 같지 않은가? 카슈는 갈석산과 닮았습니다. 카슈는 갈석산에서 음차한 것으로 보이고, 갈석을 음차한 지명이 중앙아시아에 많습니다.
갈석이 카스의 음차라고 봐야 하는것 아닌가요? 미르는 뫼山이라고 할 때의 뫼인 것 같습니다. 84세의 모친은 미-산이라고 하거든요.ㅎㅎ
파미르의 <미르>는 고개, 산으로 푸는게 맞으리라고 봅니다. 파미르를 중국에서는 총령(蔥嶺)이라고 쓰는데, 蔥의 훈독은 "파 총"... 바로 우리가 먹는 채소인 "파"입니다. 嶺은 "재 령"이니, 산, 고개, 고갯마루... 파미르는 파마루-->"파고개"인 셈입니다.
<캬슈>를 갈석의 음차로 보고, <미르>를 산으로 보면, 카슈미르는 갈석산???
타고르의 시: 동방의 등불에서 코리아가 카리키는 것은 아프가니스탄을 중심으로하는 중앙아시아를 가리킨다고 보아야 합니다. 한국도 포함하는 중앙아시아가 코리아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타고르가 1920년대에 일본열도의 동경에 초청받아 와서 일본 신문에 발표한 시랍니다. 당시 영국의 작전으로 일본을 열도로 옮기는 과정에서 열도 일본을 선전하고 세계적 문호의 기록에 남기기 위해서 타골을 초청해서 신문에 실을 시를 요청했을 때, 타골이 그 사정을 다 알고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내밀었던 것 같습니다. 1900년대의 코리아는, 객가의 광범위한 이동으로 이미 동부 해안 지방까지 거의 석권하고 있었읍니다. 이 다음에 실컷 얘기합시다.
馬한은 마하(maha) 韓이 아닐까 합니다. 즉 대한이 됩니다. 마한은 월지국(목지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마한=고구려=漢나라가 서로 겹칩니다. 월지국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천산 파미르산 서쪽 지역을 포함하는 중조/중천축국, 즉 신강성을 중심으로 하는 왕조가 아닐까 합니다.
타클라마칸 혹은 타(太)클라(大)마(大)韓이 그러니까 태대대한이 되는 셈이군요. 이렇게 정리해가는 게 제대로 공부해 가는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저도 활발히 댓글에 참여하겠읍니다. 감사합니다..
수나라와 관련있는 Hephthalite를 번역해보려고 합니다. 어원을 한국 발음 엽달에서 찾고 있습니다. 엽달/염달은 저강족에 속합니다.
http://en.wikipedia.org/wiki/Gaoche에 "the springs (千泉) north of Taskent"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千泉이 타슈겐트의 북쪽에 있다는 뜻입니다. 고차에 엄청난 분량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 번역하면 굉장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도사의 미스테리(거짓말)이 싹 들통나는군요. 드라비다 이전에 누가 주인인지 모른다고 얼마나 잡아떼던지.... 속이 다 시원합니다.
유근완 선생님: 商자 설명 좋습니다. 오래된 한자일 수록, 제사문화, 神과 관련이 깊습니다. 高+人에서 高자는 성문 루각을 상형한 글자로 높은 곳에 있는 건물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제사 지내는 신성한 곳입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을 뜻하는 것입니다. 즉 천제를 지내는 높은 사람들입니다. 商이 사카족: 박트리아의 월지족, 사카족 등은 장사에 아주 능했습니다. 저강족에 속하기도 하는데 역시 장사에 밝았습니다. 商의 음 "상"은 혹시 계산하다의 "셈"에서 나온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선생님의 글을 보면 商은 "센(仙,天)"과 통하므로, "센"과 "셈"은 어원이 같다고 보아야 합니다. 제사를 지내는 선인은 "셈"에 밝다는 의미로, 장사의 셈 보다는 머리가 좋다는 의미입니다.
商 =>高 + 人... 이 풀이도 참신합니다. 商자에 들어 있는 입 구(口)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볼 수 도 있으니까요.(설문해자에도 입 구(口)자가 사람을 의미한다고 풀어 놓았읍니다). 샤캬족이 장사에 능했다는 말에서 商자의 뜻이 더 확실해 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