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단풍이 흐드러질 때 우리 가족은 설악산 '흘림골'과 '주전골'에 갔었다.
그곳은 설악에서도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이 가장 빼어난 곳 중 하나였으니까.
알록달록한 오색빛깔의 단풍과 그곳의 협곡, 암봉, 단애, 명경지수가 몹시도 그리웠다.
우리에겐 떠남과 돌아옴이 자연스런 일상이었고 매우 익숙한 삶의 패턴이었다.
그때 그곳에 갔던 건 우리 가족 네 명만이 아니었다.
아들의 애인도 데리고 갔다.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설악산'에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같이 가자했다.
아니나 다를까.
젊은 숙녀는 깊은 산중에서 "설악의 가을이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나요?" 하면서 계속 감탄사를 연발했다.
우리도 흐뭇했다.
데려오기를 정말 잘 했다고 생각했다.
산행을 마치고 '한화콘도'에 여장을 풀었다.
식사와 함께 반주를 즐기며 긴 시간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눴다.
다섯 명의 대화는 화기애애했으며 시종일관 유쾌했다.
아들 여친은 '설악산' 뿐만 아니라 전국에 흩어져 있는 여러 국립공원에도 아예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꼭 '산행'이나 '트레킹'이 아닐지라도 인생의 다양한 경험이나 시도들이 별로 없었음을 깨달았다.
부모님을 따라 해외여행은 몇 번 해보았지만 국내 여행이나 다양한 체험은 거의 해보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서울대 수의대'를 졸업할 정도면 라이프 스타일이 대개 이런 식인가 싶었다.
지금까지 죽어라 공부만 했단다.
공부는 잘 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삶의 다양한 경험과 광범위한 체험을 통한 배움과 성장에 대해선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였다.
적어도 나의 느낌엔 그랬다.
아들 여친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성장배경과 가정환경 그리고 교육에 대한 방점이 우리와는 너무나도 달랐다는 점을 얘기하는 것 뿐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걸 알았다.
그 자리에서 "내년 봄에 제주 여행과 '한라산' 산행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5명의 표정이 일순간 환하게 빛났다.
모두가 힘차게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그렇게 작년 가을에 24년도 봄날의 가족 이벤트가 결정되었다.
나도 내 자식을 키웠다.
내 자녀가 학생이었을 때, 나는 여행, 도전, 체험을 통한 배움과 성장을 유달리 강조했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도 그런 측면에서 우리 가족들은 이골이 난 사람들이었다.
내 아들과 예비 며느리에 대해 비교를 하거나 평가를 하는 게 아니다.
또한 옳고 그름, 우성과 열성의 문제를 논하는 게 아니라 다름에 대한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다.
아무튼, 작년 가을에 '설악산'을 다녀온 뒤에 곧바로 제주행 항공권을 예매했고 우리가 단골로 가는 숲속의 조용한 숙소도 예약했다.
여행준비를 철저하게 해둔 상태였다.
그리고 금년 3월 하순.
딸이 가족들 식사 자리에 한 청년을 데려왔다.
우리도 그 청년을 처음으로 보았다.
키가 큰 편이었고 핸섬했다.
현직 군인이었고 소령이라고 했다.
각설하고 그 식사 자리에서 내가 그에게 물었다.
4월 하순에 5명이 '한라산'에 갈 예정인데 같이 갈 수 있는 지를 물었다.
"무조건 동행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 청년도 되게 적극적이었고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렇게 뜻이 맞았고, 4월 하순에 6명이 제주에서 2박3일 간 멋진 시간을 보내고 왔다.
5명에겐 작년 가을에 합의했던 약속이었지만 '뉴 페이스'에겐 출발 한 달 전에 긴급하게 제안했던 가족 이벤트였다.
'성판악' 코스로 올라가서 '백록담'을 우리네 가슴과 영혼에 새긴 뒤에 '관음사' 코스로 내려왔다.
한라산을 가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이 종주코스는 운동을 많이 한 베테랑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무지막지한 고행의 트레일이었다.
왕복 20여 킬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계단과 현무암 돌길이라 초행자들에겐 거의 죽음 같은 루트였다.
그러나 딸의 남친과 아들의 여친도 건강하고 파워풀하게 종주 산행을 잘 마쳤다.
