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카라바타르입니다.
한국고대사를 연구하시는 여러분들의 입장은 많이 다르시겠지만
언어학자의 관점에서 저는 우리 민족이 선주민인 만주-퉁구스계와 이주민(정복자)인 몽골계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현재 어원학적으로 우리 고대사를 탐구하는 작업을 진행중에 있고
다음 부분은 4월초에 나오게 될 위당선생 <조선사연구>(하)에 제가 붙인 주석의 하나입니다.
우리가 고대 한민족의 축제를 이야기할때마다 등장하는 3대 활동 다 기억하시죠?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부여와 고구려의 경우는 현재 계속 관련 어휘를 조사중입니다만
무천의 경우는 지금까지 조사한 결과가 다음과 같습니다 한번 보시고 역사학 고고학적인 관점에서 좋은 편달 부탁드립니다.
무천(舞天):
상고시대에 만주-퉁구스계에 속한 예(濊)에서 행했던 제천의식.
농사를 마치고 해마다 음력 10월에 택일하여 높은 산에서 공동으로 큰 제사를 지내고 춤과 노래로 즐겼다. 부여(夫餘)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과 같이 일종의 추수감사제의 성격을 지니면서 동시에 공동체 구성원들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풍속으로도 볼 수 있다. 《위지(魏志)》〈동이전(東夷傳)〉에 “항상 시월에는 밤낮으로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데 이것을 ‘무천’이라 한다(常用十月祭天, 晝夜飮酒歌舞, 名之舞天)”고 한 것은 이를 말한 것이다.
이상이 '무천'에 대한 역사학계의 통상적인 설명이라면 어원학적인 측면에서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강길운은 《고대사의 비교언어학적 연구》(제343쪽, 새문사, 1990)에서 ‘무천’이 희생을 바치고 하늘에 제사 지내는 행위를 나타내는 만주어 ‘머터(mete)’의 명사형인 ‘머턴(meten)’과 대응된다고 보았습니다.
반면에
《흠정만류원류고》(제512쪽, 파워북, 2009)의 번역자 장진근은 어간에 ‘mete-’가 들어가는 만주어는 없으며 《한한청문감(韓漢淸文鑑)》에 따르면 제사는 만주어로 ‘워천(wecen)’이며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워첨비(wecembi)’라고 한다는 요지의 주석을 달고 있습니다.
물론
장진근이 예로 든 ‘워천’이나 ‘워첨비’도 제사 행위를 뜻하는 만주어라는 말은 옳습니다. 그러나 어간에 '머터-'가 들어가는 만주어가 없다는 그의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역자가 여러 문헌자료들을 조사한 결과에 따를 때 《만주실록(滿洲實錄)》 등 만주어 문헌들을 참조할 때 굳이 양자의 용법을 구분해 본다면 ‘워첨비’는 ‘신(들)’에게 제사 지내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며 ‘하늘’에 제사 지내는 행위 또는 하늘과의 약속을 지키는 행위를 나타낼 경우에는 앞서의 강길운의 주장처럼 반드시 ‘머텀비(metembi)’를 사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주어에는 이 밖에도 일반 대상에 제사를 지내거나 제물을 바치는 행위를 가리키는 어휘로도 ‘도봄비(dobombi)’ 또는 ‘죽텀비(juktembi)’ 등의 어휘들이 다수 존재하므로 해당 의미를 가진 만주어를 분석/번역할 때에는 해당 문헌에서의 맥락이나 상황에 따라 거기에 걸맞는 어휘를 사용하도록 하는 각별한 주의가 요구됩니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예로 책 이름을 하나 들면 만주족의 제사의식들을 소개해 놓은 책인 《만주 제사 전서(滿洲祭祀全書)》는 만주어로 ‘만주사이-워처러-머터러-용키야하-비터(manjusai wechere metere yongkiyaha bithe)’라고 읽습니다. 따라서 ‘워첨비’가 ‘워천’에서 파생되듯이 동사형인 ‘머텀비’ 역시 그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어간으로서의 ‘머터-’ 및 명사형으로서의 ‘머턴’의 존재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음운학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더라도 ‘무천’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머턴’입니다. ‘무천’의 ‘天’은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티엔[tien]’으로 발음해 왔지요.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구개음화(口蓋音化: Palatalization)에 의하여 ‘천’으로 발음하고 있지만 20세기 초기만 해도 ‘텬[tiən]’으로 발음했다는 사실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상의 근거들을 고려한다면 ‘무천’의 어원은 ‘워천’이 아닌 ‘머턴’이며, 시기적으로 보더라도 ‘머턴’이 먼저 사용되다가 ‘워천’이 파생되어 나온 것일 가능성이 크지요. 만일 만주-퉁구스어에서도 고대에서 근대로의 발전과정에서 우리말과 같은 구개음화가 나타났다면 ‘머턴 > 워천’으로의 변화도 상정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상의 어원학적 비교를 통하여 고대의 ‘예’가 적어도 언어적으로는 만주-퉁구스계에 속한 족속이었을 가능성이 높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댓글 조선상고사 기대됩니다. 만주어에도 구개음화가 있다는 사실 새롭군요.
