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란운(積亂雲 / Cumulonimbus)
적란운은 기상학에서 구름을 분류하는 ‘10종 운형’ 중 하나이다. 적란운은 권운의 높이까지 치솟는 크기가 엄청나게 큰 구름이다.
적란운은 많은 양의 수증기가 강력한 상승기류에 의해 탑 모양으로 솟구치면서 만들어지는 구름이다. 적란운의 순우리말 이름으로는 쌘비구름이 있다. 그 이름답게 비를 몰고 다니지만, 비가 세게 와서 쌘비구름이 아니라 수직으로 쌓이며 발달한 비구름이라는 뜻이다. 한자어 이름 ‘적란운’이나 영어 이름 Cumulonimbus나 똑같이 ‘수직으로 쌓여 비를 뿌린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는 적란운을 그냥 소나기구름이라고 한다.
적란운은 주로 외따로 생성되는 경우가 많지만, 온대저기압의 한랭전선의 전선면에서 형성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같은 곳에서 일과성으로 외따로 생성되는 적란운은 지름 30km 미만 국지성 셀(cell)인 경우가 많지만, 대평원의 기상을 자랑하는 미국에서 발생하는 슈퍼셀 중 간혹 거대한 것들은 최대 200km에 달한다.
뜨거운 공기든, 작열하는 태양이든, 수증기의 유입이든, 지형적인 원인이든 간에, 일단 강력한 상승기류가 형성되면 그 공기 속에 있는 수증기가 구름 덩어리의 모습으로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이것을 적운 또는 뭉게구름이라고 하며, 보통은 여기서 끝난다. 그러나 만일 상승기류도 충분히 강하고 수증기도 충분히 많다면 구름은 한도끝도 없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게 될 것이며, 결국 대류권 계면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곳의 고도는 무려 해발 10 km 또는 35,000 ft이다. 국제선 여객기가 날아다니는 그 높이다.
이렇게 높으니만큼 춥기도 엄청나게 추운데, 구름 하부는 물방울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는 다르게 구름 상부는 '빙정'이라는 얼음 알갱이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구름이니만큼 구름 상부의 모습은 마치 부드러운 새털처럼 보이기도 한다.
구름이 일단 대류권 계면(tropopause)에 도달하면 이때부터는 상승기류가 성층권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대신 계면을 따라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계면 근처의 평형 수준(equilibrium level; EL)에 도달했을 때 상승이 멈춘다. 그 이유는 구름은 상승기류를 타면서 점점 열을 잃게 되는데, 정의상 평형 수준에서는 구름의 온도와 구름 외부의 온도가 드디어 일치하게 되기 때문. 따라서 상승에 따라 열을 잃은 구름은 어느 순간 상승하는 힘을 잃게 된다. 구름이 대략 이쯤 되면 벌써 구름 아래에서는 강수가 나타난다고 봐도 된다.
한 덩이의 적란운 속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가 있다. 그리고 수직형의 구름이 다 그렇지만 적란운은 특히 심해서, 그 내부에는 격렬한 대류현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비행기를 몰고 함부로 들어가는 것은 그다지 권장할 만한 행위가 아니다. 물론 들어간다고 바로 죽는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치 앞도 안 보이는데 최대 30 m/s 정도의 강풍이 수직으로 불어대는 곳이니... 항공 사건사고 문서를 봐도 알겠지만 적지 않은 사고사례에 기상악화가 크게 한 몫을 했다.
어쨌건 구름이 매우 두텁기 때문에, 상부는 햇빛을 산란하여 찬란한 흰빛으로 빛나지만, 하부는 거꾸로 햇빛을 흡수하여 어두컴컴한 먹빛이 된다. 구름이 두꺼울수록 거의 한밤중을 방불케 할 만큼 어두워지며, 미국 중서부의 슈퍼셀이 이런 특성을 많이 띠고 있다.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강수 도중에는 구름 상층부에서 중층부까지 격렬하게 번개가 치며, 저녁이나 밤중에 잘 보인다. 심하면 노래방 미러볼처럼 현란하게 반짝이기도 한다. 국제선 여객기를 타고 저녁 어스름에 적란운을 만난다면 한번 유심히 관찰해 보자. 보잉 767 콕핏에서 촬영한 모습
강수가 모두 끝나면 당연히 적란운도 사라진다. 구름의 하부에서부터 점차 그 형태를 잃고 흩어지면서 부서져, 하늘은 회색빛의 편운들 사이로 부드러운 권운과 함께 파란 하늘이 다시 드러나 보이게 된다.
