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는 공평하다고 이야기한다.
모두가 똑같은 옷(군복)과 똑같은 신발(군화), 그리고 똑같은 머리를 하고 26개월이라는 똑같은 시간을 복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평등정신에 100% 입각한 훈련이 하나 있으니,
소위 사회에서의 극기훈련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아버지의 형님의 사촌동생에 증조부 쯤 되는 놈이다.
26개월이라는 군생활 동안에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2회씩 의무적으로 가야만하는 유격훈련.... 군인들이 가장 꺼리는 훈련인 유격훈련
그 후기...
(lodaing....)
5월 12일... 나에게는 정말 뜻깊은 날이었다.
내년의 오늘(12일)이면 군인이라는 신분에서 민간인이라는 신분이 되는
소위 전역 'D-365일'이 되던 날...
그 즐거운 기념일의 감동이 다가오기 전에 먼저 나에게 날라온 통보
"유격훈련에 계절이 돌아왔씀다" (웃......!! ㅠㅠ)
작년 9월에 뛰었던 첫번째 유격으로도 모자라서 올해 또다시 유격이 다가왔다. 물론 나에게는 이것이 마지막 유격이지만서도...
작년 유격때에 그 기억들이 갑자기 머릿속에 가득 찼다.
그 중 가장 뼈아팠던 기억...
생일이었던 9월 13일 목요일(요일도 기억한다 얼마나 인상 깊었으면)
생일이라는 나를 축하해 준다면서
'가스실'에 두번씩이나 날 밀어넣던 포대장 및 기타 간부, 그리고 내 사랑(?)스러운 고참들... 그리고 몇몇 후임녀석들(난 그대들을 기억한다)
어쨌든 점심을 먹고 완전군장을 꾸린후 잠시 오침(낮잠)을 하고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행군의 시작은 저녁 9시에 시작해서 다음날 오전 7시까지 계속되는 야간 행군(36km)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약간 수면을 취해주어야만 한다. 그래도 이제는 조금 밥(계급)이 된다고 머리를 써서 군장의 무게를 적당히 조절할 수 있었다. (작년에는? 우웩~~~)
밤 9시에 시작된 야간행군... 나는 앞에서도 한번 언급했듯이 포트리스병
일반 보병들에게 훈련이라는 건 곧 행군을 의미하지만 나같은 포트리스병 그것도 155mm급 포트리스병은 훈련을 해도 항상 차량을 이용하기 때문에 행군에 익숙하지 않다.(포병은 1년에 행군을 두번한다. 유격과 혹한기 행군) 일반 도로가 아닌 산과 계곡을 통과하는 행군 코스를 걷다보니 올해 처음으로 유격을 뛰는, 자대에 온지 얼마 안되는 운없는 후임병들 중에서는 쳐지는 인원들도 생긴다. 행군을 하다보면 다리가 발바닥과 다리가 아픈것은 둘째치고 어깨가 무지스리 아프다. 군장무게에 눌려서
그렇게 밤동안 행군을 하다보면 졸리기도 졸립고 또 힘들기도 하다. 행군이라는 것이 언제나 그렇듯 절반 정도는 체력으로 가지만 절반 정도는 정신력으로 가게 되는 것인데 아직 후임병들은 조금 서툴다...
그렇게 밤을 세워 걸어서 도착한 유격장... 어제 차량으로 출발한 선발대(비 행군자, 주로 환자들 또는 무지 밥되는 사람들...^^)가 쳐놓은 텐트에 군장을 대충 정리하고 아침을 먹고 잔다~ 12시까지....
그렇게 자고 일어나서 점심을 먹고 드디어 앞으로 4박 5일동안 이 못난 주인과 함께 땅바닥을 뒹굴 유격복(일명 CS복)으로 갈아입고 계급장과 군번표를 내놓는다.이때부터 우리는 한명의 군인이 아닌 한마리의 올빼미가 된다. (올빼미는 계급도 군번도 없다 오직 올빼미는 올빼미일뿐)
내 번호는 22번. 빠른 번호일수록 밥이 되고 오늘 여기온 인원이 80명 가량이니까 그래도 약간은 위쪽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유격훈련 중에는 전혀 쓸모없는 생각이다...)