어느 언어든지 조금씩은 구개음화가 나타나더군요.
한자에서도 드물지만 '茶'가 "다 > 차"로 변하는 식으로 가끔씩 보입니다.
갑자기 사례는 안 떠오릅니다만 영어권 언어에도 적지 않구요.
국내에 음운변화 관련 전문서들이 많으면 좋은데 그렇지가 못해서 체계적인 연구는 좀 어려운 실정입니다.
구개음화는 외국어에서도 가끔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영어에서도 dr- 이나 tr- 계통의 발음에서는 d 나 t 가 '즈' 나 '츠' 에 가까운 발음으로 바뀌는 것도 그 흔적인 것 같고(예: dream, tree를 '즈림', '츠리' 비슷하게 발음하는 경우 많음),
독일어라면 ti로 시작하는 어미들, 즉 -tion 같은 것이 '치온' 으로 읽히는 것도 구개음화의 흔적일 겁니다. (예: Nation 나치온)
일본어에서도 t 계열이라고 할 수 있는 '타' 행의 경우에는 '타 - 치 - 츠(추) - 테 - 토' 로 읽히는데 분명 원래의 발음은 '타 - 티 - 트(투) - 테 - 토' 였을 테니 티/트의 경우에 치/츠로 바뀐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어에서도 金이 '진/쥔' 처럼 발음나는 것이라든가(金庸 김용 -> 진룽), 江 이나 澤 이 '쟝', '쭤' 처럼 소리나는 것도 일종의 구개음화라고 볼 것입니다. (江澤民 강택민 -> 장쭤민)
우리나라의 구개음화는 매우 최근까지도 지역마다 정도가 다 달라서.... 북한말 흉내내는 가장 쉬운 방법이 구개음화를 안 하는 것이라고 할 정도지요. (예컨대 '좋지 않아?' 를 '됴티 않아?' 식으로 말하는 것. 다만 오늘날 북한도 그렇게 구개음화를 안 하기만 하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 <춘향뎐> 영화 나왔을 때 김정일이 '<춘향전> 이라고 하면 되지 왜 <춘향뎐>이라고 했는가' 라고 물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지요) 그래서 과연 구개음화가 한국어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될 특징인지, 그리고 매우 오래된 특징인지는 조금 애매할 듯 합니다.
미주가효님께서 훨씬 심도있게 잘 설명해 주셨네요.
국내 언어학 전문서에는 음운변화에 관한 내용들이 상당히 부족한 느낌입니다.
저 내용은 어디서 읽으셨는지 제가 확인할 수 있도록 책 제목을 좀 가르쳐 주십시요.
저도 미주가효님의 고견에 200% 찬동합니다.
우리 고대사를 연구하는 분들은 지명-인명-관명 등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구개음화 등 각종 음운변화를 염두에 두면서 시대/시기별 발음과 어휘들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된다고 봅니다.
현재 저는 어원학적 측면에서 우리 고대사에 대한 연구를 진행중인데
앞으로는 미주가효님으로부터 이런저런 사례에 대해서 많이 배워야 겠습니다.
앞으로 잘 좀 부탁드립니다^^
개인적으로 구개음화 같은 음운변화가 민족이동-정치변화-언어접촉 등의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고 봅니다.
단일민족의 단일계통의 단일언어 단일역사에서는 음운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고
이민족이나 이국어가 제3의 민족이나 언어와 교섭을 가지면서
자신들에게 익숙한 발음체계를 거기에 적용시키는 일이 많은데
구개음화 역시 그런 배경 속에서 발생하게 되는 것이거든요.
최근 북한어에서 구개음화가 부분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외적 요인의 자극의 결과입니다.
물론 남한어는 일제강점기 전후부터 그런 자극이 여러 방면에서 나타났기 때문에
북한보다 훨씬 빨리 구개음화가 이미 완료된 것이구요.
참고로 중국에서는 중국 한자음의 구개음화의 발생을 16세기 전후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100년전에 외국에서 베이징을 페(이)킹, 난징을 난킹 등등으로 읽었던 것도
16세기 전후에 서구에 알려진 중국한자음이 그대로 19세기까지 전승된 결과인 것으로 보이구요.
앞으로 미주가효님 그리고 여러 회원님들과 많은 절차탁마가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