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침노하는 자의 것인가. 노력을 해서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한 사람을 나는 근거리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H형은 고등학교 시절 나의 1년 선배다. 그는 성실로 항상 승부를 걸었다. 내가 대학을 다니고 있을 때 길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그는 인천 체육전문대를 졸업하고 취직이 안 되어 방황하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초라했다.
나는 그를 데리고 내 형이 교사를 하고 있는 예일중학교에 갔다. 내 형에게 사정을 말하고 돈 만원을 타내어 그와 함께 점심을 먹고 조금 걸어서 불광극장을 갔다. 마침 마이웨이를 상영하고 있었다. 우리와 동변상련의 영화는 끝나고 그날 그가 나에게 고맙다고 하면서 전에 우연히 현진이를 만났는데 자신에게 무척 섭섭하게 대하였다고 말했다. 그런 반면 나는 자기에게 대접을 흡족히 해주었다는 말을 남기고 쓸쓸히 나와 헤어졌다.
그 후 그는 인천 체육고등학교에 교사로 채용이 되었다고 하였다. 나는 반가워 그를 찾아 갔다. 그는 나에게 지난 날 고맙다고 하면서 융숭한 대접을 해주었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교사가 있다며 나에게 눈짓을 하였다. 그 여교사는 국어교사였고 뛰어난 미모를 지닌 여인이었다. 그는 나에게 부탁을 했다. 사촌동생이라고 말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와 혈육인 것을 약속하고 그 여인의 집을 방문하였다. 그 이유는 그녀의 오빠가 외국어대학을 졸업하고 근사한 회사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나보고 그당시 외대학장으로 있는 외삼촌 얘기를 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여인의 집을 그와 함께 찾아가 그의 가족들을 만나 그가 나의 가까운 친척인 것을 강조하고 괜찮은 집 안인 것을 인식해 주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런 나의 거짓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그를 사랑하고 있었기에 가족에게 승낙을 받아 내려고 마음을 조리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힘겹게 4학년이 되었다. 학점이 뻥크난 과목을 메꾸려니 약간에 돈이 필요했다. 나는 그에게 달려가 염치없이 딱한 처지를 말했다. 그는 아무런 이유도 달지 않고 흔쾌히 몇 만원을 내 손에 건네주었다.
그런 격동 속에 그가 결혼을 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군대에도 아직 안 간 그가 결혼식을 그 여교사와 한다고 하여 나는 그의 돌발적인 행동에 조금은 놀랬다. 결혼식은 화신 앞에 있는 제일예식장이었다. 그는 결혼식을 마치고 두어 달 뒤 아내를 뒤로하고 군대를 갔다. 나는 거친 풍랑을 헤치며 졸업을 하고 나 역시 그를 따라 군대를 갔다. 나는 장교였기에 외출과 외박을 요령껏 할 수 있었지만 그는 사병이라 아내에게 갈 수 없기에 얼마나 답답하고 괴로울 것인가를 내 나름대로 걱정하기도 했다.
세월은 흐르고 그가 나보다 먼저 제대를 해서 김밥 만드는 회사를 경영한다고 하였다. 그는 워낙 부지런하여 새벽에 일찍 일어나 공장에 가서 김밥을 만든다고 했다. 그런 그가 폭포수를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승승장구해 몇 년 전 광명시에 있는 까르프 점장이 되어 있었다. 거대한 건물을 관리하는 이사가 되어 있었다. 그는 아내와 하나밖에 없는 딸을 데리고 여의도 APt에 살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살아 가고 있는 듯 했다.
그가 나를 만나 그의 집 부근 63빌딩에서 식사를 하고 헤어지기 때문인 것이다. 모처럼 나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 가면서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너이기 때문에 자기 집을 데리고 간다고 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무지 기분이 나빴다. 그런 집은 부담스러워 빨리 나오고 싶었기에 하는 말이다. 친형제 처럼 나에게 대해 준 그가 너무 고마워 내 집에 방문해 줄 것을 청했다. 그가 돌아 오는 일요일 날 딸아이를 데리고 내 집에 갈 것이라 약속을 하였다.
나는 아내에게 식사를 정성껏 장만하라고 독려를 했다. 한 상 가득히 차려 놓고 기다려도 그는 오지 않았다. 나는 당황해 그의 집과 핸드폰 뿐만 아니라 회사까지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았다. 그는 오리무중이었고 연락이 없었다. 나는 내 아내에게 미안해 할 말을 잊어야 했다. 그 다음 그를 만나 내 집에 못 온 이유를 묻고 나는 극도의 섭섭함을 느꼈다. 내가 그를 애타게 기다릴 때 그는 아내와 딸아이를 데리고 온양 온천에 가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 나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얼마 전 퇴근하여 급히 차를 몰고 집으로 향하는데 그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아내가 교감으로 승진했는데 이제 시인으로 등단을 하겠다고 해서 나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도와 주겠다고 한 후 내 일이 바빠서 연락을 주지 못했다. 아마도 자존심 강한 그가 무지 섭섭했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런 일들을 잊으려고 한영육상부 모임에도 나는 참석하지 않았다. 두어 달 전 그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그의 하나 밖에 없는 무남독녀가 결혼을 한다는 거였다.
그가 나에게 참석할 것을 부탁했다. 나는 서슴없이 그러겠노라 약속했다. 나는 강남에 위치한 아미가 호텔을 찾아 예식장에 들어 섰다. 식장 앞에 서 있는 그의 아내도 그간 세파에 시달렸는지 야윈 얼굴로 손님을 맞이 하고 있었다. 그는 노력해서 바라고 원하는 목적을 상당 부문을 달성한 사람이다 나는 기쁘게 다가가 축하를 해 주고 돌아 왔다. 세상사 모든 일이 부질없는 것인데 우린 속절없이 그 일에 묻혀 살았음을 부인 할 수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