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의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감상: 정호승 시인은 인간의 실존적인 본질은 '외로움'이라고 한다.
가슴검은도요새. 하느님도, 새들도, 산 그림자 지는 것도,
종소리도, 모두 외로운 것이라고
홀로 핀 상징 '수선화'를 위로 해준다.
숙명적인 인식을 통해 긍정을 노래하는 시다.
시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
김승희 (시인, 서강대 국문과 교수) 해설에 따르면,
정호승 시인의 시 세계에서
한국시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윤동주, 김소월, 한용운 시인을 만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상, 김수영 시인의 이질성의 미학,
<낯설게 하기>가 아닌
정호승 시인은 독자와 소통 가능한
동일성의 미학, <낯익게 하기> 에서 시작한다.
독자들에게 동일성의 미학에 기초한 시작으로 낯익은 느낌을 주며서도 선(禪)적 미학과 역설의 언어로 인해 낯선 충격을 동시에 주는 진귀한
시 세계를 개척하고 있다고 보았다.
-김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