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 30분쯤 문자를 받았다. 대체로 오전 9시쯤 통보되는데 양성이면 보다 빨리 전화가 온다고 들어서 역시 음성인가 싶었는데 문자를 보고 정말 ‘헉’소리가 났다. 양성이라니, 만감이 교차했다.
어제 검사를 받기로 결심한 건 몸살 정도로 생각했던 증상에서 특이점을 느꼈기 때문. 처음에 코로나19 감염을 의심하지 않은 건 발열 증세가 없었던 탓이고, 지금까지도 발열 증상은 없다. 발열 증상으로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판단하는 게 능사는 아닌 것이다. 지금까지 몸살을 앓을 때면 이불을 싸매고 땀을 빼며 잤다. 그러면 어느 정도 증상이 경감됐고 바로 회복했던 터라 이번에도 역시 그렇게 임의적으로 체온을 올리며 잤고 그 뒤로 증상이 완화된 느낌을 받았지만 다시 몸살 근육통과 오한이 찾아왔다. 무엇보다도 잔잔하게 지속되는 두통 사이로 어지럼증도 느꼈다. 태어나서 이렇게 몸살 감기를 심하게 겪어본 적이 없어서 이상했다. 한편으로는 이게 코로나19로 인한 증상이 아니면 늙어서 그런 걸까 싶어 이래도 저래도 기분 나쁜 다른 똥 두개를 머리 속으로 열심히 저글링하는 기분도.
원래 비염을 달고 살아서 코막힘과 콧물, 그리고 후두부에 가래가 차고 기침이 동반되는 증세에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평소와 다른 느낌이 있었다. 코가 많이 매웠다. 보통 코가 건조해지면 맵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 역시 비염 증세를 앓는 이들에게 익숙한 감각이지만 평소와 비교했을 때 그 세기와 지속성에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코로나 코매움’을 검색해보니 코로나 확진자들이 그런 증상을 느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확실히 미각이 떨어졌다. 아예 맛이 느껴지지 않는 건 아니지만 웬만큼 자극적인 것을 먹어도 그 자극성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래도 이거 검사를 받아봐야 할 일이다 싶어서 검사를 받았고 결과는 이렇게.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그냥 뜨거운 맹물 같다. 원래 달달한 향이 나는데 향도 안 느껴진다. 맛과 향을 잃게 된다는 것이 코로나 확진 이후의 우울증과 연관이 있진 않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코로나 확진자라는 통보를 받은 뒤 병에 걸렸다는 두려움보다도 내가 누군가에게 이 병을 옮긴 것은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보다 크게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병세가 많이 호전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이게 신체를 넘어 마음의 병이 될 수도 있겠다는 것을 이해했다. 동시에 확진된 사람들이 남긴 의아한 거짓말까지 이해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만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는 잘 알 것 같았다. 어쨌든 확진자로 판명된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고 보건소 전화를 기다리며 동선 파악과 통보를 맡길 시간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 일주일 사이에 나와 접촉했던 이들에게 모두 연락해서 상황을 전하고 검사를 권했다. 하나 같이 불미스러운 소식을 전하게 돼서 미안했고, 민망했다. 내가 병에 걸리려고 걸린 건 아니지만 내가 걸린 병이 누군가에게 민폐가 될 수 있다니 자연스레 그런 마음이 동했다. 동시에 그런 마음을 갖는 내가 이해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했다. 코로나 시대의 INTJ가 겪는 뜻밖의 내적 갈등 같은 것이랄까. 그래도 하나 같이 되레 위로해주고 전화까지 걸어 안부를 물어주니 정말 고마웠다. 본의 아니게 살을 날렸는데 원기옥을 모은 기분이랄까.
확진 문자를 보낸 보건소에서는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만 바로 걸려오지 않았고 전화를 자제해달라고 하니 자제했는데 정말 오늘 중에 전화가 오긴 하나 싶었다. 이해는 된다. 하루에 5천여명가량의 확진자가 나오는 상황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확진자로 구분되고 나니 그 이후 상황에 대한 시나리오를 받아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오후 4시 30분쯤 연락이 왔고 증상과 경위에 관한 질문이 전해졌다. 증상이 심하지 않아서 자택 격리 대상이지만 같이 사는 가족이 있으니 어찌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자칫하면 정말 이상한 ‘위드 코로나’를 하게 되는 셈이니까. 일단 아내는 일말의 증상도 없지만 알아서 검사를 받으러 다녀온 상황이라 내일 결과에 따라 경우의 수도 달라진다. 그 와중에 보건소 직원 분이 함께 사는 인원 외에 반려동물 상태를 묻는 게 흥미로웠다. 우왕좌왕하는 상황 속에서도 생각지도 못한 것을 챙겨주는 느낌이라 묘한 기분이. 그 와중에 서울 국번으로 다시 유선 전화가 와서 보건소인가 싶어 받아보니, 안녕하십니까, 허경영입니다.
첫댓글 비염에서 코매움이라... 오...
오…….. 그래서 얼마전에 코나 너무 건조하고 아파서 병원갔는데 다른 몸살이나 열 증상 없냐고 바로 물은거였나…..
집이 너무 건조해서 코 아픈거고 다른데 아픈데 없어서 코로나 의심 조차 안 하긴 했는데…… 코 매움…
나 확진자였는데 본문이랑 증상 다 똑같아 심적으로 느낀 것들도 모조리 똑같아
와.. 글로만 봐도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