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무와 모모에 관한 에피소드 8 — #데이트폭력 #안전한이별 #폭력이별대처법
김효은
무무는 이별과 퇴장이 모든 연기의 기본이라 배웠다 무무는 초심으로 돌아가 개정증보판 이별 챕터를 편다 초고속 시대에 이별의 방식은 꽤나 까다로워졌다 이별에는 각종 악성 코드와 신생 바이러스들이 늘었다 예전에는 누군가 퇴장만 하면 그것으로 이별이 성사되곤 했다 떠나간 무무를 뒤로 하고 남겨진 보보에게 약을 먹든 손목을 긋든 그것은 보보의 몫이었다 지금은 가장 어려운 연기가 이별극이다 방심하면 잔혹극이 된다 무무는 이제 보보와 작별하고 모모로 돌아갈 수 있을까 보보를 모르던 때의 무무 극한의 공포를 모르던 때의 무무 무무는 예전의 무무가 그립다 무무는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다는 사실 분장으로 감출 수 있는 본성도 있다는 사실을 보보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러나 한 차례의 소나기에도 보보의 맨얼굴은 금세 드러났다 집착하고 감시하고 구속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보보가 무무는 무서워졌다 무무는 이제 와 대역을 구할 수조차 없다 무무는 보보를 연인 역할로 캐스팅한 자신이 무모했노라고 후회와 자책을 한다 무무의 뇌와 오감은 이제 보보를 개새끼 스토커 범죄자라고 감지한다 타이머 버튼이 눌러진 시한폭탄을 해지하듯 이별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시행되어야 한다 무무는 이제 비용이 들더라도 프로파일러나 심리상담소에 의뢰하여 코치를 받는 것이 안전해 보인다 경찰의 신변 보호도 필요하지만 그 분야는 유독 배우의 인력도 전문성도 부족하다고 한다 무무에게 이번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무무는 보보에게 이별의 뜻을 비췄다가 감금당하고 물러난 적이 있다 무릎 꿇고 눈물로 열연하는 보보에게 같은 배우로서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러나 무무는 이제 더 이상의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 온몸에 돋아난 소름과 쭈뼛거리는 머리카락은 무대 분장이 아니다 무무는 이제 희곡 작가와 형사역을 병행한다 A안 B안 C안 다시 A-1, A-2, A-3 보보의 반응에 대응할 다양한 극본을 준비한다 소품 아닌 가스총도 필수다 연애극 또는 결혼사실극에서 그동안 무수히 많은 무무들이 보보에게 칼에 맞아 죽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폭행당해 죽고 목이 졸려 죽기도 했다 어떤 무무는 보보에게 일가족이 살해당하기도 했다 무무는 이제 사람이 무섭다 무무는 이 무대에서 무사히 탈출해 나갈 수만 있다면 이제 어떤 극한의 연기도, 철인삼종도 가능하리라 자신한다 거울을 보면서 무무는 오늘 가장 슬프고 비장한 이별을 연기한다 무무는 이 극을 관람하러 오는, 오직 다정한 연인들에게만 특별 이벤트 반값 할인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포스터를 수정한다
—계간 《청색종이》 2022년 봄호 ------------------ 김효은 / 1979년 목포 출생. 2004년 〈광주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2010년 계간 《시에》 평론 당선. 서강대 국문학과 박사과정 졸업. 저서 『아리아드네의 비평』 『비익조의 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