그렇게 옷도 갈아입고 올라간 곳이 유격연병장. 여기서 간단하게 유격대장에게 입소식을 한다. 30분 정도의 유격입소식이 끝나면 검은 옷의 유격교관이 모자를 꾹~ 눌러쓰고 나와서 몇마디 말과 함께 호루라기를 분다
그러면 저 산 어딘가에서 들린다. 조교들의 외침 "격!!!~~"
"멋있는! 멋있는! 유켝!(강세있는 발음) 유켝! 유격대(들리기는 유켝태) 유격대!"를 외치며... 빨간색 ranger 셔츠를 입은 그들의 무게감....
그렇게 간단한 인사가 끝나면 바로 들어가는 것이 PT체조...
위에서는 흔히 Physical trainning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우리는
이 체조를 피!튀!기는 체조 라고 부른다. (누군가 그랬다. 유격의 꽃은 피티체조요, 그 절정은 행군이라고...)
그렇게 한 3시간 구르다보면 첫번째 유격의 날이 끝난다.
그럼 숙영지로 복귀해서 간단하게 씻고 저녁 먹고 이런저런 일들로 시간을 보내다가 하루가 간다.
둘째날(화요일)부터 마지막날(금요일)까지는 클래스 별로 달라진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하루씩 네가지 코스로 나뉘어진다.
기초 장애물 A코스, 기초 장애물 B코스, 산악장애물 코스, 화생방
한가지 씩 간단하게 소개해 보겠다.
기초장애물 A코스 : 18개 장애물 중에 1~9번까지를 말한다
부대의 유격장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주로 기초 장애물 중에서도 쉬운 녀석들이다. 타잔 줄타기(줄잡고 물건너기), 사다리 거꾸로 오르기, 구름사다리, 통나무건너기(제일 쉽다) 등등이 있다. 제일 압권은 '종합장애물'이라는 녀석인데 이걸 통과했다면 그대는 클리프 헹어의 자격이 충분히 있다...-_-
기초 장애물 B코스 : 위와 유사하다. 10~18번 코스
다만 A코스가 지상과 근접한 높이에서 이루어졌다면 B코스는 상당히 하늘과 가까운 녀석들이다. 3단 통나무 점프(밑에서 부터 위로 점프! 점프!), 경사판 등반(높다, 그리고 경사가 직각이다) 등등...
모든 점프는 우리의 눈높이 이상에 있는 목표물에 오르기 위해서 해야한다. 어설프게 뛰면 자유낙하의 법칙을 몸으로 체험한다.
(참고: 절대 죽거나 크게 다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잘한 부상과 그에 따른 갈굼은 옵션이다)
산악장애물 코스 : 그대의 체력적 능력을 백분 실험해 볼 수 있는 코스
외줄타기, 두줄타기. 세줄타기, 급조레펠, 수직하강, 급경사등하강 등등
6가지 정도의 코스로 구성된다. 줄타기의 경우 외줄은 계곡으로부터 15미터 정도에 있지만 두줄과 세줄로 갈수록 점점 높아져서 세줄타기는 주위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할 수 있는 산중턱 이상에 위치....(물론 안전그물은 있답니다^^) 수직하강은 경찰특공대가 잘하는 벽을 발로 밟고 수직으로 서서 내려오는 거, 급조하강은 벽에 퉁퉁 튀기듯이 내려오는 것 등등
막상 코스앞에 서면 그 위용에 쫄기마련이지만 한번 하고나면 또 하고픈 중독성이 있는 코스
화생방 : 무슨말이 필요있나? 나보다 이 코스를 더 잘 아는 사람들도 있을테니... 소위 CS가스라고 불리우는 최루탄을 사용하는 가스실습은 많은 사람들이 꺼리는 것들 중에 하나. 의외로 화생방을 두려워하는 인물들이 많다. (난 제일 편한데) 방독면을 착용하고 가스실에 들어가서 정화통을 분리한후 1분 정도 있다가 정화통 결합후 밖으로 나온다. 쉬워 보이지만 정화통을 재결합하다가 어리버리해서 결국 못하고 가스속에 고통스러워하다가 나오는 인물들도 있다. 1분정도면 숨을 참을 수 있다고?
방독면 쓰고 조금만 있어봐라 가만 있어도 숨이 차서 평상시 호흡이 되는지...^^
물론 이 코스별 훈련전에는 기본적으로 3시간 정도에 PT체조 교육이 있고
각 훈련장마다 간단하게 PT로 몸을 풀고 본격적인 코스 실습에 들어간다
여기까지가 상식적인 유격훈련이라면 이번 훈련에는 약간 비 상식적인 부분도 있었다. 바로 폭우속의 감악산 등반...
