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이 지난주 월요일 출산을 했습니다. 양수가 너무 적어 위험하다는 말에 예정일을 삼주나 앞당겨 급히 입원을 하고 유도 분만을 하며 첫 딸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 동생만 조리원으로 옮기고 아기는 병원에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임신 당시부터 ‘뇌가 작다, 뇌실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이야기를 의사로부터 계속 들어오다가, 아이가 태어나고나서 다시 정밀 검진을 받게 되었거든요. 아기만 병원에 남겨두고 나온 동생은 마음이 아파서 많이도 울었습니다. 통화할 때마다 저도 같이 울었습니다.
동생이 그러더라구요. “그루를 낳는 순간 모성이 장난 아니게 생기더라. 그루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구요.(태명이 나무 한그루 할 때의 그루입니다.) 그런데 아기를 떼놓고 병원을 나와야 하니 얼마나 애가 탔을까요. 엄마 품에 안겨있지 못하는 아기처럼 불쌍한 아기도 없겠죠...
엄마와 떨어진 아기는 3일을 지나는 동안 정밀 검진을 받고 오늘 오후 늦게 ‘뇌실확장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임신 때 우려만 했던 일이 이제는 사실이 되었습니다. 퇴근 후 동생과 통화를 했습니다. 저는 울음이 터질 거 같은데, 의외로 동생이 의연하게 ‘큰 이상 없이 잘 자랄거라고 믿어’라고 하길래 서둘러 울음을 삼켰습니다.
뇌실확장증은 아주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하네요. 염색체 이상을 동반하기도 하고, 지능 장애나 뇌성마비를 동반하기도 하고, 그 외 크고 작은 다양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해서 온가족이 사실 겁을 먹고 있었는데요. 다행히도 소수 비율 아이들은 ‘단독 뇌실확장증’이라고 해서 동반증상 없이 잘 자라기도 한답니다. 앞으로 크면서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지 살펴봐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지만, 건강하기만을 기도하고 기대하면서 아낌없이 사랑하며 키우는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아기의 건강에 대해 저희 가족은 두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혹 그루가 장애를 가지게 되더라도 그것은 우리 가족이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이며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고 변함없이 그루를 사랑할 것이라는 결심과, 또 하나는 그루가 별다른 이상 증세 없이 잘 자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저희 가족은 모두 종교를 가지고 있어서 이 세상에 오는 생명은 귀하지 않은 생명이 없고 맡겨진 생명을 청지기정신으로 키워내는 것이 부모로서의 사명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갓 태어난 아기가 만약 장애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면 너무나도 슬프겠지요... 앞으로 이 아이가 감당하게 될 고난과 어려움들을 생각하면, 아무리 대단한 믿음과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슬픔이 없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슬픔과 두려움 때문에 아기에 대한 사랑을 거둘 수는 없습니다. 슬픔과 두려움은 어른들인 우리가 감당할 몫이지 아기에게까지 슬픔과 두려움을 전달해서는 안될 일이기에, 서로 말은 하지 않지만 무던히도 애쓰고 있습니다...
동생은 아기가 건강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병원에 홀로 있는 아기에게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 가족들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을 나누었습니다. 동생에게 출산이 임박해오던 몇주 전부터 <아직도 가야 할 길>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 중 한부분입니다.
“(진정한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은 아이들은) ‘우리 부모가 기꺼이 나와 함께 고통을 함께해 준다면 고통이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고 나도 기꺼이 그 고통을 견뎌 내야겠다’고 생각한다. (중략) 진실로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불쾌한 순간들을 겪을 때 부모가 자기들을 잘 돌봐 주지 않는다고 의식적으로 느끼고 불평을 할지라도 무의식적으로는 자기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 말은, 부모의 진정한 사랑을 받은 아이들은 경제적 부족함이나 물리적/신체적 불편함을 겪더라도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불가피하게 그루가 며칠 엄마와 떨어져 있어도 그게 ‘결정적으로’ 그루에게 상처가 되거나 안좋은 영향을 주지는 않을거라며 동생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습니다. 진정한 사랑을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라면서 겪게 될 어려움이나 고민들을 이겨내고 극복하면서 온전한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잘 자라갈거라구요. 지금 당장의 부족함, 아쉬움, 미안함에 매여서 그루에게 왜곡된 사랑을 주어선 안된다구요. 대부분의 부모들이 ‘못해 준 것’의 미안함 때문에 진짜 사랑이 아니라 가짜 사랑을 주곤 한다고 이 책에도 쓰여져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근본적으로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일까요. 누구나가 늘 이야기 하듯이, 이 책에서도 말하듯이,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사랑이겠지요. 이때의 사랑은 자녀가 겪게 될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힘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부모의 사랑은 완전한 사랑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부모나 완전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자녀에게 실수 할 수 있고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완전한 인간이 되고자 결심하는 ‘순간’ 그때부터 그 가족의 고통은 시작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부모 자신이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또 자식을 완전한 통제와 관리(그 어떤 좋은 의도이든, 좋은 방식이든 통제와 관리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속에서 자라게 하고 싶은 욕망에서부터 부모의 고통은 자식에게 전이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서운 일이죠...
