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다음 주간(2/17~22)은 밀려있는 대외적 업무들이 많아 급히 처리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어, 아울러 삼위일체 하나님 관련 사역의 활성화를 위해, 무엇보다 말씀 운동과 부흥과 제 2의 종교개혁 등을 위한 신실하고도 순전하며 치열한 동역자들이 여러 모양으로 많아 지도록 하는 등에 있어 집중적인 기도 시간이 필요해서 '21세기 두란노서원' 등을 중심으로 하는 페이스북과 홈페이지와 유튜브 상의 게시 및 공유가 어려운 상황이기에 참 죄송스럽고 미리 양해를 구하며..
혹 다양한 이유들로 그와 유사한 내용들이 필요한 분들은 페이스북('양범주' 검색), 홈페이지(Daum검색에서 '행복카페교회' 들어가서 '리바이벌 센터' 게시판), 유튜브('양범주목사의 두란노서원' 검색) 등에 대략 3년 정도 분량(예를 들면 1년 전의 동일한 해당일을 참조하면 내용이나 흐름은 다르더라도 접근 용이)이 잘 보관되어 있고, 그 누구든, 그 어디서든, 그 어느 부분이든 편하게 이용하실 수 있게 되어 있으니 활용 및 참조해 주시길 원하고 부탁드리며, 다시 한 번 양해를 구합니다
------------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라고 증거되어 있는 아래의 본문 말씀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베드로를 통한 구주 예수님의 이름의 선포 한 번으로 성문 미문에서의 나면서부터 못 걸었던 자가 그 자리에서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역사는 아래 본문 및 전후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인류 역사의 현장 한 가운데 실제로 생생하게 나타났던 사건인 것으로 구주 예수님께서는 말 그대로 구원자이신 분이기 때문인 것인데..
진정 그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에 있어 길과 통로와 접점 등과 같은 위치와 역할과 권한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두 다 이루신 구원에 포함되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에 있어, 사실 다양한 모양의 모든 구원의 일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이지만 분명한 것은 어쨌든 아래 본문의 나면서부터 못 걸었던 자가 실제로 그 자리에서 걷게 된 사건을 위시한 모든 구원의 일들마다 단 하나,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구주 예수님 단독이실 수는 없는 것으로..
그 이전에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 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일부인 것임이 아닐 수 없고, 실상 따지고 보면 공중의 새 한 마리까지도 그 하나님 아버지의 허락이 없이는 떨어뜨릴 수 없는 것이며, 심지어는 우리 인생들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새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시기에 모든 구원의 일들 하나하나마다, 특히 구주 예수님으로 인한 모든 구원의 일들마다 바로 그 하나님 아버지로 인해 가능할 수 있는 것이고, 애초부터 시작될 수 있었던 것임을 발견하고 상고하며 통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인 성령님..
진정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시는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실질적, 실체적으로 정말 누리고 경험하며 나타나고 성취되게 하셔야 실제로 나타날 수 있고, 생생하게 경험케 될 수 있는 것임이 아닐 수 없다는 사실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조금만 따지고 봐도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마다 근원적으로는 그렇듯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으로 인한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사실상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나 개념 자체부터가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일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고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며 완전히 하나되어 한 뜻을 이루는 의미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실체적인 면에 있어서 그러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하나되심이란 예를 들면 하나된 군대에서 크게 전투 영역과 보급 영역으로 나눌 때, 또한 한 부부 간에 있어서의 남편과 아내에 있어 서로 간에 위치와 역할과 권한이 다른 것이지 그 각각의 가치나 비중이나 높낮이의 차이일 수는 없는 것과 유사하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그 무엇보다 서로 간에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전적으로 조화되어 하나됨이 생명과도 같은 부분인 것이자 절대적인 관건인 것이며 실존적인 정체성인 것임이 아닐 수 없음과 동일한 이치와 원리와 실제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본질적은 측면에 있어서 그와 같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면서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에 결코 아무나를 통해, 또한 아무렇게나가 아닌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 더 나아가 신실하고 절실하며 치열하고 뜨거운 말씀의 열정이 중요하고 직결되며, 어떤 면에서는 긴급하고 절대적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아래 본문 당시의 베드로만 하더라도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직전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오히려 그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며 심지어는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면서 부인했던 때의 베드로가 아닌 그와 정반대로 구주 예수님을 사모하고 믿으며 증거함에 있어서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을 정도의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었던 때인 것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 정도까지의 말씀의 열정이야 말로 말씀이 육신이 되신 구주 예수님의 이름의 간구와 선포에 그렇게까지 합당했던 것일 뿐 아니라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그렇게 까지나 강렬하게 누릴 수 있게 하신 것이고,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에 있어 그렇게 까지나 기뻐 역사하심이 될 수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며..
실제로 그때 당시 예수님을 아무 죄 없이 십자가에서 가장 처참하게 죽게 만들었던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그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어떤 식으로든 해를 당할 수 있었던 것일 뿐 아니라 상황과 방법에 따라서는 목숨까지도 얼마든지 잃게 될 수 있는 때였다고 볼 수 있는 것으로 아래 본문과의 사건과 동일한 연장선상에서 증거되어 있는 사도행전 4장 18~20절에서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라고 까지 증거되어 있는 것도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사도행전3:6~8)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5년 2월 15일(토)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