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이 조선에 쳐들어온 임진왜란 시기(1592~1598년)를 배경으로 하는 여러 사극 영화나 드라마들을 보면, 으레 일본군이 조총을 쓰는 장면들이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사극의 대본을 쓰는 작가들을 포함하여 제작자들이 군사 무기에 관련된 지식들이 부족한 관계로, 임진왜란 배경의 사극들에서 등장하는 조총들은 사실과 틀리게 묘사되었습니다.
우선 사극에서 일본군이 사용하는 조총은 마치 현대의 자동 소총처럼 1초에 여러 발씩 총알을 계속 발사하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는 전혀 역사적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임진왜란 무렵인 16세기의 일본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통틀어서 조총을 비롯한 총기들은 총알을 장전하는데 그 속도가 매우 느려서 아무리 숙련된 사수라고 해도 고작 1분에 2발을 발사하는 정도가 고작이었습니다.
또한 16세기의 조총은 지금의 총기와는 달리, 연기가 많이 나오는 흑색 화약을 사용했기 때문에 몇 번 총을 쏘고 나면 뿌연 연기가 잔뜩 발생하여 앞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총을 쏠 때마다 총기 안에 화약 찌꺼기가 쌓였기 때문에 꼬질대로 총기 안을 청소하지 않으면 화약 찌꺼기가 가득 찼던 터라 총을 쏠 수조차 없었습니다.
심지어 임진왜란을 다룬 사극들 중 일부를 보면 비나 눈이 오는 날에 조총을 쏘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는 더욱이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16세기의 조총은 심지에 불을 붙여야 총알이 발사되는 구조였는데, 비나 눈이 오면 습기에 심지가 젖어버리기 때문에 총이 발사가 안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임진왜란을 다룬 사극들을 보면, 일본군이 죄다 조총을 갖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기 일쑤인데 이것 역시 당시의 고증에 완전히 어긋나는 설정입니다.
16세기 무렵의 조총은 현대의 소총들과는 달리, 공장에서 기계와 컴퓨터로 대량생산해내는 물건이 아니라 대장간에서 대장장이들이 하나씩 일일이 손으로 쇠를 때리는 단조 작업을 거쳐서 만들어내는 수공업 제품이었습니다. 따라서 조총의 가격은 굉장히 비쌌고, 아무나 쉽게 사서 가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임진왜란 와중에 의병으로 활동한 조경남이 쓴 문헌인 난중잡록을 보면, 1592년 5월 8일 한양에 주둔 중인 일본군을 염탐하였더니 조총에 들어가는 총알을 가진 자는 4~5명 중에서 겨우 1명이고 그나마 1명이 가진 조총의 개수도 15~16알에 불과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조총은 실제 효과나 위력보다 지나치게 과장된 쓸모없는 무기였을까요? 그것 역시 아니었습니다.
임진왜란을 겪고 나서 조선 조정은 이전까지 중요한 군사 무기였던 활을 제쳐두고, 조총을 집중적으로 만들어내고 정식 제식 무기로 삼았는데, 이는 조총이 여러 면에서 활보다 편리하고 위력적인 무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우선 활은 쓰는 사람의 육체적인 힘에 크게 그 위력이 달라지지만, 조총은 아무리 완력이 약한 사람이라고 해도 심지에 불을 붙이고 방아쇠만 당길 줄 알면 똑같은 위력의 총알이 발사되니 사용하기에 활보다 더 편했습니다.
아울러 활 시위에 매겨서 쏘는 화살은 갑옷을 뚫기가 매우 어렵지만, 조총의 경우는 화살보다 위력이 훨씬 강해서 어떤 갑옷도 50미터 안에서는 아무리 두꺼운 갑옷이라고 해도 맞으면 모조리 뚫려 버렸습니다.
결정적으로 활쏘기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리지만, 조총은 한 달만 가르치면 누구나 쏠 줄을 알게 되니 활보다 더 군사들을 무장시키는데 효율적인 무기였습니다.
이렇듯 조총에 대해 지나치게 과장을 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폄하를 하는 것도 안 될 것입니다.
출처: 일본의 판타지 백과사전/ 도현신 지음/ 생각비행/ 2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