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의 백인 우대도 문제지만 이웃나라 일본 사람들의 백인 우대도 병적인 요소가 있다고 할 만큼 문제가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포르투칼 상인들이 16세기에 일본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은 이후에 선진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백인에 대한 숭상은 가히 미신적인 수준까지 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본이 우리와는 달리 아주 잘 한 일이 하나 있다. 어찌 되었건 간에 그들은 모음이 다섯 개 밖에 되지 않는 혓바닥으로 외국어를 유창하게 한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너무 큰 부담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깨닫는 것으로 출발한다. 그래서 외국어에 아주 능통한 사람들 즉 번역하는데 특출한 인재들을 모아서 서양에서 나오는 책들을 번역해서 일본 사람들이 외국어 공부를 하지 않고서도 그 문화를 익힐 수 있고 또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게 된다. 이들을 얼마나 중시했는지 전쟁 중에도 그들은 징집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될 정도였다. 지금도 이 일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잘 되고 있나하면 미국 시장에 신간이 나오면 거의 일 주일 내지는 열흘 내로 일본 시장에 번역본이 나오고 있다.
전후에 일본의 경이적인 복구와 새로운 도약도 이들에 의해 물꼬가 이어져 갔다는 평가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패전 이후에 백인들에 대한 상대적인 열등감도 젊은이들 사이에선 큰 문제가 되고 있었다. 사실인지 모르지만 필자가 어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그런 백인들에 대한 열등감을 뿌리채 뽑기 위해 젊은이들을 세계로 내보내 서양 여자들을 섭렵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전쟁 뒤에는 항상 여인들이 승자에 의한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할 수 밖에 없던 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면, 일본은 그것을 역으로 이용해서 자신들의 뿌리 깊은 열등감에서 헤어나자고 했다는 얘기다.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또 그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 정도로 백인에 대한 열등감을 이겨내고자 하는 노력을 했고 그래서인지 전후 세대에겐 이제 백인은 동경과 선망의 대상은 더 이상 아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작금 우리나라에서는 전 나라가 영어 하나에 미쳐 날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 전 국민이 영어를 잘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외국과 거래가 있는 사람들만 (5% 내외) 잘하면 되고 일반인들은 인터넷 등을 통해서 읽고 이해하는 정도의 수준이면 충분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한다. (이 블로그에서 논하는 영어도 그 소수를 위한 나눔이다)
외국 영화를 다운로드 받아보면 번역된 한글 자막이 뜨게 되는데 외국 문화를 몰라 가끔 말도 안되는 번역이 있어 웃기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부의 지원 한 푼 없이 잘들 하고 있다. 영어로 그걸 다 알아듣고 같이 웃을 수 있으려면 국내에서만 한 20년 줄기차게 공부 해야 하는데 이렇게 번역을 잘하는 집단을 더 키우고 일반인들은 영어 공부하는 그 시간과 노력을 다른데 돌려야 국가적인 낭비를 줄이고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믿는다. 다른 학술적인 것들은 일본처럼 국가적인 지원을 통해 번역물을 내놓으면 될 일이다. 외국어 공부에 낭비되는 모든 것들을 줄여야 한다. 그래야 선진에 하루 속히 진입할 여력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겨울연가'나 '대장금' 같은 연속극들이 한류의 중심에 서서 뻗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수출을 염두에 두고 작가들이나 배우들이 영어로 쓰고 외국 사람들 정서에 맞게 연기한 것이 아니라 우리말로 우리 것을 보여주었고 전문가들이 번역을 기가 막히게 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즉 전달되는 매개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그 내용(contents)이 승패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는 중요한 사실과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는 진리를 깨우쳐 준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지금 영어에 미쳐 날뛰니.... 모든 것이 영어로 바뀌고 있다. 대형 백화점은 마치 외국에 온 것처럼 모든 안내판이 영어로 되어 있다. 어제 백화점 화장품 가게에 들렸는데 "링클 리무발"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것도 형편없는 발음으로! 이게 바로 우리말로 '주름 제거'라고 하면 상품 가치가 더 떨어져 보인다는 그런 일반적인 개념이 깔려 있다는 한 증거이다. 우유 어디 있냐고 물어보면 "아! 밀크요?"하는 말을 듣는 것은 이제 흔해 빠진 일이라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는다. 그러면서 콜 센터에서는 "화면이 나오시고", 식당에서는 영어식 표현을 그대로 따와서 "주문도 도와주고" "계산도 도와준다"고 하고, 신문에서는 연일 "이기적인 몸매"니 "착한 가격"이니 하는 어줍잖은 우리말을 듣게 된다. 게다가 아직도 열에 아홉은 상대의 성함을 확인할 때 "정자 운자 찬자 이십니까?"라고 무식을 떨어도 그거 하나 제대로 지적해주는 사람 찾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자기 나라 말과 전통적인 예의범절이 자기 나라에서 망가지고 있는데 누구 하나도 나서서 분개하지 않는다. 고매하신 국어학자나 한국학 학자들까지도!
