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일 변 검사는 장호중 부산지검장과 이제영 대전고검 검사와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장 전 검사장과 이 검사의 구속영장은 발부.) 검찰 간부 3명에 대한 동시 구속영장 청구는 검찰 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다. 변 검사는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한 로펌에 자문을 구하러 갔다가 그곳 빌딩 화장실에서 몸을 던졌다. 변창훈 검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91년 33회 사법시험에 합격, 군법무관을 거쳐 1997년 서울지검 검사로 임관했다. 부장검사 승진 후 주로 공안부에서 일했으며, 2015년 국정원에서 대검찰청으로 복귀할 때에도 공안기획관으로 임명됐다. 앞서 지난 10월 30일엔 국정원 소속 변호사로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정모 변호사가 강원도 춘천시 소양강댐 인근 주차장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정 변호사 역시 변 검사와 함께 국정원 내 ‘현안 TF’에서 근무했다.
‘공안검사’란 대공·학원·선거·노동 등의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를 말하며 공안(公安)이란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뜻한다. 권위주의 정부 때 공안검사들은 간첩 수사 등 북한정권과 연계된 각종 공안사건 수사를 전담하면서 이름을 날렸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건개 전 서울중앙지검장, 정형근 전 국회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에서 검찰 고위직은 물론 정계·청와대에까지 진출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진보를 표방하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퇴조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 때에는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는 과정에서 김종빈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불구속 수사 지휘권 발동에 불만을 품고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는 공안검사들과 정권의 불화로 해석되었다. 이렇듯 정부의 성향에 따라 공안검사들은 정권과 불화하고 때론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앞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
‘보수 박근혜 정부’에서 ‘좌파 문재인 정부’로 교체된 지 약 반년 정도 된 시점에 발생한 변창훈 검사 자살사건에 대해 전현직 공안검사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기자가 접촉해 본 전현직 공안검사들은 대부분 이번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털어놓는 데 주저하는 눈치였다. 그중 한 명이 A 검사였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 모 검찰청 공안부장을 지낸 A 검사는 현 정부 출범 후 좌천돼 지방의 한 소도시 지청에서 근무하고 있다. A 검사와는 2012년 취재 중 알게 된 인연으로 몇 년 전까지 단속적으로 교류해왔었다. 현직인 만큼 조심스럽게 지금의 심경을 물어보았다. A 검사는 끝내 답을 하지 않고 “나중에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짧게 말했다. 공안검사로 오래 있다가 현 정부 출범 후 옷을 벗은 B 검사는 현재 서울 서초동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B 검사는 각종 공안사건을 매끄럽게 처리해 능력을 인정받았다. B 검사는 “아직 뭐라 말할 상황이 아니다. 때가 아닌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C 검사로부터는 비교적 솔직한 심경을 들을 수 있었다. 현직인 C 검사는 변창훈 검사, 정 변호사와 모두 인연이 있었다. “과거 변 검사와는 같은 부서에서 일했었고, 정 변호사는 학교 선후배 사이라 특히 친했다”고 했다. C 검사 역시 법무부를 비롯해 일선 지검 공안부에서 근무했지만 현재는 “앞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라고 고백했다. C 검사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나도 하루아침에 적폐로 몰렸다. 공안이든 비공안이든 모든 검사들은 국가와 조직에 충성해왔다. 충성한 죄밖에 없는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적폐로 몰리는 현실이 안타깝다.”
공안통으로 지검장을 지낸 D 변호사는 분개했다. D 변호사는 “5년 후 이 정권에서 잘나가던 검사들이 적폐로 몰리지 말란 법이 없다”며 “검찰 수사가 대단히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D 변호사는 “별건(別件) 수사는 물론 30~40년 전에나 있었을 법한 하명(下命) 수사가 이뤄지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에서 근무한 E씨는 구속된 장호중 검사와 서울대 선후배 사이로, 장 검사가 국정원에 파견 나와 있을 때 자신을 평소 ‘선배님’이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고 한다. E씨는 “장 검사는 권력을 탐하는 그런 검사가 아니었다”며 “‘샌님’ 같고 점잖아 주변 사람들로부터 평이 매우 좋았다”고 기억했다. E씨는 “공안검사 하면 ‘강성’이란 편견을 갖고 대하는데, 장호중 검사를 비롯해 내가 본 공안검사들은 다 예의 바르고 성실했다. 아까운 두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경찰 공안 계통에 몸담으며 검찰과 오랫동안 업무관계를 맺어온 F씨도 “공안이란 이름은 존재하나 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는 알 수 없다. (공안부서가) 정상화되기까지엔 다소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전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 인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부분 중 하나가 정점식 대검찰청 공안부장의 퇴진이다. 대검 공안1과장,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 서울중앙지검 2차장 등 공안 계통 요직을 두루 지낸 정점식 대검 공안부장은 지난 6월 한직인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되자 곧바로 사표를 제출했다. 대표적 공안통인 정점식 전 공안부장에 대한 전보 조치는 검찰의 ‘공안 개혁’ 의지로 받아들여졌다. 