(어차피 두 커플 모두 결혼 날자까지 잡아놓은 상태니까 '예비 사위'와 '예비 며느리'로 부르는 게 낫겠다)
두 커플과 길고 험한 여정을 동행하면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젊은 숙녀와 청년의 한라산 하이킹을 위한 사전 준비가 매우 철저했고 성실했다는 것을.
그날 저녁.
맛있는 횟감에 소맥을 곁들여 가며 다양한 얘기꽃을 피웠다.
특히 예비 며느리가 그랬다.
"아버님, 한라산 산행을 위해서 퇴근 후에 오빠와 함께 석촌호수에서 열심히 운동했어요. 일주일에 서너번씩 조깅을 했거든요. 서울 근교 산행도 자주 했고요. 제가 가족 행사에 민폐가 되면 안되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라산'과의 첫 만남인데 당당하고 멋진 모습으로 만나고 싶었어요"
그 말이 참 예뻤다.
그리고 가슴이 뭉클했다.
순수하고 참한 숙녀의 진솔한 고백이었으니까.
그녀를 위해 모두가 힘차게 건배했다.
예비 사위도 한마디를 덧붙였다.
"부모님을 3월에 사당역에서 처음으로 뵈었습니다. 그런데 두번째로 뵙는 자리가 '한라산'이라 저도 나름 긴장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부대 연병장에서 구보를 하면서 체력단련에 힘썼습니다.
스무 살 때 처음으로 한라산에 올랐었어요. 이번이 제주도 두 번째 방문입니다. 모두가 부모님 덕분입니다" 라고 했다.
역시 현역 장교라서 그런지 진중하고 다부졌으며 체력도 좋았다.
여섯 명의 건배와 브라보가 밤이 깊도록 여러번 울려퍼졌다.
나는 가족 상호간의 '결속'을 생각했다.
산행 내내 그 생각 뿐이었다.
30년이 넘도록 서로 다른 가정에서, 다른 가풍과 문화에서 성장했으니 당분간은 낯설기도 하고 힘든 점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소통과 공감에 진심으로 임하자"고 했다.
젊은 청춘들이 만나서 죽도록 사랑하고 있으며 철학과 가치관이 맞아 함께 긴 인생길을 동행하겠다고 했다.
자발적인 결심이고 주체적인 선택이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까닭에 나는 두 커플 네 명에게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그냥 축복했고 박수를 보내주었다.
청춘들의 장구한 인생길에서, 어떤 조건이나 세상적인 기준이 중요한 건 아닐 터였다.
우리 부부는 내년에 '히말라야 A.B.C'(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 갈 예정인데 시간이 맞으면 함께 가자 했다.
두 커플도 환한 미소와 함께 힘찬 박수로 화답했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꼭 동행하고 싶어요"라고 했다.
"한 평생 뜨겁고 멋지게 사랑하라"고 당부했다.
나는 환갑이 될 때까지 내 나름대로는 인생을 열심히 살았다.
지금도 열정적으로 살고 있지만 뒤돌아 보면 인생에서 돈과 지위 그리고 온갖 조건들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적어도 우리 부부에겐 그랬다.
나는 '소통과 공감', '헌신과 배려', '추억과 동행'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생각에서 끝난 게 아니라 나도 그리 살고자 성심을 다해 노력했으며 내 자녀들도 그리 양육하려 힘썼다.
이제는 두 커플 네 명이 모두 30대 초,중반 나이가 되었다.
내가 이 청춘들에게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어려서부터 '선조치, 후보고' 스타일로 양육했던 만큼 지금은 더더욱 할 말이 없다.
설령 있어도 가능한 한 사족을 달지 않는다.
또한 절대로 잔소리를 해서도 안된다고 믿는다.
가끔씩 만나서 즐거운 마음으로 술이나 한 잔 하면 그것으로 족할 뿐이다.
"뜨겁게 살아라"
그리고 자신이 찍어 온 발자국에 당당하게 책임을 지는, 그런 호쾌하고 광활한 삶을 살아주기를 당부했다.
나의 오래 된 기도이기도 했다.
"너희들의 앞길에 신의 가호가 충만하길 빈다. 제주에서 2박3일 간 또 한 페이지의 소중한 추억을 함께 엮어주어 고맙다. 사랑한다"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첫댓글 너무 멋진 가족 모습입니다.
서로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에게 당당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입니다.
5월 시작하면서 이렇게 멋진 모습을 눈에 담으니 저의 5월도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두 커플의 아름다운 모습에 응원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