요즘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고 부터 우리말을 배우러 오는 외국인들의 수가 늘고 있다. 또 외국에 우리말을 가르치러 나가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고 들린다. 우리말의 절반 이상이 영어로 바뀌어도 우리말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럴 리가 없다고? 사라져 가는 말들의 숫자는 기하 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19세기 초만 하더라도 3만 개가 넘던 말들이 지금은 5천개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다. 서구의 강대국들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면서 인류의 문화적인 유산인 각 민족의 말들이 지배자들의 말로 대체되면서 사라지게 되었고 따라서 그 민족도 지구상에서 사멸했다. 순 우리말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무더기로 사멸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말도 이미 위험 수위에 다다르고 있다고 봐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출산율 저하로 50년에서 100년 후의 민족의 생존 여부가 문제가 되고 있다. 이대로는 350년 후에는 단 한 명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구수 문제 보다는 이대로는 우리말이 먼저 사라지게 생겼다. 영어를 우대함으로 영어 단어가 우리의 정서에 파묻히게 되면 순수 우리말들부터 자취를 감추게 된다. 출산율 저하는 한 두 세대에 복구가 가능하지만 우리말의 쇠퇴는 다시 되돌리가 거의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백'과 '천'을 가르키는 우리말 '온'과 '즈믄'을 쓰는 사람은 지금은 하나도 없다. 게다가 번역이 쉬운 일본 책들을 아무 생각없이 마구잡이로 번역해서 팔아먹는데 혈안이 된 출판사들에 의해 일본 정서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말들이 우리말을 사정없이 침범하고 있다. 그야말로 협공 당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말이 사라진 우리 민족이 존재할 수 있을까? 정말이지 까무러칠 일은 이게 남이 강제로 시켜서가 아니고 우리 스스로가 우리말과 우리 것들을 서서히 죽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또 다른 사회적인 문제는 이렇게 영어를 숭상하다시피 하니까 영어를 가르치러 오는 온갖 어중이떠중이 백인넘들까지도 다 선생 대접 받고 또 경쟁적으로 떠받들다보니 골이 빈 여자들에 의해 연출되는 별의 별 희한한 사건들이 연일 신문에 오르내리게 되고, youtube.com을 통해서 전세계적으로 한국 여자들은 서양 남자들에 환장한 집단으로 비치게 되는 것이다. 이대로는 백인에 대한 우대 내지는 일종의 열등감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가 없다고 단언한다. 오히려 근시안적인 정책들로 인해 구한말부터 이어져온 백인 우대의 뿌리를 더 공고히 하는 아주 몹쓸 사회적인 문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언어가 가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오늘 현재 이명박 정부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신적인 예속을 더 가속화하고 종국에는 민족의 사멸 (extinction)을 부추기는 영어 만능 정책은 하루 속히 외국어 다변화 정책으로 바뀌어야 하고 우리말 보호와 발전에 더 많은 지원과 배려를 해야 한다.
4대강 사업 (약 20조?)이고 행정수도 문제고 간에 그건 통치자에게 맡길 용의가 있다. 따지고 보면 좌파 쓰레기들이 리북넘들에게 국민들 모르게 뒤로 퍼준 돈 (일설에는 60조~80조) 보다도 훨씬 적게 드는 일이고 지금은 안 퍼주고 있으니 그만한 돈 써도 우리 경제가 감당할 만하다고 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정신을 좀 먹게 만들고 겨레의 존속을 위협하는 영어 우선 정책에는 절대로 공감할 수 없고 이대로 두어서도 안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의 사람들은 국어학자들의 근시안적이고 국수적인 망령된 행동에 의해 한자를 배우지 않았다. 그들이 동남아에 나가면 간단한 간판이나 메뉴조차 읽지 못해 절절 매는 꼴을 보면 과연 국가경쟁력과 국가 브랜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자기 것을 스스로 내다버린 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