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5주 토요일 ( 코헬 1,9―12,8 /루카 9,43ㄴ-45)
제1독서
<먼지가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이 하느님께 되돌아가기 전에, 젊음의 날에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 코헬렛의 말씀입니다. 11,9―12,8
9 젊은이야, 네 젊은 시절에 즐기고, 젊음의 날에 네 마음이 너를 기쁘게 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부르심을 알아라. 10 네 마음에서 근심을 떨쳐 버리고, 네 몸에서 고통을 흘려 버려라. 젊음도 청춘도 허무일 뿐이다.
12,1 젊음의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불행의 날들이 닥치기 전에. “이런 시절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아.” 하고 네가 말할 때가 오기 전에.
2 해와 빛,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고, 비 온 뒤 구름이 다시 몰려오기 전에 그분을 기억하여라.
3 그때 집을 지키는 자들은 흐느적거리고, 힘센 사내들은 등이 굽는다. 맷돌 가는 여종들은 수가 줄어 손을 놓고, 창문으로 내다보던 여인들은 생기를 잃는다. 4 길로 난 맞미닫이문은 닫히고, 맷돌 소리는 줄어든다. 새들이 지저귀는 시간에 일어나지만, 노랫소리는 모두 희미해진다.
5 오르막을 두려워하게 되고, 길에서도 무서움이 앞선다. 편도나무는 꽃이 한창이고, 메뚜기는 살이 오르며, 참양각초는 싹을 터뜨리는데, 인간은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가야만 하고, 거리에는 조객들이 돌아다닌다.
6 은사슬이 끊어지고, 금 그릇이 깨어지며, 샘에서 물동이가 부서지고, 우물에서 도르래가 깨어지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7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
8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모든 것이 허무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제자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43ㄴ-45
그때에 43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44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45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루카 9,44)
매순간 주님을 기억함으로써 행복으로 가는 길
코헬렛은 하느님 안에서 진정 의미 있는 삶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갈파합니다. "네 젊은 시절에 즐기고, 젊음의 날에 네 마음이 너를 기쁘게 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부르심을 알아라.”(11,9) “젊음의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불행의 날들이 닥치기 전에.”(12,1)
젊음도 젊은 시절의 기쁨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세상만사가 다 찰나의 순간에 사라져버리는 것들입니다. 육체를 지닌 인간은 시간과 장소의 제약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지요. 그럼에도 우리는 참으로 많은 순간 눈에 보이는 현세의 것들을 붙잡으려 하고 거기서 가치를 찾으려 합니다.
코헬렛은 인간이 처한 그런 실존적 상황을 꿰뚫어보면서 변화무쌍한 삶의 현실과 우리가 겪는 희로애락의 체험들 안에 영원한 행복으로 가는 길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젊은 시절이든 노년이든, 기쁘든 슬프든, 행복하든 고통스럽든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바로 창조주 하느님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같은 맥락에서 제자 교육을 하십니다. 첫 번째 수난 예고와 거룩한 변모가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아이를 고쳐주십니다(9,38-42). 그 모든 일을 본 사람들이 놀라워합니다(9,43). 병이 치유됨으로써 해방과 자유를 보고 체험한 이들은 큰 희망과 기쁨을 맛본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야말로 자신들의 문제와 관심사, 곧 민족의 정치적 해방, 영육의 치유, 재물의 더 많은 소유를 가져다주실 메시아로 보았습니다. 그들의 기쁨은 바로 자신들의 욕구와 기대가 예수님을 통해서 충족되었다고 믿은 데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도 사람들과 비슷한 생각과 기대를 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을 향하여 부활을 준비하도록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9,44) 하시며, 또다시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9,45).
제자들은 예수님과 동행해오면서 그분이야말로 결코 실패하거나 고통을 받으실 분이 아니었으며 더구나 죽음을 당하실 분이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지금껏 병자를 고쳐주시고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권위 있는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로 처신하셨기 때문입니다.
비록 제자들이 아직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우리 모두의 행복과 구원을 위해 십자가상 죽음을 겪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길이 아니고서는 우리 인간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수 없음을 잘 아셨기 때문이지요.
우리네 일상도 늘 수많은 변화와 희비애락, 고통과 슬픔, 시련과 좌절의 연속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행복하려면 변화무쌍한 변화와 잠시 사라져버리는 현세 물질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도록 집중해야 합니다. 영원한 행복, 영원한 생명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 상황이 좋든 나쁘든 "영원하신 창조주를 기억할 때" 주어지는 것이지요.
오늘도 모든 것 안에서 영원성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영혼의 어둠과 정신적, 육체적으로 겪는 고난을 견디게 해주는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의 아픔을 끌어안을 수 있는 연민의 마음을 기억함으로써 '지금, 여기서' 진정 행복한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