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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아래의 본문 말씀을 비롯해 그 전후에서도 잘 알 수 있는 것이듯이 비록 죄악들로 인해 처참하게 무너졌었고, 바벨론 땅에서의 포로 귀환 후 아주 힘들게 진정 솔로몬의 때의 성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볼 품 없이 재건되어 지게 되는 예루살렘 성전인 것이지만, 게다가 또다시 더 크게 짓고 무너지게 됨과 함께 결국에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다시 재건되지 못하게 된 성전인 것이지만..
그러나 구약에 있어서, 또한 성경 전체적으로도, 심지어는 오늘날 우리들에 이르기까지도 그러한 예루살렘 성전의 중요성은 말로는 다 표현 못할 정도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그러한 성전의 의미와 역할은 그 무엇보다 바로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과 직결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인 것이고, 구약과 신약의 말씀들과도 전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수많은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오늘날 우리들과도 다양한 면에서 깊이 연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실상 우리의 교회와 예배들, 믿음과 사역들, 더 나아가 우리의 영성과 성령님의 역사와 이 땅에 임하게 된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등과도 결코 별개이거나 동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상 하나님의 언약궤, 곧 말씀이 한가운데 있는 성전은 구약의 제사와 제물들, 기도와 찬미들, 경건과 신앙들의 중심이면서 율법과 공동체의 핵심이자 본부와도 같았고, 하나님의 임재와 죄사함, 구원과 영광을 상징하며 실제로 약속되어 있었던 곳일 뿐 아니라 정말 나타나고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고..
무엇보다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이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며 구원에 참예할 수 있게 되는 것일 뿐 아니라 죄악들과 싸우고 범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주야로 더욱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의 될 수 있게 함에 있어서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알고 믿으며 사모하게 하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되게 하시고 실제로 참예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과 같은 통로와 방법들에 있어 가장 대표적인 것들 중 하나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장소와 접근, 방법과 절차 등 모든 면에서 제한적이었고 한계가 많았으며, 따지고 보면 임시와 예비적 역할과 위치가 아닐 수 없는 것이었고, 사실상 많이 불완전하고 불충분했다고 볼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러한 예루살렘 성전과 관련해서 여러 문제들이 생기거나 심지어는 인류 역사의 상황들 속에서 파괴되기까지 한 것도 볼 수 있는 것인데..
실상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러한 성전이나 율법적 행위들 등은 하나님의 세계, 구원의 역사, 복음의 능력에 있어 참이나 원형, 최종, 완성의 개념보다는 임시나 연결의 의미였으며, 말 그대로 구주 예수님을 위한 예표이자 모형이었고, 복음을 위한 몽학선생이자 안내자의 위치와 역할인 것이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에 비해 참 성전이신 예수님은 차원이 다른 분이신 것이고, 말 그대로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신 분인 것인데..
어쨌든 단적으로 말해 성전이 생각 이상의 비중을 차지했던 구약 성경은 주로 오실 메시야에 대해서, 신약 성경은 주로 오신 메시야에 대해서 증거하고 약속되며 계시된 것이라고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참으로 구주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분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말씀, 약속, 계시, 복음, 하나님 나라의 역사 등을 직접 보여 주셨고 온전히 경험할 수 있게 하신 것이며, 무엇보다 십자가에서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에 있어서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과 같은 위치와 역할과 권한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모든 구원의 일들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고, 완전한 희생양과 대제사장, 완벽한 경배와 성전이 되어 주신 것으로..