그래서 저는 자식을 잘 키우기 위해서 모든 부모가 교육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때론 심리상담 전문가, 때론 교사, 때론 정책 전문가나 입시 전문가, 때론 의사가 되어 자식의 일거수 일투족을 책임지며 신체 발달과 정서 발달과 공부의 모든 것을 완전하게 책임지는 것이 가능할까요.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녀 교육에 눈꼽만큼의 관심도 없이 될대로 되라 식으로 사는 부모도 문제이지만, 실수하지 않으려는 부모,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최선의 것만 주려고 하는 부모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동생이 사랑하는 딸에게 완전한 신체적 건강을 물려주지 못했듯이, 또 언제 어떻게 자녀에게 실수하고 아픔을 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 실수와 실패의 두려움에 떨고만 있다면, 제 동생은 아마 제대로 사랑하기는커녕, 죄책감과 두려움 속에 갇혀 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저는 완전한 사랑을 주려는 부모보다, 완전하지 않기에 실수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함께 성장해가자고 눈높이를 맞춰주는 부모가 자녀들의 마음을 훨씬 더 편하게 해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런 부모 앞에서라면 자녀도 자신의 실수와 실패를 숨기지 않고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요?
실패하는 인간, 자신의 오류와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바로잡으려고 하는 사람, 0에서부터 시작했을지 몰라도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그의 족적에 남아있는 사람, 그런 사람으로서 부모의 삶도 행복해질 수 있을거 같습니다.
재작년인가, 저희 아버지가 삼남매를 앉혀놓고 그런 고백을 하시더라구요. ‘내가 너무 어렸을 때 아빠가 되어서 너희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잘 몰랐다’구요. 그러면서 미안하다고 하셨어요. 뭉클했고 고마웠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조카들과 얼마나 잘 놀아주고 다정다감한지 모릅니다. 그런 아빠도 저희 삼남매를 키우면서는 실수하고 잘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억을 떠올려보면, 저에게 잘못했던 일들보다 다정하고 재미있는 아빠로 함께 했던 기억이 훨씬 더 많습니다. 아빠가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것, 나도 아직까지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것,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함께 서로를 다독이고 격려해가면서 의지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가족이겠지요.
저의 세 번째 조카, 그루에게 아직 중요한 검사가 남아있습니다. 염색체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애가 타서 울어야 할 날들이 더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들 울음을 참으며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려고 합니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서로를 아끼는 가족이었나, 새삼스럽게 낯설기까지 합니다. 서로 진지하게 귀기울이고 다독여줍니다. 매일 카톡만 하다가, 자주 전화를 걸어 직접 목소리를 확인합니다. 농담만 주고받던 대화가 사뭇 진지해지고 마음을 열어보입니다. 위기 속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하나가 되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그루가 저희 가족에게 준 선물입니다. 앞으로도 그루를 통해서 이런 순간들을 더 많이 경험하고 싶습니다. 그루가 커가는 그 어떤 순간에도, 오늘 이 마음들을 잊지 말자고 다짐해봅니다.
첫댓글 가족은 서로의 아픔을 같이하며 더 가족애를 느끼는 것 같아요.
지현샘은 결혼도 안하고 아이도 없으면서 어쩜 이렇게 부모자세가 잘 되있는지 매번 놀라요.
저도 지현샘과 같은 생각이에요. 지난 시절 돌이켜보면 잘 몰라서, 때론 잘 할려고 한 것들이 오히려 잘 못된 경우도 있었어요. 하지만 전 그냥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니 후회하지 않고 실수했던 것 인정하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거라는 것까지 현이에게 이야기해요. 어쩌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한도에서 하는 거죠.
조카 일로 많이 힘들텐데 뭐라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란다는 말씀 밖에... 믿는대로 될거에요.~
승훈샘.. 감사합니다.. 여동생이라 더 마음이 짠하고 아프네요. 그래도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 잘 받아들이려고 모두 노력하고 있어요. 아직 더 추이를 지켜봐야하기도 하구요.
사실 부모 노릇은 사람 노릇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부모이기에 앞서 먼저 인격적이고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부모 역할도 잘 해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좋은 부모되기에 욕심내기 보다 좋은 사람되기에 많은 분들이 욕심내시면 좋겠다 싶네요..^^ 정답은 없는 일이지만 마음이라도 이렇게 먹고 싶어요~
우리둘째가 백일도 되기 전에 병원에 입원하면서 의사샘이 아이에게 주사기를 꽂으며 엄마가 봐선 안된다고 했죠...그때 밖에 있으면서 너무 힘들어서 아이가 퇴원할때까지 밥을 제대로 못 먹었어요...엄마란 그런 존재인가봐요...저는 유난히 배가 고프면 못 참는 성격이거든요..그루가 성장하면서 주위에 따뜻한 가족이 있다는 것에 행복할것 같아요...좋은 결과가 있길 기도합니다...
