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엄마가 오늘 밤을 넘기시긴 어려울 것 같아 그래도 아직 몇시간은 더 계실 것 같아 봄을 기다리는 초저녁 여섯시 내가 뭘 안다고 인간의 죽음의 순간에 대해 내가 뭘 안다고 여든이 다된 누나한테 누나, 작업실에 좀 다녀올게 급하게 보내야 할 메일이 있어 금방 올게 오늘 밤은 엄마 곁에 계속 있어야 하니까
누나는 말없이 나를 보내고 나는 어머니의 집을 나서 학여울역에서 대청역까지 어머니가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에 한 정거장 지하철을 타고 작업실로 가 메일을 보내다가 갑자기 노트북 자판기에 커피를 쏟듯 마음이 쏟아져 지금 이 순간 혹시 엄마가 돌아가시는 게 아닐까 서둘러 지하철 계단을 뛰어내리는데 호승아 지금 오니 누나의 짧고 차분한 전화 목소리 네 지하철 탔어요 금방 가요
다급히 돌아와 아파트 문을 열자 엄마가 돌아가셨다 누나가 덤덤히 잘 갔다 왔느냐고 인사하듯 말한다 미안해요 엄마 얼굴을 쓰다듬으며 사랑해요 엄마 뺨을 비비며 어머니 임종을 지키려고 급히 다녀왔는데 기다려주시지도 않고
영원히 기다려주시지도 않고 봄을 기다리던 어두운 저녁 일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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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기저귀 / 정호승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나 다시 기저귀를 갈아드릴 수 있다면 나 아기 때 엄마가 내 기저귀를 갈아주신 것처럼 종이처럼 가벼운 아버지를 아기 달래듯 달래며 아버지 허리 좀 드세요 괜찮아요 뭘 그리 부끄러워하세요 토닥토닥 아버지를 달래며 환하게 웃어드리겠네
물티슈로 엉덩이를 깨끗이 닦아드리며 늙고 병들면 인간은 기저귀를 차야 한다고 누구나 아기처럼 기저귀를 차야 할 때가 있다고 그럴 때는 자식이 부모의 기저귀를 갈아드린다고 말없이 귓속말로 말씀드리며 아버지 한숟가락 더 드세요 밖에 봄이 왔어요 사람은 먹어야 살잖아요
싫다고 고개 돌리시는 아버지를 껴안고 미음 몇숟가락 더 잡수시게 하고 흩날리는 벚꽃을 기저귀에 주워 담아드리겠네 땅바닥에 떨어진 목련꽃 그늘도 듬뿍 주워 담아 아버지의 기저귀에서 나는 봄의 꽃향기 아버지라는 아기 냄새를 흠뻑 맡겠네
첫댓글 부모님을 그리지만 살아돌아오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지만 .....
아무리 따뜻하게 지내도
마음 한켠은 서늘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