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의 마을만들기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2년이 지난 지금 각 마을은 어떻게 변했을까. 다양한 형태의 마을만들기가 진행됐지만, 여기에 참여하는 마을 주민은 보이지 않은 곳이 많았다. 이름도 다채로웠지만, 실행 내용은 대동소이해 다양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텅 빈 회관, 엉뚱한 사무실
주민사랑방만 있는 부산 동구 좌천동 행복마을. 곽재훈 기자
5일 부산 수영구 광안4동에 조성된 광안동 희망마을. 수영구가 지난해 시 희망마을만들기사업에 참여해 국·시비 16억 원을 들여 방치돼 있던 건물 두 동을 매입해 리모델링한 곳이다. 계획 당시에는 건물 '가'동에 장애인공동작업장(1층)과 다목적실(2층), '나'동에 어린이공부방(1층)과 사랑방(2층)을 조성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 가 보니 '나'동에 보훈단체 2곳의 사무실과 어린이도서관이 들어서 있었다. 특히 어린이도서관은 오후 시간에도 문이 굳게 잠겨 있어 사실상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었다. 수영구청 관계자는 "도서관이 고지대에 위치하다 보니 활용도가 떨어지는 것 같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희망마을만들기 사업장인 북구 구포동 주민공간은 경로당과 주민자치센터를 합쳐놓은 것과 다름없었다. 북구는 7억5000만 원을 들여 지상 3층 규모의 건물(연면적 360㎡)을 짓고 1층은 주차장, 2층은 노인쉼터, 3층은 다목적실로 쓰기로 했다. 그런데 현재 다목적실은 단전호흡, 댄스, 수지침 등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취미 프로그램 교육을 하는 것이 전부다.
건물을 지어놓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곳도 있다. 시 행복마을만들기 사업에 참여한 동구 좌천동 고지대 행복마을(좌천아파트 일대)은 지난해 사랑방 2개를 만들고 주민 교육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취재진이 둘러본 결과, 주민 사랑방은 평소에 문이 잠겨 있고 필요하면 주민이 짐을 갖다놓는 등 엉뚱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구청은 노후 아파트 미관 개선을 위해 지난해부터 좌천아파트 등 일대 아파트 13개 동에 오색빛깔 색채를 입혀 주거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계획도 세웠지만 6개월째 도시디자인심의위원회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공사에 착수하지 못했다. 주민 오모(64) 씨는 "구청에서 어떤 색을 칠할지 결정하느라 세월만 보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업 내용은 '그 나물에 그 밥'
시의 건강마을만들기 사업 내용은 치매예방교육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천편일률적이다. 걷기의 날, 걷기 프로그램, 걷기 지도자 양성 등 전 사업이 대부분 걷기 위주로 구성돼 있어 동네마다 차별성을 찾기 어렵다.
사업 성격이 달라진 경우도 있다. 지난 2010년 시작한 좋은마을 네트워크 사업은 저소득 지역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 각 지역 복지관 24곳과 주민, 공무원 등이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정례적인 회의를 통해 마을별 개선사항을 발굴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부산시 행정부시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복지환경개선위원회를 만들어 지역별 건의사항이 올라오면 지원 가능한 부분을 논의해 해결해 주도록 하는 식의 '피드백' 체계도 갖췄다. 하지만 사업 시행 초기 몇 차례 회의가 열리긴 했지만 흐지부지됐고, 복지환경개선위원회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이듬해에는 복지관을 중심으로 지역 주민의 역량 강화를 위한 주민자치대학을 운영하는 사업이 진행되다가 올해는 또다시 주민과 구청이 해당 지역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방법을 제안하면 시가 예산을 내려주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상구 희망마을만들기는 주민들이 부업을 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졌지만 계획한 대로 공동작업장이 운영되지 않자 아예 이를 없애고 식당을 열기로 방침을 정했다. 사상구청 관계자는 "이번에 시가 커뮤니티 뉴딜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여기에 참여해 주변 공장 근로자들을 상대로 한 식당을 운영하는 것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연대 박민성 사무처장은 "주민 주도로 해당 지역 문제를 찾아야 하는 마을만들기 사업이 모두 관에서 기획하고 진행하다 보니 주민들의 목소리가 배제된 채 방향성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 市, 낙후지역 도시재생 확대
- '빈곤의 섬' 활로 찾기
- 교육·건강 등 주민 주도형 사업 - '커뮤니티 뉴딜' 내년부터 시행 - 뉴타운 해제 민심달래기용 지적
부산시가 마을만들기 사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지역별 빈곤 격차가 심해지면서 낙후지역에 대한 도시 재생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심각한 문제였던 동·서 빈부격차 외에 뉴타운 실패, 재개발 지연 등의 요인으로 같은 지역 내에서도 낙후가 더 심한 '빈곤의 섬'이 발생하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낙후지역의 마을공동체를 복원해 저소득지역 주민의 살길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2010년 부산의 대표적인 낙후지역인 산복도로 일대를 변화시키겠다는 계획인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희망마을만들기 ▷행복마을만들기 ▷건강마을만들기 ▷좋은마을 네트워크 등이 잇따라 시작됐다.
시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에 들어갈 예정인 '커뮤니티 뉴딜' 사업도 준비 중이다. '결핍지역 공동체형 재생사업'으로 일컬어지는 이 사업은 16개 구·군 4500개 통 단위의 복합결핍도를 조사해 마을별로 특화된 재생 방법을 제시하는 형태로 진행될 예정이다. 각 통별 사회 경제 건강 교육 등 분야별로 취약부분을 조사하고, 해당 지역 마을공동체를 구성해 주민 스스로 마을에 필요한 부분을 시에 제안하면 예산을 내려 시행토록 하는 '주민 주도형 마을만들기 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사업은 뉴타운 해제지역의 도시 재생을 목적으로 만든 것이라 결국 해당 지역 주민의 민심 달래기용이란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존의 마을만들기 사업을 다시 섞어 재구성했기 때문에 또 다른 마을만들기사업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시 도시재생과 안도 도시사업담당은 "그동안은 마을만들기 사업을 통해 물리적인 재생을 먼저 펼쳤다면 이번 사업은 경제·사회적 마을공동체 복원을 우선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시 환경녹지국이 최근 도심 속 자투리땅을 녹지공간으로 만들겠다면서 저소득지역 폐공간 재단장에 나서 또 다른 형태의 마을만들기(쉼터 조성) 사업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시 관계자는 "전 국가적으로 도시 재생에 대한 관심이 높은 만큼 각기 다른 테마의 마을만들기 사업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