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배우고자 안달할 때 가르쳐라
교육은 질문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다
스스로 배워 깨닫는 것은 시간이 걸리고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빨리 깨달으나 학습의 효과가 약한다
'자지면 만지고, 보지면 조지라.'
"自知滿知, 補知早知.
자지면 만지고, 보지면 조지라.
"自知면 滿知고 補知면 早知라“
배움은 질문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다
論語(논어) 述而篇(술이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不憤(불분)이어든 不啓(불계)하며
不悱(불비)어든 不發(불발)하며
擧一隅(거일우)에 不以三隅反(불이삼우반)이어든 則不復也(칙불복야)니라.’
이를 제대로 해석하기가 어렵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다.
‘알지 못해 안절부절 할 지경이 아니면 지도하지 않는다.
말이 나올 듯 하면서 나오지 않아 입을 들썩대지 않는다면 가르치지 않는다.
한 쪽을 들어 가르칠 때 세 가지의 각기 다른 답을 하지 않는다면
다시 가르치지 않는다.’
공부는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 주는 것이다
孟子曰, “君子之所以教者五, 有如時雨化之者, 有成德者,
有達財者, 有答問者, 有私淑艾者. 此五者, 君子之所以教也.
군자가 사람을 가르치는 방식은 다섯 가지이다. 君子之所以教者五
때맞춰 내리는 단비와 같이 사람을 교화시키는 방식이 있고, 有如時雨化之者
덕을 이루어 주는 방식이 있고, 有成德者
재능을 완전히 실현하도록 해주는 방식이 있고, 有達財者
묻는 말에 대답해주는 방식이 있고, 有答問者
직접 가르치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감화를 받게 하는 방식이 있다.有私淑艾者.
이 다섯 가지가 군자가 사람을 가르치는 방식이다. 君子之所以教也
此五者 君子之所以教也"(孟子 盡心 上 군자가 사람을 가르치는 다섯 가지 방식)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Learn is Love
마음에 갈증을 느낄 때 공부를 하게 된다 맹자 盡心
학문은 올바른 것을 늘 생각하고 마음을 지키는 것으로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이다
다산 선생님은 매일 새벽부터 의 구심장을 탐독하고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탐독했다.
내 인생의 걸림돌은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가르치고 배움은 동시에 일어난다 啐啄同時
줄(啐)과 탁(啄)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으로,
가장 이상적인 사제지간을 비유하거나,
서로 합심하면 공부가 잘 이루어지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배우고 가르침은 함께 성장한다 敎學相長
‘배운 다음에 자기의 부족함을 알게되고,
남에게 가르쳐 본 다음에 어려움을 알게 되며,
부족함을 알면 스스로 되돌아볼 수 있고,
막힘을 알게되면 스스로 굳세어질 수 있으니
가르침과 배움은 서로를 성장하게 할 수 있다’
가르치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보다 많이 알고 또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남을 가르치다보면 자신이 확실하게 잘 알지 못하는 내용이 있을 수도 있고
아는 내용이라도 좀더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고
잔뜩 의문을 갖게 하고
동기 유발을 하여
알고 싶어 안달을 할 때
그 때 비로소 가름침(지도)을 하여라.
또 ‘한 가지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속담과 같이
열가지 이상 질문하고 대답하게 하라(무한한 가능성, 창의성을 길러 주는 것이다)
학습의 轉移(전이)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세 가지 이상 다른 답을 하게 질문 하라
좋은 질문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학습은 질문의 눈을 뜨게 하는 것입니다
교육은 질문의 눈을 뜨게 하는 것입니다.
배우는 사람의 질문으로 부터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을 보다 분명하게 알게 되기도 한다.
즉, 가르치는 상대가 있을 때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과 함께
지적(知的)으로 성장할 수 있다.
‘사람이 학문을 함에 있어 배우는 일과 가르치는 일을 각각 절반 할애해야 한다’
공자는 논어 공야장(公冶長)편에서 불치하문(不恥下問),
‘아래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밭가는 일은 머슴에게 물어보아야 한다’경당문노(耕當問奴),
‘베짜는 일은 여종에게 물어야 한다’직당문비(織當問婢).
‘군자는 능하지 못하면 남들이 알려주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으나,
소인배는 능하지 못하면 남들이 깨우쳐 주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荀子
배움은 겸손해야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자기 자식을 아끼는 마음에 스승을 골라 가르치게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이 스승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니 어리석은 일이다’한유(韓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