지난 6월 9일 열린 퇴임식에서 정 전 공안부장은 “앞으로도 국가와 국민이 있는 한 검찰의 역할과 공안의 기능은 변함없이 중요하다”며 공안검사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점식 전 공안부장은 2003년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검사로 있으면서 재독 친북학자 송두율씨를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2014년엔 통합진보당 위헌심판 사건 태스크포스(TF)팀장을 맡아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을 이끌어냈다. 공안통이면서도 검찰 내에서 신망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변창훈 검사가 자살 직전, 법률자문을 구하기 위해 찾아갔던 선배가 바로 정점식 전 공안부장이었다고 한다. 통진당 태스크포스에서 정점식 전 공안부장과 호흡을 맞췄던 일부 검사도 좌천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장으로 TF에 몸담았던 김석우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으로 영전했다가 지난 8월 인사에서 대구서부지청 부장으로 밀려났다. 민기홍 울산지검 공안부장은 대전지검 형사3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안통의 퇴조 뚜렷
기자가 확인한 결과, 현재 고검장급 검사장 중에서 공안 경력이 있는 검사는 봉욱 대검찰청 차장검사와 이금로 법무부 차관 정도였다. 봉욱 차장검사는 대검 공안기획관을, 이금로 차관은 공안을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을 지냈다. 지검장급 검사장 중에선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과 서울중앙지검 2차장을 지낸 공상훈 인천지검장과 이상호 대전지검장, 윤웅걸 제주지검장이 있다. 공상훈 지검장은 2011년 왕재산 간첩단 사건 수사를 지휘했고, 당시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을 구속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과 2차장을 지낸 이상호 지검장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불거진 ‘NLL 대화록’ 사건을 수사했다. 윤웅걸 지검장도 서울중앙지검 2차장을 역임했었다. 대검찰청 부장급 중에선 차경환 기획조정부장이 공안 경력이 있다. 차 검사는 2013년 수원지검 2차장으로, 통합진보당 해산의 단초가 된 ‘이석기 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현재 검찰 공안부서의 양대 축은 권익환 대검찰청 공안부장과 진재선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이다. 권익환 공안부장은 공안부서 경험이 거의 없는 기획통이다. 권익환 검사는 2011년 대검 중앙수사부 산하에 설치된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장을 맡아 저축은행 대주주와 임직원들의 비리를 수사했었다. 진재선 공안2부장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인연이 깊다. 윤석열 지검장이 여주지청장이던 2013년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하며 검찰 수뇌부와 대립할 때 진 검사가 그 밑에서 주임검사로 일했다. 진재선 검사가 공안부서를 맡기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2013년 김진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진재선 검사가 현직 검사 신분으로 좌파 성향 단체인 ‘사회진보연대’에 3000만원을 후원했었다고 폭로한 바 있다.
공안검사들과 달리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했던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현 정부 출범 후 검찰 요직을 맡고 있다. 박영수 특검의 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필두로, 특검에 파견됐던 신자용·양석조·김창진 검사가 각각 서울중앙지검 특수 1·3·4부장을 맡고 있다. 특수1부는 여야 정치인 수사, 특수3부는 박근혜 정부 국정원의 특수활동비 의혹 수사, 특수4부는 국정농단 사건 공소 유지, 롯데그룹·효성그룹 수사 등 모두 굵직한 사건을 맡고 있다.
검찰이 이른바 적폐 관련 사건을 집중적으로 담당하면서 당초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검찰 개혁이 후퇴하고, 오히려 검찰의 위상이 강화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더불어 검찰의 공안부서가 당분간 존속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검찰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문무일 검찰총장은 공안부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며 “아직 공안부서 축소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적폐청산 수사는 윤석열 지검장이 전담하고, 문무일 총장은 조직 안정에 주력할 것”이란 분석도 내놓았다. 실제로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 7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우리나라 안보 현실과 사회현상에 비춰 보면 공안부가 하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8월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공안부 존속 의지를 내비쳤었다.
정권 바뀔 때마다 수난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종북세력 척결 성과 및 향후 대응방안’(2013년 1월)이란 검찰 내부 보고서를 입수할 수 있었다. 이명박 정부 말 대검찰청이 작성한 이 보고서에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검찰 공안부서가 겪었던 일들이 분석돼 있다. 그중 한 부분이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햇볕정책’ 및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조치를 국정 핵심과제로 추진, ‘공안’ 분야를 핵심적 장애요인으로 평가하여 인력·조직·예산 대폭 축소 △그동안 적극적인 수사로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에 공헌한 대공수사 담당자들에게 오히려 인사상 불이익 조치 △대공수사의 핵심인 대검 각 공안과장 및 서울중앙지검 등 주요 공안부장에 비(非)공안 전문가 집중 배치 및 우수 인력들의 공안부서 근무기피 등으로 전문성 약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부침(浮沈)을 겪는 공안검사들. 그들이 정치적 외풍(外風)에서 벗어나 소명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첫댓글 정치권이 문제를 만들고 만든 문제를 지들이
개판만드는 국개를 청산해야 한다
정권의나팔수 노릇하지말고 제대로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