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르라”
-210526 국민일보 유기성목사 [예수동행컬럼]
우리는 지금 참 혼란스럽고 두려운 때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모르실리 없으시며,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고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한 선교사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들이 결혼하여 며느리가 임신을 하여 너무나 기뻐하였는데, 검사 결과 뱃 속의 아기의 심장에 심각한 이상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의사는 낙태를 권했지만 가족들이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니 낳기로 결정을 하고 매일 가정에서 예배와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기가 태어 났을 때, 아기의 아빠는 아기를 안고 너무 기뻐하였습니다.
그 순간 ‘놀랍게도 하나님이 새 심장을 만들어 주셨다’ 이랬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아이는 1시간 만에 하나님께로 돌아갔습니다.
그로인해 너무나 슬퍼하는 아들 내외에게 선교사님이 말씀하셨답니다.
"어떤 사람은 100살을 살 수 있지만...어떤 사람은 1시간만 살 수 있다...둘 중 어떤 사람이 정말 잘 살았는지는 하나님만 아실거다."
아들 부부는 이 말에 위로를 받고 아기의 장례를 치른 후 도리어 진실된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부활의 예수님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지하 감옥에 갇혔던 날 한 밤중에 찬송하였습니다. 그 때 큰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가운데 감옥에 갇히고 매맞을지라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이 두 사람 만 있어도 영적 지진이 일어날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설교학 교수 스티브 브라운은 자신이 쓴 책 [다 알았다고 생각한 이후 내가 배운 것들] 서론에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오랜 기간 목회와 교수의 사역을 감당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믿음, 고백, 지식들이 하나님에 대한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스티브 브라운 교수는 자신이 추구해 왔던 진리가 마치 가사만 있는 노래와 같은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가사도 충분히 가치있는 것이지만 가사만으로 노래를 들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가 다시 교회와 신학교와 세미나에서 다시 가르친다면 가사가 아니라 노래를 가르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가 부르고 싶었던 노래는 살아계신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려운 이 때 우리가 노래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애급에 끌려 요셉이나 바벨론에 끌려간 다니엘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들에겐 닥친 환란에 대처할 방법도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될까?’ ‘어떻게 사나?’ 염려하고 슬퍼하지만 않았습니다.
오직 순간 순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급과 바벨론에서 쓰실 수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 보다 비교할 수 없이 막막했을 것입니다. 그 때 그들에게는 아무런 대비책도 전략도 방안이 없었습니다.
오직 주님이 함께 하심을 알았고 주님만 따랐습니다.
그래서 깊은 감옥 한 밤중에도 노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만 따라 가는 것”이 답입니다.
은퇴 후 중동에 선교사로 간 장로께서 결단은 했지만 잘 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많았는데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에 마음의 짐이 벗어짐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실 때, 단순히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요 1:43)
예수님을 믿는 것 자체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눅 5:11)
계 14장에 주님과 함께 시온 산에 선 144,000명의 무리가 등장합니다.
그들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말씀하면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 (계 14:4)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가르침을 따르라" "이 신념을 따르라" "이 교리를 따르라" "이 신학을 따르라" 목회를 하라, 선교사가 되라, 어떤 일을 하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단순히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요 21:22)
예수님을 믿고 사는 것은 쉽고 간단합니다.
되지도 않는 고민하지 말고 예수님만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가자!” 역사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우리는 그냥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 길이 고난의 길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 16:24)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초점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가 아닙니다.
“나를 따를 것이니라”입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요 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