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시즌 28라운드 순위를 살펴보면 가장 높은 곳에 바이어 레버쿠젠(Bayer Leverkusen) 이라는 이름이 올라있다. 올시즌 28라운드를 살펴보면, 레버쿠젠은 16위에 쳐져있다. 지난시즌 이맘때의 승점이 59점인데 비해, 올시즌 현재까지 레버쿠젠이 벌어들이고 있는 승점은 단 30점에 불과하다. 올시즌 레버쿠젠이 보여주고 있는 극단적인 부진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겠다.
레버쿠젠의 부진이 하루이틀 논의된 것도 아니고, 이제는 식상해 질 법도 하지만 그래도 역시 레버쿠젠의 행보는 분데스리가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지난시즌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팀이자, ‘트리플 세컨드’ 라는 호성적을 냈던 레버쿠젠이 만약 올시즌을 끝으로 분데스리가 1부무대에서 사라진다면 그 보다 더 큰 충격은 없을 것이다. 물론 8위 볼프스부르크와 16위 레버쿠젠의 승점차가 단 8점에 불과해 언제든지 순위는 뒤바뀔 수 있으나, 어쨌든 6경기를 남겨둔 현시점에서 레버쿠젠의 분위기는 분명 좋지 못하다.
27라운드에서 헤르타 베를린에 4:1 로 대승, 간만에 기분 좋은 승리를 만끽한 레버쿠젠은 28라운드 슈투트가르트와의 원정경기에서 0:3 으로 패하며 상승세를 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더욱 더 나쁜 것은, 이 경기 이후 현재 레버쿠젠의 임시감독으로 선임되어 있는 토마스 회르스터(Thomas Hoerster) 감독이 사임 의사를 밝혔다는 사실이다. 올시즌 시즌 중반에 경질된 클라우스 토프묄러 감독의 후임으로 승격된 회르스터 감독은 리그에서 3승 1무 3패의 비교적 괜찮은 성적을 거두고 있던 중.
비록 포칼컵 준결승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에 1:3 으로 패하며 탈락한 것이나, 부임 이후 챔피언스리그 4경기에서 단 1점의 승점도 건지지 못한 오점이 있긴 하지만, 사실 회르스터 감독이 아닌 어떤 명장이 와도 레버쿠젠이 강호들에게 쉽사리 승점을 챙길 수 없다는 점은 자명한 사실이기에 용납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부임 초기부터 ‘자신감 없는 모습’ 을 보였던 회르스터 감독은 자신에게 넘겨지는 무거운 짐을 감당하지 못한 듯 사표를 제출했던 것.
토프묄러 감독의 후임으로 마땅한 적임자를 찾지 못하고 아마추어 팀 감독이었던 회르스터를 퍼스트 팀 감독으로 승격시킨 전례가 있는 레버쿠젠은 당장 비상이 걸렸고, 일단 라이나 칼문트 단장은 이러한 회르스터 감독의 사표를 즉각 수리하지 않고 회의를 거쳐 ‘유임’ 시키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팀 분위기가 좋을 리가 만무하다. 감독은 팀을 맡기 부담스럽다며 사표를 내던졌고, 선수들의 사기는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 다만 레버쿠젠 팬들은 브라질 대표팀 출신의 중앙 수비수 루시우(24, Lucio) 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소식이다.
루시우는 전반기 막판 발에 부상을 당해 수술을 받은 후, 거의 4달 반 동안 조국 브라질에서 재활에만 전념해 왔다. 지난 시즌 주장 옌스 노보트니(Jens Nowotny) 와 함께 레버쿠젠의 수비진을 이끌었던 루시우의 공백은 의외로 컸다. 올시즌 영입한 동향 출신의 수비수 주안과 크리스가 루시우의 공백을 어느정도 메워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둘의 기량은 아직 분데스리가에서 통할 만한 기량이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 토프묄러 감독은 레버쿠젠의 감독직에서 물러날 때 이적 선수들의 공백보다는 노보트니나 루시우 같은 수비선수들의 장기부상이 팀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안타까워 한 바 있었다.
루시우는 “많은 사람들이 나의 복귀를 기대하고 있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 혼자 팀을 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라고 말하며 동료 선수들의 분발 또한 촉구했지만 레버쿠젠의 스폰서이자 유명 제약회사인 바이어(Bayer, 아스피린을 만들어 낸 제약 회사이다) 의 스포츠 담당을 맡고 있는 마인로프 스프린크 씨는 “물론 그가 혼자의 힘으로 팀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면 넌센스겠지만, 아마 그의 복귀로 인해 많은 선수들이 더 좋은 기량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될 것” 이라고 말하며 루시우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현재 루시우의 부상 회복 상태는 거의 100%에 가까워진 상황. 레버쿠젠의 팀 닥터는 루시우가 러닝이나 기타 훈련등에서 별다른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고 밝혀 곧 그의 복귀가 이뤄질 것임을 암시했으며, 루시우 또한 “부상 전 보다 몸상태가 더 좋아진 것 같다” 라고 말할 정도로 당장 경기에 투입되어도 무리가 없을 만한 몸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루시우가 가세하게 되면, 레버쿠젠의 수비라인은 한층 단단해 질것이 확실하다. 최근 들어서야 겨우 분데스리가에 적응했다고 평가받고 있는 주안과 짝을 이뤄 중앙 수비로 투입될 루시우로 인해, 크로아티아 대표팀 출신의 보리스 지브코비치가 레버쿠젠의 취약 포지션인 오른쪽 윙백으로 돌아설 수 있고,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의 임무를 모두 요구받아 부담이 컸던 카르스텐 라멜로프 역시 본 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로 돌아갈 수 있을 전망. 레버쿠젠이 지난시즌 보여줬던 ‘먹은 만큼 갚는다’ 전술이 공격라인의 부진으로 인해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는 만큼 루시우는 레버쿠젠이 수비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많은 옵션을 제공할 전망이다. 레버쿠젠은 주말에 부담스런 상대인 샬케 04를 바이 아레나로 불러들여 29라운드 경기를 갖는다.
한편 루시우는 팀이 2부리그로 강등된다고 해도 레버쿠젠에 계속 남아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최근 레버쿠젠과 2005년까지의 연장계약을 맺은 루시우는 “나는 계약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긍정적인 생각만을 하고 있으며, 우리가 분데스리가에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라고 말하며 2부리그로 강등시 이적을 생각하고 있는 일리다이 바스튀르크 등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음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