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대
김홍희
“반딧불이가 사진에 찍힙니까?”
손택수 시인이 난데없이 물어왔다.
“글쎄 찍히기야 하겠지만 반딧불이 자체라기보다는 날아다니는 흐릿한 빛의 흔적 정도가 찍히지 않을까? 기계적으로는 사실상 무리일지 몰라. 그런데 왜요?”
“이기대에 반딧불이가 사는데 사진으로 될까 해서요.”
“글쎄 아무래도 살아서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를 찍는 것은 어려울거야. 밀폐된 공간에 반딧불이의 수가 엄청 많다면 몰라도.”
그러고 보니 반딧불이를 본 적이 언제던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아버지의 고향에 갔던 그날 밤, 세상은 온통 날아다니는 별로 가득했었다.
“엄마, 별이 날아다녀요.”
싸리비를 들고 날아다니는 별을 쫓아 넘어지고 자빠지고, 벌써 40년도 전의 일이다.
그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홍희야, 반딧불이는 잡으면 빛이 없어져. 그냥 날아다녀야 별이 된단다.”
친구여, 나의 천박한 재주로나마 반딧불이 사진을 찍을 수는 있소. 하지만 그대는 알 것이오. 내가 반딧불이를 사진으로 찍으면 반딧불이는 더 이상 날아다니는 별이 아니라는 것을. 반딧불이의 빛은 필름에 노광되는 것보다 가슴속에 노광되어야 하는 놈이라오. 그냥 대신 사람의 불빛을 찍게 해주오.
미안하외다.
--김홍희 시집 {부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