원래 군대가 그렇듯이 비가 오면 군대는 소위 '공치는 날(휴일)'이라고 말한다. 비가 오면 활동이 극히 제한되기 때문에... 이는 유격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비가 오면 훈련을 중단하고 텐트에서 대기(말이 대기지 사실은 논다)하는데 하루는 유격대장이 추억을 만든답시고 한마디 했다
"감악산(625m)이나 함 올라보까?"
그 한마디어 450여명의 유격대의 감악산 등반이 결정되었다.
비바람은 거세서 우의를 입어도 옷은 흠뻑 젖고 안개는 잔뜩 끼어서 옆 산봉우리도 보이지 않는 감악산.... 옛날 임꺽정의 산채가 있었다는 감악산은 그 이름만큼이나 험악했다. 말 그대로 끊임없는 오르막길, 단지 가파른 오르막이냐 덜 경사진 오르막이냐의 차이뿐... 그렇게 1시간 30여분의 등산끝에 오른 정상에서 우리는 그 흔한 '야~~~호' 한번 외쳐보지 못했다.
축구광인 우리 대대장(유격대장)의 한마디...
"우리 심심한데 16강 기원 응원이나 함 해보까?"
이 말 한마디에 450여명의 유격대는 011 선전에 나오는 응원
(짝짝짝짝짝 대한민국)을 비바람을 맞으면서 산 정상에서 하고 있었다
상상해보라 450여명의 장정이 비바람에 쫄딱 젖은채로 산에 오른 몇몇 민간인들 앞에서 위의 짓을 하고 있는 장면을.... '엽기'가 아닌가...
그렇게 엽기적인 짓을 하고 내려오는 길
올라가는 길이 가파랐던 만큼 내려오는 길은 아우토반이었다
올라올때는 걸어왔던 길이 비에 젖어 미끄러워지면서
걸어내려갔다기보다는 뛰고 미끄러지고 때로는 구르면서 내려갔다
그렇게 산을 다내려와서 걸린시간 30분....
오를때 1시간 30분 내려올때 30분.... 대충 우리의 모습이 상상이 가는가
어쨌든 이런저런 사건과 훈련속에 유격의 마지막 날이 왔고 유격의 시작이 그랬듯이 유격의 끝도 복귀행군으로 이루어졌다. 걸어왔던 코스를 그대로 되밟아오는 길... 유격장을 나서니 그동안 서로 으르렁댔던 유격조교들이 나와서 박수를 쳐준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미운정이 무섭다던가... 그들의 격려에 더욱 힘이 솟는다. 왠지 군장도 가볍게만 느껴지고 (너무 많이 빼버렸나?)...
새벽 3시에 돌아온 부대... 선발대는 벌써 자고 있다
대충 씼고 이른 아침을 먹고 자리에 누웠다.
힘들었던 만큼 그 고통을 이겨냈다는 뿌듯함과 함께...
내 군생활에 더이상의 유격은 없다는 즐거움에...
유격은 그렇다
힘든만큼 그 훈련을 이겨냈을때 느끼는 쾌감은 다른 훈련과 비교할 수 없다. 그렇기에 더 큰 고통이 다가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것만 버텨내면 다가올 그 쾌감을 알기에....
P.S 유격장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우리나라 보급품에 그렇게 다양한 사이즈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했던 이... 모두가 그의 머리에 맞는 전투모를 신기해하며 국그릇을 떠올리게 했던 이...
내 사랑스러운 동기 99학번 장민호군...
이번 유격을 제낄 수 있었는데 환자가 많이 발생해서 끌려왔다던 그...
세번째 유격이라는 그...
쪽팔리니까 다른 아이들한테 이야기하지 말라던 그...
같은 사단이면서도 서로 섹터가 너무 달라서 얼굴 한번 보기 힘들던 그..
결국 산 정상에서 어디있는지 못찾아서 사진 한장 같이 못 찍었지만
항상 건강하길 빈다...
재미있으셨나요? 쓰면서 자꾸 이런저런 내용들이 들어간 것 같은데
그냥 재미있게 읽으셨었으면 합니다.
요즘 들어서 유격도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신사적인 유격으로....
서로의 체력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유격으로...
새내기 여러분들, 그리고 군대에 곧 입대하시는 형들
유격... 더이상 두려움의 존재가 아니랍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이겨냈을때 다가올 성취감을 기대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