임신 출산때 어려움 없는 부모들은 없겠죠...ㅠㅠ 엄마들 한자리에 모여 배틀을 하면 며칠밤새 이야기들이 터져나올거 같기도 해요...^^:;;
살아가면서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가족이라네요... 그루에게 좋은 결과가 있길 기도해요
저도 나이 들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제일 많이 느끼게 되요..^^ 위로와 기도 감사합니다
그루가 건강히 잘 자랄 수 있길 저도 함께 기도합니다...
감사해요 나도맘님~ 나도맘님의 자녀들도 건강하기를 바랄게요~
가족들 사랑의 힘으로 그루가 건강하게 자랄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기도할께요.
수현사랑님, 감사합니다~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기를... 혹시 건강하지 못하더라도 이 사회의 지지와 사랑으로 행복하게 안전하게 자라기를 바래봅니다~
저의 딸도 어릴때 무척 많이 아팠습니다. 태어날때는 늦게 나와서 태변을 먹고, 호흡이 잘 안 되어 산소포화도도 떨어지고요, 감기 한번 걸리면 열이 많이나서 경끼에 숨을 못쉬어서 청색증 오구요. 아이를 낳고 아빠인 저도 우울하더라구요. 아빠가 될 충분한 철이 덜 들었으니까요. 지금도 건강이 아주 좋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이 주신것이라 생각하고 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에고.... 열공아빠님도 큰 어려움을 겪으셨네요.. ㅠㅠ 힘도 못쓰는 아기가 아픈 것을 마냥 지켜만봐야 하실때..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조금 덜 건강하더라도 행복하게 잘 크기를 바랍니다~ 위로 감사합니다~
아이가 커가면서 제기대와는 너무 다르게 공부욕심도 별로 없고 학업능력도 많이 부족한 것을 확인하면서 그애가 앞으로 이 무한경쟁사회에서 어떻게 버텨낼까.. 그게 걱정되어 아이를 더 압박하고 겁을 주곤합니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건 견뎌낼 수 있게 무한사랑을 주어하는데도 말이죠. 부끄럽네요..그루가 건강하게 잘 자라길 기도합니다.
아트고님...걱정해주시는 마음과 기도 감사합니다.
부모의 기대대로 크는 아이들이 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은거 같아요... 부모들의 마음이 다 비슷하다고 한다면 위로가 될까요...^^;; 저도 부모님에게 속썩이는 자식이었고, 지금도 그렇고요... 그래도 제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트고님의 걱정과 달리 의외로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낼수도 있는데, 그것을 위해 우리 어른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은 한국사회의 불공정함과 불합리함을 빨리 고치는 일인거 같아요. 이 카페에 자주 들어와주세요...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어떻게 하면 좀 덜 나쁘게 만들 수 있을까.. 같이 고민하고 힘써봐요~^^
완전하지못하면서 완전한 사랑을 주려고 버둥대던 제모습을 님의 글을보면서 또 반성하고
정말기대하지 않는 다고 했지만 내안에는 내아이가 다른아이들보다 뛰어날것이라는 기대감과 교만이
공존했던것같은..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시는 글이네요~
그루를 통해서 정말 가족이 더 끈끈해지고 복된 가정이 되시기를..또 그루의건강을 위해
기도할게요~힘내세요^^
위기가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다시금 일으켜세우는 기회가 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연우연아맘님~ 두 아이를 키우고 계신가봐요... 연우연아맘님 가족에게도 위기와 불안 속에서 가족이 더욱 내적인 힘을 발휘하는 경험들이 자주 있으시길, 그런 경험이 아이들에게 이 세상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일어서는 힘이 되기를 응원합니다. 격려와 기도 감사합니다..^^
아픈 이야기이군요. 아이가 아파서 힘들었던 때가 있었으니 말이지요. 활동에 제약도 있었고... 신앙을 가지고 계시니 흔들리지 않고 절대자와의 소통을 통하여 이겨 나가시기를 기원합니다. 힘 내시라 하고 싶습니다...
선생님...ㅠㅠ 감사합니다... 선생님 가정에도 말못할 어려움이 있으셨나보네요. 사실 며칠 지나고 보니, 제가 너무 호들갑을 떨었나, 좀 민망하기도 하고 부끄러워요. 더 큰 어려움을 겪은 분들이 훨씬 더 많으실텐데 말이죠... 그래도 제 안의 마음들을 같이 나누면서, 어려움을 겪으시는 분들과 위로를 나누고 싶었어요. 선생님의 위로와 격려 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