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뜨거운 가슴으로 이루어낸 사랑
글쓴이/봉민근
[1]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과는 차원이 다르다.
하나님의 사랑은 구체체적이고 분명하며 진실되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잠재울 자는 없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조건이 없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세상의 어떤 이력이나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며 일방적이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도 받아들이지도 않는 데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의 모든 사랑과도 바꿀 수 없는 진하고 진한 원액이다.
짝퉁사랑은 언제든 변질되고 바뀌지만 진짜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다.
하나님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사랑덩어리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 없이는 존재할 수 없도록 창조되었다.
우리의 영혼에는 창조 때 하나님이 만지신 하나님의 사랑이란 지문이 새겨져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자의 끝은 결국 허무에 빠져 목적도 없이 살다가
결국은 망할 수밖에 없다.
세상 사람이 무어라 해도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가운데 창조된 명품이다.
세상의 그 어떤 명품과 비교 불가한 귀하고 귀한 존재다.
인간이 자신감 있게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다.
[2]
하나님의 사랑은 겉도는 사랑이 아니다.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주신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사랑이다.
주님의 십자가는 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처절한 승부수요
목숨을 건 놀랍고도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 사랑은 완전한 사랑, 변함없는 사랑, 강력한 사랑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 만큼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강력해진다.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믿음으로 반응하게 되어 있다.
그 사랑에 만족을 누리며 만끽하며 사는 인생이 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이가 만족하기에 충분하고 부족함이 전혀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적인 임시방편적인 사랑이 아니다.
결코 비극적으로 끝날 인간적인 그런 사랑이 아니라
인생에게 부어주신 불타오르는 하나님의 뜨거운 가슴으로 이루어낸 사랑이다.
인생의 목적도 이유도 모르고 살아가는 불쌍한 영혼들에게 이 사랑을 전해 주어야 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세상을 향하여 베풀 수 있는 최고의 봉사요
우리가 해야 할 마땅한 사명이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육적 본성대로 산다면
육적 본성대로 사는 사람은 사고방식도 그에 따라 형성된다.
사고방식이 육적 본성에 뿌리를 둔 사람들에게는
미움, 시기, 질투가 나타난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오시지 않았던 것처럼,
십자가의 죽음이 없었던 것처럼,
예수님의 죽음이 소용없는 일인 것처럼,
바울은 말한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하인리히 아놀드의 ‘공동체 제자도’에서-
자기욕망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 자체가
악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 생활은 분명 하나님과 적대적입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음란과 미움, 속임수 등등
여러 가지 죄 된 모습 속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해당됩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생명의 향기, 죽음의 악취
인간의 코끝에서 호흡이 멎으면,
모든 인간은 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로 사라지거나,
땅 속에서 악취를 풍기면서 썩어문드러지게 된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화장터와 공동묘지를 뛰어넘어,
주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죽음과 무덤을 깨트리고, 부활하신 덕분이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세상의 어떤 상황 속에서든,
싱싱한 생명의 냄새를 풍기며,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갈 수 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미 그 사람 안에 임재해 계시고,
그로 하여금 당신의 말씀을 통해,
당신 안에 있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이재철 목사의 ‘그들을 떠나’에서-
같은 복음을 듣고서도 복음을 배척한 사람들은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미 죽음의 악취를 풍기고 있었고,
복음을 영접한 사람들은 죽어도 영원한 생명의 냄새를 뿜을
그리스도의 향기들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영접하는 것은, 윤리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이렇듯 인간 생명의 본질에 관한 문제,
다시 말해서 생명의 향기로 영원히 살아남느냐,
아니면 죽음의 악취로 허망하게 소멸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욥에 대한 시인의 마음
욥
그를 읽을 때 가장 두려웠던 건
그 삶이 들려주는 교훈보다
자신의 삶을 기어코 살아낸 한 인간 때문이다
눈물도 없이 감당해야 하는 게 소명이라면
난 누구에라도 내 믿음 있음을 알리고 싶지 않다
달아오른 화로에 검은콩 터지듯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수천의 가축과 열 자식의 떠남, 그리고 지독한 피부병 아내의 저주까지
죽음과 병과 어둠
살을 에는 외로움이 어떻게
눈물도 없는 어제의 일이 될 수 있는지
재에 앉아서도
내겐 슬픔이란 없지
툭툭 털고 일어서는
차이만이
거인과 범인의 조건이라면
그를 동정하러 가는 날마다
정상까지 올라가 보진 못하고
그 근처에서 나는 도시락이나 먹고
돌아올 뿐이다.
-손진은-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비단 일반적인 위로만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성경을 감상적인 수단과 방식으로 읽는 것보다 더 혐오스러운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순전히 감상적인 방식으로 읽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공경에 처하게 되며, 실제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저는 시편을 읽었어요. 시편은 정말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말씀이네요."
이것은 성경을 읽는 옳은 방식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때 모든 지성적인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합니다.
성경은 단순히 일반적인 위로를 주고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논증을 제공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으로 하여금 여러분에게 논증하게 하십시오.
- 로이드 존스, [영적 침체와 치유] 중에서...
믿음이란
믿음이란
시간에 대한 나의 생각이
주님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이 시간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것
믿음이란
내가 아무리 많이 하나님을 체험했어도
그것이 매일 매일의 교제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면
영적 성장에는 한치의 도움도 안 됨을 아는 것
믿음이란
나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가
인간의 능력이 아닌 기적을 토대로 일어나며,
나의 선함이 아닌 그분의 약속에 기초하여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믿음이란
불확실한 세상에 살면서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길을 걸으며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지라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신하는 것
믿음이란
스테인드글래스의 신비로움이나
종교적 집기들의 성스러움을 통해서가
아니라, 고난과 실망과 환멸과 갈등과
낙담과 실패와 손해를 통해
무르익어 가는 것
믿음이란
뭔가 특별해지고 싶을 때는
일상의 것들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최고의 것들이라 인정해 보는 것
믿음이란
과거의 상처가 흉터로 남아
매일 매일 눈에 띄더라도
하나님께서 그 상처들을 통해
내 삶을 향한 그분의 완전한 계획을
이루어가심을 바라보는 것
믿음이란
이미 하나님의 손에 맡겨 놓은 사안에 대해
다시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해 보려는
유혹이 들때 그것을 과감히 뿌리치는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