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산문 / 전기웅
한 번 빛나고 나면, 결국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 봄꽃의 운명이다.
그 모습은 화려하지만, 어쩐지 슬프다.
그래서 사계절 중 봄이 가장 아프다 나는 그런 봄꽃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찬란하게 피어나고 사라지는 대신, 오래오래 스며드는 존재로 남고 싶었다.
삶은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것과 닮았다. 뿌리를 잃은 것 같은 불안감, 익숙하지 않은 방향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두려움,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적응해야 하는 순간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나의 몸은 마치 끓어오를 힘을 잃은 물관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내부는 텅 빈 채로 어떤 것도 지탱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나는 그 공허를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골목길을 걷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골목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안식처였을 것이다. 지금은 초라해 보이는 이 벽과 벽 사이, 삐걱거리는 문과 비어 있는 창문도 한때는 따뜻한 기운을 품었을 것이다. 이곳은 더 이상 사람이 머물지 않는 장소가 되었지만, 나는 이 골목이 나를 품어준다고 느꼈다.
한쪽에 방치된 먼지 낀 유리창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오래된 지구본과 작고 매끄러운 수석이 거꾸로 놓여 있었다. 거꾸로 뒤집힌 모습은 마치 의도적으로 그렇게 배치된 듯했다. 세상의 중심과 균형이 무너진 상황, 그리고 아무도 그것을 바로 세워주지 않는 방치의 시간이 이 공간에 깃들어 있었다.
나는 그 풍경에서 나 자신을 보았다. 돌보지 않는 것들, 아무런 도움 없이 추위를 견뎌낸 것들,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비명이 있었다. 차가운 돌을 껴안고 시간을 견뎌낸 존재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돌들이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지 나는 이제야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돌은 울지 않는다. 하지만 물을 머금는다. 그 안에 고인 물은 마치 오랜 시간 누적된 눈물 같다. 돌처럼 단단해 보이는 존재들도 결국은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나는 먼지 낀 지구본을 들어 올리며, 그것이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그 안에는 한 사람의 세계가, 그 사람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때 나는 느꼈다. 돌보지 않던 것들, 돌볼 수 없었던 것들이 나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누군가의 손길이 닿아야만 온전히 빛날 수 있는 존재들, 그리고 그 손길을 기다리며 견딘 것들. 나는 그 지구본을 어루만지며 서로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 이름들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서로를 빛나게 하는 언어였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는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이 된다. 그 별은 누구나 볼 수 있는 별이 아니다. 그 별은 보듬어주는 손길이 있을 때만 빛난다. 나는 오늘도 그런 별이 되고 싶다. 무심코 지나치는 사물과 공간들, 사람들이 쉽게 잊고 지나가는 존재들에게 보듬어주는 손길을 내밀고 싶다.
삶은 거꾸로 선 물구나무서기처럼 때로는 익숙하지 않고, 때로는 힘겹다. 하지만 그렇게 뒤집힌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무게를 느끼고, 이름을 부르고, 서로를 빛나게 하는 순간들로 내 하루가 채워지길 바라며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
시
물구나무 수행법
전기웅
봄꽃이 허공을 밝히다가 떨어져 내린다
끓어올릴 힘 없는 물관이
초라한 몸을 감싸며
비바람이 몰아치는 골목에서 나를 품는다
먼지 낀 유리창 안쪽, 사람들의 속삭임이 들리고
낮은 처마 방엔
때 묻은 지구본과 수석이
거꾸로 놓여 있다
돌보지 않는 것들
차디찬 돌을 껴안고 날을 세어가며
비명 없이 추위를 견딘 것들
물을 뿌리면 가슴에 고인 눈물이
내 몸을 타고 흐른다
먼지 낀 지구를 들어올리면
보듬어 주는 손길이 느껴지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이 된다
오늘도 그렇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