참고로 육지에서는 주로 한낮 오후에 생성되지만 대양에서는 오밤 중에 생성되는 경우가 많다. 육지에서는 일광가열로 인하여 뜨거워진 공기가 대기불안정을 일으킨다면, 대양에서는 밤이 되어 차가워진 상층 공기가 가라앉으면서 대기불안정을 일으킨다. 물론 그 이유는 바다가 육지보다 온도변화가 덜하기 때문.
미국 애틀랜타 국제공항 인근에 적란운 떼가 덮쳐오는 동안 항공기들이 관제를 받는 모습.
위 영상에서도 나타나듯이 비행기도 피해갈 만큼 위험한 구름이며, 지구상의 절대 다수의 악천후(악기상)는 이 녀석 때문이라고 봐도 된다. 천둥과 번개는 기본적으로 내리치고, 경우에 따라서 우박도 쏟아질 수 있다. 게다가 대기가 불안정한 만큼 바람도 심하며, 특히 특대형 버전인 열대성 저기압은 등압선을 예닐곱 개씩은 기본으로 몰고 다닌다. 따라서 강풍 피해와 벼락 피해가 많다. 비교적 근래에 발견된 현상이지만 적란운 꼭대기에서는 상층대기 번개라는 것도 관측된다고 한다.
적란운은 강수가 많은 철에 형성되는데, 대한민국은 주로 6월 말 장마철 시기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한여름 7~8월에 고기압 가장자리에서 집중적으로 생긴다. 고기압 중심에서 생기지 않는 이유는 기단이 안정되기 때문이다. 사실 북태평양 고기압 자체는 서태평양부터 뻗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한여름에 고기압 중심에 들지 않아 항상 불안정한 상태다. 대개 열대기단(T)이 한랭한 곳으로 장출하면 안정한 날씨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Ts), 한여름 한반도로 확장하는 기단은 습기를 많이 보유한 mT(몬순)이기 때문에 이야기가 다르다. 따라서 습기를 많이 머금지 못한 봄, 가을보다는 맑으면서 일사가 강한 6월, mT기단 영향권에 드는 7~9월에 적란운이 많이 발달한다. 다만 우박 피해는 의외로 5~6월이나 9~10월에 많다. 그 이유는 한여름에는 500hPa까지 기온이 영상이기 때문에 우박이 생기고 싶어도 생길 온도가 되지 않는 것. 우박이 생성되려면 수적과 빙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고도에서 대류가 활발해야 하므로 한여름도, 겨울에도 생기기 힘들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계절풍의 영향으로 우기와 건기가 뚜렷한 중~저위도 지역들의 이야기이며, 우리나라와 정반대로 연중 건조한 미국 중부나 여름에 건조한 유럽에서는 봄, 가을에 급격한 상하층 기온차가 존재해 적란운이 발달하며, 아예 한겨울에 적란운이 발생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동아시아에서 여름 이외 계절에 적란운이 발생하는 지역은 울릉도와 일본 동해안 정도 밖에 없다. 쿠로시오 해류와 그 지류의 영향으로 극단적인 해기차가 발생하므로 한겨울에도 적란운이 발생하기 쉬운 조건이 형성되며, 대부분 폭설이 미터 단위로 쌓인다.
적란운 내부에는 상승기류만 있는 게 아니라 하강기류도 존재하는데, 급작스럽게 땅으로 불어닥치는 강력한 하강기류를 따로 다운버스트(downburst)라고 부른다. 이 글(개드립넷)에서 잘 설명되어있다. 다운버스트 중에서 작은 것은 마이크로버스트(microburst)라 하는데, 오히려 이런 마이크로버스트가 작은 범위에 큰 바람시어를 만들기 때문에 항공기 등에게는 훨씬 위험하다. 실제로 이런 하강기류는 몇 톤짜리 컨테이너도 쉽사리 굴릴 수 있을 정도다. 보통 이런 하강기류는 바람도 바람이지만 그 뒤를 잇는 국지성 폭우가 뒤를 잇는 경우도 많다. 또한, 공항 근처에서 발생하는 이런 하강기류는 착륙을 준비하는 여객기에게 지극히 위험한 존재가 된다.
최악의 경우 토네이도까지 나타날 수도 있다. 물론 이건 대한민국에서는 극히 드문 사례이다. 일단 산간지형이 많은 내륙지역은 접어두고, 동해상에서나 가끔씩 생길 뿐이다. 적란운이 토네이도를 잉태하려면 먼저 메조사이클론(mesocyclone)이라는 회전하는 공기 덩어리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사실 이게 미국 대평원을 제외하면 의외로 생겨나기가 그리 쉽지 않다. 하지만 만일 메조사이클론이 발생하게 된다면, 슈퍼셀로의 등극에 성공할 수 있게 된다. 메조사이클론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실제 토네이도로 발전하는 건 상당히 낮은 확률이지만, 어쨌건 요건만 맞춘다면 어떤 적란운에서도 토네이도가 나타날 수는 있다는 것.