그러므로 진정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계획과 섭리 안에서 그 누구든, 그 어디서든, 아래 본문의 때에서와 같은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을 위시해서 그 어떤 시대와 나라들에서든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만, 특히 다른 그 어느 누구보다도 구주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이후의 오늘 우리들 같은 경우에는 구약 시대의 성전의 역할과는 비교조차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하게 바로 그 예수님으로 인해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할 수 있게 된 것이고, 수시로 그 어디에서든, 실상 꼭 그 예루살렘 성전에서가 아니더라도 그 어디에서라도 그러한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말씀을 사모하고 예배드리며 경배하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이며, 무엇보다 치열한 말씀의 신앙으로 살아 있는 믿음이 될 수 있게 된 것이고, 그와 함께 세상이 줄 수 없는 온갖 하늘의 힘과 은혜들, 은사와 응답들, 역전과 이적들 등을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과 인류 역사의 상황들 속에서 실제로 생생하고 강렬하게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어쨌든 구주 예수님께서는 성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말 그대로 독생하신 구원자이신 것이며, 실질적인 완전한 성전인 분이심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그러한 구주 예수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계획하시고 약속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경험케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고 정말 누릴 수 있게 하신 것이고..
직접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할까지 준비하시고 약속하시며 누리게 하신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진정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이 직접적, 경험적으로는 바로 그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자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신 그러한 성령님으로 인해 누구든, 어디에 있던 시대와 나라들, 시간과 공간들을 넘어서..
실제로 구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직접적, 현실적으로 구원에 참예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이며,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고, 본질적으로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됨이 가능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특히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 진정 참 성전이신 바로 그 예수님으로 인한 그러한 모든 은혜와 역사들과 함께 구원에 참예케 된 자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그 누구나, 그 어디서나 시간과 공간들을 넘어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리는 것 이상으로 예배가 가능한 백성들이 된 것이고..
좀 더 정확하고 실질적으로는 바로 그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와 능력으로 인해, 참으로 그 이름 가운데 있는 권세와 약속으로 인해, 특히 직접적,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실제와 함께 그러한 성전에서 누릴 수 있었던 임재와 영화들, 사함과 나음들, 응답과 복들 그 이상으로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들에서 시간과 공간들을 넘어 날마다 순간마다 생생하고 강렬하며 풍성하게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러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 가운데 그 자체로 성령님의 전이 된 자들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실제로 교회와 지정된 예배들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더 나아가 삶의 자리들과 인류 역사의 상황들 속에서도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기도하고 찬송하면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오직 말씀을 가까이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의 살아 있는 믿음의 몸부림들과 함께 말씀이신 하나님, 곧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 온갖 하늘의 힘과 역사들을 맛볼 수 있게 된 것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만인 제사장이라는 그 속의 의미처럼 그와 같은 원리와 실상대로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디서든, 어떤 자리와 상황과 영역들에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붙잡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마찬가지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과 세속과 정욕과 자기 소견과 온갖 불신앙들이 아닌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이 됨과 함께 삶의 자리와 여러 모양의 사역의 현장들에서도 합당한 예배자이자 예배의 삶, 마치 산 제물이나 산 제사와 같이 될 수 있게도 된 것이고, 그와 함께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갈수록 더 충만케 되는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이 되는 것이고, 그러면서 그 무엇보다 절대 진리이자 하나님의 법인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사건들도 풍성하고 강렬하게 경험케 될 수 있는 자들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끝으로 다시 한 번 정리하고 요약하면 참으로 아래 본문과 함께 요한복음 2장 21절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에서도 잘 알 수 있는 것이듯이 구주 예수님께서는 그 자체로 완전하고 완벽하며 무흠하고 본질적인 성전이신 분임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그러한 모든 일들 하나하나가, 실상은 구주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 하나만으로 진정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세상에서의 날마다 순간마다에 있어, 아니 영생에 이르기까지 우리 인생들에게 주신 가장 클 뿐 아니라 상상도 못할 선물이자 은총인 것이며,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과 함께 실제적인 하늘의 힘과 역사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더 나아가 승리와 역전의 예비인 것이며, 사실은 이미 더할 나위없는 만복과 영원한 생명이고, 모든 찬미와 경배, 은혜와 능력, 승리와 영광의 제목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2:6~9)
('페북두란노서원66'중에서 인용과 추가/밀알서원)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5년 2월 14일(금)2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