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5일(금)
* 시작 기도
(딤전 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주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전부터 아버지 하나님과 교제를 하였습니다.
또한 약속대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으며 부활하셔서 제자들과 천사들에게 보이셨습니다.
이러한 메시야로서의 복음의 행위 곧 구속사역을 통하여 온 세상에 믿음의 근거가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이를 믿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지만 나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막연한 믿음만을 취할 뿐이었습니다.
이런 나는 복음을 알기 전까지는 혼돈과 혼미함으로 갈 지(之) 자를 그리며 살아온 자입니다.
나도 알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복음을 통하여 주님이 주신 참된 생명으로 인도하는 고난 곧 징계임을 알고 난 후에, 이를 ‘아멘’으로 받았습니다.
십자가 죽음과 무덤에 장사됨은 예수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나 또한 그와 합하여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복음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롬 6:4).
하여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나를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어 주옵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가 되길 원합니다.
나의 의로 살려는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내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임을 믿사오니 주의 뜻을 이루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갈 4:1-11
제목 :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더니
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
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 나의 묵상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뿌리 깊은 유대교 전통을 버리지 못하고 지키려고 한다.
뼛속 깊이 들어 있는 전통과 유산이라는 종교성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율법에 매여 종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이런 전통과 유산의 종교성을 자신들만 아니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강요한다.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만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바울은 이와 같은 다른 복음에 빠져 있는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하여 강한 어조로 각성시킨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가능하다.
복음을 듣고 믿은 후에도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도는 결코 변함이 없다.
사실 율법 아래서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사실은 언감생심,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선포하셨는데 그 복음은 곧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 것이었다(갈 3:8).
그 복이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이다(3:26).
이 복음은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창세전부터 약속된 것이었다(딛 1:2).
이 약속의 연장선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아들이 오시기 전까지 초등교사의 역할을 하는 율법이 주어져 자신들의 연약함과 죄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율법을 통해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약속하신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이제 주님께서 그 율법을 완성하시고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지 말 것을 말씀하신다.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된다.
믿음의 주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로 이제 더 이상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않다.
오직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또한 그런 사람이 진정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며 그 사람에게 하늘의 유업(상속과 생명)을 주신다.
로마법에서는 유업을 이을 자가 아들이라도 미성년일 때는 종이나 다름없다.
아들이라도 미성년일 때 상속을 받으면 그의 아버지가 정한 후견인이나 청지기가 그 아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대신 맡아 관리한다.
그리고 그 아들이 성년, 곧 아버지가 정한 때가 되면 아들에게 상속권이 돌아가는 것이다.
갈라디아 교인들 역시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까지는 모두 종이나 미성숙한 자였다.
그런데 사실은 이런 갈라디아 교인들만 아니라 바울 자신과 유대인들까지도 모두 그런 자들이었다고 말한다.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여기서 ‘우리도’는 갈라디아 교인들과 유대인 그리고 바울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런 자들이 미숙한 자로서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서 종노릇을 한 것이다.
‘초등학문’의 정확한 의미는 성경 난하주에 나와 있다.
이는 헬라어 ‘스토이헤이아’로서 고대의 우주관과 운명론 등이다.
아무리 세상의 학문이 뛰어나고 대단하다 할지라도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초등학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세상학문을 폄훼하거나 무시해서 하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단지 구원에 이르는 지혜의 차원에서 말하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세상의 학문(율법주의 포함)은 알면 알수록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며 말씀을 보면 볼수록 나는 할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만이 나를 의롭게 할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하나님은 그 아들을 보내셔서 여자에게 나게 하셨다.
이는 아담의 범죄 이후 여자의 후손을 보내시겠다는 구원의 약속(창 3:15)의 성취이다.
그 아들을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그들에게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시기 위함이다.
이제 갈라디아 교인들 뿐 아니라 오늘 우리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따라서 아들의 영을 받은 우리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종이 아니라 아들이며 아들이면 유업 곧 영생인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되는 것이다.
이제 갈라디아 교인들은 이와 같은 아들의 명분을 얻어 하나님께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영생 곧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게 되었다.
그런데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전하는 다른 복음에 빠져 있는 그들을 바울이 보면서 한없는 안타까움과 함께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이전에는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여 진짜 하나님이 아닌 것들에 종노릇을 하였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아신다.
그런데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그들에게 종노릇을 하려 하느냐고 강한 어조로 어필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초등학문과 같은 날과 달과 절기와 해와 같은 율법에서 정한 절기를 지키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까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된 일이 될까 심히 두렵다고 하소연하는 것이다.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굳이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창세전 언약 또한 헛것이 되고 만다.
창세전 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그리스도와 언약을 맺으신 것으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어 그들에게 영생을 주자는 것이었다.
(딛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아들이 오시면 그 아들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벧전 1:20)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그 약속대로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하여 그 아들을 믿게 하시는 것 그것이 곧 하나님이 주시마고 약속하신 영생이며 하나님 나라이다.
이제 나는 초등학문에 종노릇하는 자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것들에 종노릇을 하였을 뿐 아니라 내 안에는 나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땅의 지체들로 여전히 갈등과 고민을 하고 있다.
때로는 그 초등학문에 넘어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되어 구원 얻은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정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그것이 쉐마의 진정한 의미이다.
이런 쉐마를 통하여 생명과 평안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아들의 생명을 얻어 영생을 누리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온전한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따를 때 우리를 심판하기도 하신다.
그 심판은 결코 우리를 죽이고자 하는 진멸이 아니라 아들의 생명을 온전히 얻도록 하시기 위한 징계인 것이다.
때로는 아들의 생명을 얻은 자에게는 그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연단을 주기도 하신다.
이를 통하여 날마다 죄와 싸우되 피를 흘리기까지 싸워 아들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삶을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이 싸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 날까지 해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죄의 본성인 육체 안에 살기 때문에 이러한 초등학문 곧 죄의 습관들이나 종교적 전통과 유산에 매여 살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심판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징계 앞에 우리는 겸손히 머리를 조아리고 그 심판 아래 거하는 것이 나를 살리는 길이다.
그 심판 아래서 다른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으로 날마다 교제하여야 한다.
그렇게 주님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여 하나님의 아들 됨의 본분을 지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삶을 통하여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창세전부터 이미 아들을 보내주시기로 작정하시고 때가 되어 그 아들을 여자의 후손으로 보내셨습니다.
또한 신실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율법과 죄 아래 거하시고 죄악 덩어리가 되시어 친히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 시간 주님을 찬양하나이다.
어디를 봐도 선한 것, 의로운 것 하나도 없이 철저히 타락하여 내가 죄악 덩어리임에도 그런 나를 살리시고자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아버지의 그 사랑에 그저 감읍하나이다.
이 죄인 오늘도 나의 죄 됨을 바로 알고 주님 앞에 엎드립니다.
나의 죄를 주의 보혈로 사하여 주시고 다시 파레시아로 담대하게 일어나 아버지 품으로 나아가오니 나를 받아주소서.
나를 아들로 보지 마시고 품꾼의 하나로 여겨달라고 읍소하던 아들,
돼지 똥 냄새만 풀풀 풍기던 그 둘째 아들을 아무 조건 없이 그저 와락 끌어안으시는 아버지의 그 사랑 앞에 가슴이 먹먹해질 뿐입니다.
그 모습이 바로 저의 모습이거늘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들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오늘도 그 생명으로 살아가는 한 날 되게 하시고 오직 주님과 더 깊은 교제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주님의 것이오니 주의 뜻대로 사용하소서.
오늘도 온전히 주님의 뜻인 영생의 빛을 드러내는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