사실 다운버스트니 우박이니 하지만 정말 많은 피해를 입히는 것은 바로 집중호우다. 물론 보통은 그냥 지나가는 소나기 정도로 끝나지만, 특히 (상대적으로 드물지만) 간혹 한여름철에 나타나는 적란운 중에 초 국지성 집중호우를 쏟아붓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서울특별시 용산구에는 시간당 60mm로 아예 비를 들이붓듯이 했는데 바로 옆 종로구에는 소나기가 거의 오지 않았다든가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 것. 이것을 바로 국지성 소나기라고 한다.
진짜 문제는, 이렇게 아주 좁은 강수구역을 갖고 단시간에 쏟아붓고 사라지는 적란운은 대한민국 기상청에서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들다는 거다. 여름철에 기상청이 중계청이라고 비아냥을 받는 큰 이유 중 하나. 이렇게 국소적인 구름 셀(cell)은 컴퓨터로도 제대로 추적이 되지 않는데다, 영상 레이더를 동원하더라도 쉽사리 판별이 곤란하다. 게다가 비가 그리 오랫동안 내리지도 않다 보니 예보는 커녕 중계(…)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 일부는 이게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이변이다 어떻다 등등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기상청 슈퍼컴퓨터는 조금이라도 더 좁은 격자 단위로 날씨를 예측하기 위해 오늘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때문에 소나기는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고 예측해야지 된다. 사실 소나기는 국지성이라 소나기 없이 맑은 지역이 많다. 물론 기상청은 욕을 먹겠지만 그 반대보다는 낫다. 강수량도 크게 차이날 수 있으니 0~70mm로 다양하게 예보하기도 한다.
흔히 오해하는 것이지만 겨울에도 얼마든지 적란운이 발생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선 그렇게 자주 보는 현상은 아니지만, 겨울에도 때로는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올라서 천둥 및 번개와 함께 엄청난 눈을 쏟아붓는 경우가 있다.(…) 이런 현상을 보통 뇌설(thundersnow)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 경우에도 폭설 피해가 상당히 크다. 겨울의 경우 적란운의 성장 높이 한계점이라고 할 수 있는 대류권 계면의 높이가 낮아지기 때문에 적란운의 키는 여름만큼 크지 않고, 옆으로 비스듬하게 퍼져 가는 경향이 있다.
Supercell
해당 문서 참고. 일반적인 적란운과 다른 점은 외따로 형성되며 크 크기가 수백 km에 달할 정도로 크고 상층에 한기핵을 동반하며 주변부로 퍼져나간다는 점이다.
태풍(Typhoon / Hurricane / Cyclone)
적란운과 유사하나 낙뢰가 거의 없고 폭우보다는 강풍에 힘을 더 많이 실은 자연재해다. 활동 기간은 최소 사흘을 버티는 경우가 잦고 크기마저 대다수의 적란운을 압도한다.
스콜(Squall)
열대 지방에서 매일 주기적으로 나타나며, 풍속의 현저한 변화를 특징으로 하는 현상. 원래는 적란운과 딱히 무관하게 바람에 관련된 현상이기도 하나, 대다수의 경우 적란운을 동반한 '뇌우스콜' 형태이다. 일반적인 적란운과는 다르게, 전체적으로 선이나 띠 모양의 대열을 이루어 발생하는 현상으로, 이 대열을 '스콜 선(squall line)'이라고도 한다. 오후 4시경이 되면 갑자기 돌풍이 불면서 세찬 비가 쏟아지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다시 뚝 그치면서 하늘이 말끔하게 개는 것이 특징.
열대성 저기압 및 열탑
Tropical Cyclone & Hot Tower
열대성 저기압, 즉 태풍도 그 근본은 결국 적란운인데, 태풍의 최성기에 눈벽(eyewall)을 따라 열탑(hot tower) 하나 또는 두세 개가 있다. 열탑이라는 표현 그대로, 아래에 설명할 '오버슈팅 탑'과도 유사한데, 대류권 계면 위로 최대 15 km까지 구름이 탑처럼 솟아오르는 것이다. 적도의 뜨거운 열이 그 높이까지 상승할 만큼 강력한 상승기류를 갖고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그 태풍이 지금 최대, 최강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열탑이 존재하는 이상, 그 열대성 저기압은 향후 6시간 정도는 현재 수준의 강력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