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놓치지 말라
며칠 전에는 아내는 5장 7부 중 한 가지를 두고 외출하였다. 즉 휴대폰을 집에 두고 외출하여 연락이 두절이 된 것이다. 주민 센터에 간다고 하였는데 오랫동안 오지 않아 휴대폰으로 물어보려고 전화를 해보니 어디선가 진동음이 들렸다.
진동음이 나는 곳을 보니 아내가 휴대폰을 식탁 위에 두고 간 것을 알게 되었다. 휴대하지 않아 연락이 안 되는 폰은 그 순간에는 쓸모없는 폰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한국에서 미국 스마트폰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국산 안드로이드폰이 좋은가 하는 논쟁이 있었는데 어느 폰이든 연락이 잘 되는 폰이면 좋은 폰이다.
시계 역시 고가의 명품 시계가 좋은 것인가, 아니면 저렴한 시계가 좋은 것인가도 역시 비록 가품(소위 짝퉁)시계라도 시간이 잘 맞는 시계가 좋은 시계라 답할 수 있다. 시계의 본질적 기능은 시간을 정확히 알려주는 것이다.
본질에 충실한 것들이 긴요한 시기가 되었다. 예전에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배운 사람들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임을 다 잘 알고 있다.
정치의 본질은 국민을 잘 살게 하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국민을 잘살게 하면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연락이 잘된다면 폰의 종류가 무엇이든지 2G 폰이든 5G 고급 스마트 폰이든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스마트 폰의 기능에는 연락 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가 있다. 그것을 잘 사용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현대인이다.
영국의 런던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꼭 찾고 싶어 하는 곳이 있다. 그곳은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이다. 오래 전에 이 사원을 방문했던 방문객들의 입에서부터 이런 흥미 있는 일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방문객들이 이 유명한 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들을 인도해 주던 안내자가 있었다. 이 안내자는 사원에 대한 역사적인 내력과, 무덤에 묻혀 있는 지나간 세기의 찬란한 영웅들의 삶의 내용을 설명했다. 이러한 설명이 끝난 후에 안내자는 방문객들을 향해서 “질문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때 미국의 아이오아 주에서 이곳을 방문했던 어느 한 여성이 안내자를 향해서 던진 질문이 있었다. “선생님께서 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과 내력에 관해서 훌륭한 설명을 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질문을 한 가지만 하겠습니다.
최근에 이 사원을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이 뜻밖의 질문 앞에 대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안내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형식과 허상을 쫓는 종교인이 아닌 믿음의 본질을 추구해야 한다.
한 대학의 수의학과 강의 시간에 교수가 학생들에게 문제를 하나 냈다. “한 경주마가 달리던 중에 넘어져 쇄골이 부러지는 상황이 발생했네. 수의사들은 이 말을 어떻게 치료해야할까?”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대답했다.
“먼저 움직이지 못하게 통으로 깁스를 한 뒤에 뼈가 붙도록 해야 합니다.” 교수는 정답이 아니라고 말했고, 또 다른 학생이 손을 들었다. “먼저 붕대로 압박을 한 뒤에 항생제로 처방을 해야 합니다.”
교수는 역시 정답이 아니라고 밝힌 뒤에 말을 이었다. “만약 누가 나에게 와서 자기 말이 쇄골이 부러졌다고 하면 나는 기자들부터 부를 걸세. 왜냐하면 쇄골이 있는 말은 지금까지 한 마리도 없었거든.”
교수는 어떤 문제를 접하되 가장 중요한 본질을 놓쳐서 안 된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신앙생활의 갈등과 교리의 작은 차이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과 희생을 기억하는 것이다. 믿음과 구원, 신앙생활의 본질을 기억해야 한다.
집단 이기주의의 본질을 파헤친 나인홀드 니버는 ‘책임적인 자아’라는 책에서 ‘사람들의 3가지 윤리의식’에 대해서 말했다. 첫째는 윤리를 목적에 따라 해석하는 목적 지향적 윤리를 가진 사람이다. 자신의 이익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편법과 불법도 마다 않는 이기주의적인데,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단지 수단일 뿐이다.
둘째는 의무에 따라 윤리를 지키는 규칙적인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법도 잘 지키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지성인이다. 그러나 남을 돕는 법이 있으면 남을 돕고 남을 돕는 법이 없으면 남을 돕지 않는 수동적인 윤리이며 또한 위선자일 수도 있다.
셋째는 윤리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다.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기 때문에 사회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다.
니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 번째 존재로 살아가며 성경의 선한 사마리아인은 세 번째 존재의 사람이라고 말했다. 구원받은 사람일지라도 말씀이 가르치는 대로 마땅히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다른 사람의 이웃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 집중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