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곡 선착장으로
어제 곡우가 지난 사월 하순이다. 코로나 영향으로 산업이 위축되고 교통량이 줄어서인지 대기가 맑아져 좋다. 그럼에도 사월 말부터 오월 초면 유해 물질은 아닐지라도 뿌옇게 날리는 게 있다. 그의 정체가 바로 송홧가루다. 주중 머무는 남녘 해안 식생은 낙엽활엽수가 우거져도 소나무는 어디나 섞여 자란다. 이즈음 야외에 세워둔 자동차 덮개는 송홧가루가 날아와 먼지처럼 쌓이는 때다.
주중 수요일 날이 밝아왔다. 아침밥을 일찍 해결하고 와실 골목을 나섰다. 평소는 연사 들녘을 둘러 교정으로 들어섰는데 행선지를 달리 했다. 그간 코로나 감염 우려로 대중교통 이용을 자제했다만 단조로움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아침마다 들녘을 두르는 산책은 개미 쳇바퀴 도는 듯해 일상에서 벗어나 갯가 바람을 쐬어 보려고 마음먹었다. 고현을 출발해 상유로 가는 첫차 시내버스를 탔다.
승객이 내 말고 아무도 없는 첫차는 연초삼거리에서 하청과 장목 노선으로 가질 않고 곧장 송정고개로 올랐다. 송정터널과 덕포터널을 지나 신호등이 없는 거가대교 진입도로를 따라 달렸다. 덕포와 외포를 지날 때 날이 밝아와 아침 해가 뜨려는 기미가 보였다. 주중 내가 머무는 연사는 바다와 접하지 않은 내륙이나 마찬가지라 주변이 산들로 에워싸여 일출이 늦은 편인데 갯가는 달랐다.
거제에서 동쪽에 해당하는 가덕도 방향에서 아침놀이 번지면서 해가 떠올랐다. 가덕도 너머는 다대포와 몰운대다. 차창으로 일출의 서광을 바라보는 것만도 갑갑함이 다소 풀렸다. 매일같이 연사 들녘과 연초천 둑길을 걷다가 모처럼 일상의 변화였다. 버스는 거가대교 요금소를 앞둔 관포나들목으로 내려섰다. 장목 면소재지에서 가까운 관포고개와 이어지는 해안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연사에서 버스를 탈 때는 상유 종점까지 가보려고 했으나 마음을 바꾸었다. 상유와 하유는 유호리로 거가대교 연륙교가 닿는 첫 마을이다. 진해만과 접하고 있어 바다 건너는 진해 시가지와 불모산과 시루봉이 빤히 보이는 데다. 내가 타고 가는 버스가 어차피 종점에서 되돌아 나와 연초를 거쳐 고현으로 나가기에 중간에 내려도 되었다. 신촌에서 관포와 궁농을 지난 간곡 선착장에서 내렸다.
간곡은 학동처럼 활처럼 휘어진 연안에 몽돌이 깔린 해변이다. 여름이면 해수욕장으로도 개장되나 피서객이 학동만큼 찾지 않아 한산했다. 농소마을로 돌아가는 어귀에 근래 규모가 큰 리조트가 들어서 외지인들이 더러 드나든다. 간곡 선착장은 궁농항에서 가까웠다. 궁농항은 대통령 별장으로 알려진 저도로 운항하는 유람선이 뜨는 포구였다. 낚시공원으로 개발해 태공들이 더러 찾았다.
동녘에서 솟아오른 아침 해는 붉은 놀과 함께 거가대교 연륙 구간에 걸쳐 떠 있었다. 간곡 선착장에서 궁농항으로 향해 걸었다. 유람선이 묶여 있는 포구에는 조업을 나가는 어선 한 척이 물살을 가르며 포구를 빠져나갔다. 여유가 있었다면 궁농항까지 가서 포구를 거닐고 싶었다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상유까지는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 종점으로 간 버스가 되돌아오는 시간이 다가와서다.
궁농항에 가까운 해안 산봉우리는 망봉산인데 언젠가 퇴근 후 어둠 속에 두 차례 다녀간 적 있다. 그곳은 구한말 러시아와 일본이 극동에서 대치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러시아가 일본의 조선 진출을 견제하기 위한 정찰 기지였다. 러일 전쟁 당시 해안의 낮은 봉우리에서 망을 봤던 자리라고 망봉산이라 불렸다. 지금은 둘레길이 잘 조성되어 해안 탐방과 거가대교를 조망하기 좋은 위치였다.
궁농 포구는 들리지 않고 마을회관 앞 버스 정류소로 갔다. 회관 곁 텃밭에는 허리가 구부정한 한 할머니가 고추 모종을 심고 물을 주었다. 종점에서 되돌아 나온 버스를 탔더니 관포고개를 넘어 장목을 가쳐 하청을 지났다. 어딘지 모를 생업 현장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타니 좌석이 거의 채워졌다. 연초삼거리를 지나 연사마을에서 내리니 평소 들녘을 두르고 교정으로 드는 시각과 비슷했다. 21.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