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31일 [지극히 거록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복음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16-18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사랑의 화신(化身)인 예수님께서 어찌 가련한 인간을 멸망시키시겠습니까?>
세례를 받고 신앙 생활을 한 햇수는 점점 늘어나지만, 그에 비례해서 신앙의 깊이가 그리 깊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학교에 입학하고 수도회·수녀회에 입회해서, 오랜 양성 기간을 끝내고 봉헌생활자로 살아가지만, 목표했던 바처럼 영성 생활이 일취월장하지 않고, 지지부진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출발점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 신앙의 대상이요, 우리 영성 생활의 기초이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가 어떠한가? 하는 것을 성찰하는 작업입니다. 은연중에 우리는 꽤 두렵고 경직된 하느님 상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 신앙인들은 언젠가 도래할 종말을 하느님의 결정적인 심판이 이루어질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날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는 유다교 묵시문학의 영향 탓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신 예수님을 무지막지한 심판자로만 생각하는 것, 우리 신앙생활에 아주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니, 언제나 경계해야 할 태도입니다. 바리사이계 유다 최고위원이었지만, 진리를 향해 열려있던 신앙인이었던 니코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무렵, 유다인들 대부분은 무서운 심판자로서의 메시아 사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조만간 나타날 메시아를 정의로운 심판자이신 하느님의 엄격한 집행자로서 잘못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측면이요 신앙의 대상이신 하느님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를 지니고 있으니, 유다인들의 신앙생활이 부담스럽고, 힘겨울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지니고 있었던 그릇된 하느님 상, 왜곡된 메시아 상을 바로잡기 위해 목청이 터지도록 외치셨고, 공생활 기간 내내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통해 온몸으로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 16-17) 이 명문장은 하느님 아버지의 인류 구원 사업의 목적, 방법, 결론을 짧게 요약하고 있는데 이를 더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멸망이 아니라 영생, 심판이 아니라 구원!”
우리는 기도할 때, 언젠가 세월이 흘러 그분 대전으로 나아갈 때, 그간 우리가 지니고 있었던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의 대대적인 전환 작업이 절실히 요청됩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과 인간 각자를 심판하러 오신 것이 절대 아님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분 육화 강생의 목적은 멸망과 심판이 아니라 영생과 구원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성부, 성자, 성령 3위로 똘똘 뭉쳐 우리를 구원에로 초대하십니다.
은혜롭게도 멸망을 피하고 구원을 얻는 방법, 누워서 죽먹기 보다 더 쉽습니다. 눈을 들어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분을 보내신 분은 하느님 아버지이심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외아들, 메시아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현존과 동반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을 굳게 믿으며 일체의 다른 모든 우상 숭배를 끊는 것입니다.
사랑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 그 사랑의 화신(化身)인 예수님께서 어찌 연약하고 가련한 인간을 멸망시키고 심판하실 수 있겠습니까? 사실 하느님이나 예수님께서 심판하신다기보다는 우리 인간 각자가 스스로 심판을 초래한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향해 결단을 촉구하셨고, 그 결단이 우리의 구원 혹은 멸망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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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삼용 요셉 신부님]
<나는 삼위일체 교리 때문에 하느님을 믿는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요한 3,16)
찬미 예수님!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가톨릭 신앙의 가장 핵심적이고도 심오한 신비를 기념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세 분이 계시는데, 이 세 분이 완벽하게 하나의 하느님이시라는 교리입니다. 많은 신자가 이 교리를 수학적인 공식인 '1+1+1=1'로 이해하려다 보니 골머리를 앓습니다. 도무지 머리로 이해되지 않으니 그냥 덮어놓고 맹목적으로 믿어야 하는 어려운 숙제처럼 여깁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여러분께 아주 발칙한 고백을 하나 하고자 합니다. 저는 삼위일체 교리가 억지로 믿어야 하는 골칫거리가 아니라, 오히려 제가 '하느님이 진짜 나의 창조주이심'을 확신하게 만든 가장 완벽하고 과학적인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삼위일체 교리 때문에 하느님을 믿습니다. 이 교리가 아니었다면 저는 하느님을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우주의 에너지 보존 법칙에 따르면, 어떤 물질도, 어떤 생명체도 무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법은 없습니다.
반드시 생명을 주고 에너지를 불어넣은 '창조주'가 존재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수많은 신들 가운데 누가 나의 진짜 창조주인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오늘 저는 논리적이고도 완벽한 4단계의 법칙을 통해, 왜 삼위일체 하느님만이 우리의 진짜 창조주일 수밖에 없는지 파헤쳐 보겠습니다.
1. 창조자라면 구원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최고급 인공지능을 탑재하여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로봇이 하나 있습니다. 어느 날 이 로봇이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걸려 시스템이 붕괴하며 죽어갑니다. 로봇은 살기 위해 묻습니다. "누가 나를 만들었을까? 나를 만든 자만이 내 시스템을 알고 나를 고칠 수 있다." 그때 수많은 IT 기업이 다가와 서로 "내가 널 만들었다"라고 주장합니다. 로봇은 진짜 주인을 어떻게 가려낼까요?
단순히 "내가 널 만들었다"고 우기는 자가 주인이 아닙니다. 로봇의 시스템이 붕괴하였을 때, 그 내부 운영체제의 오류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백신을 깔아 완전히 고쳐줄 수 있는 자만이 진짜 창조주입니다. 만들었다고 큰소리치면서 정작 고장 났을 때 고쳐주지 못한다면 그는 참 주인이 아닙니다. 아이를 낳기만 하고 젖을 주어 키우지 못한다면 참부모가 아닌 것과 같습니다.
2. 구원 계획이 구원 이전에 미리 세워져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류 역시 죄라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걸려 죽음의 늪으로 떨어졌습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내가 세상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신들을 먼저 찾아가야 합니다.
이슬람교의 경전 꾸란 제39장 5절을 보면 "알라께서 하늘과 땅을 진리로 창조하셨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힌두교의 경전 춘도기야 우파니샤드 제6장 역시 절대자 브라흐만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고장 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합니까?
이슬람교의 구원 방식은 율법에 대한 철저한 복종입니다. 신은 하늘에 머물며 율법이라는 밧줄을 툭 던져줍니다. "이 밧줄을 꽉 붙잡고 네 힘으로 기어 올라와라. 그러면 살려주겠다." 불교나 힌두교는 어떠합니까? 스스로 깨달음을 얻고 카르마를 끊어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신이 밧줄조차 내려주지 않으니, 자기 스스로 우물벽을 맨손으로 기어 올라가야 합니다.
과연 이것이 완벽한 창조주의 구원입니까? 갓난아기처럼 똥통에 빠져 힘이 다 빠진 인간에게, "알아서 기어 올라와라"라고 하는 것은 구원이 아니라 방관입니다. 아기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머릿속에 설계하지도 않고 무작정 아기부터 낳는 부모는 없습니다. 무언가를 만들었다면,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고칠지 미리 '계획'을 세워두는 것이 창조주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참된 창조주라면, 인간이 죄에 빠지기 전부터 성경이라는 '설계도'에 그 완벽한 구원 메커니즘을 미리 적어두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참된 창조주이신 하느님은 이 무책임한 다른 종교의 신들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하느님은 메시아를 통해 어떻게 인간을 구원할 것인지 구약성경에 치밀하게 예언해 두셨습니다. 큰 물고기 배 속에서 사흘을 지내며 죽음과 부활의 시간표를 보여준 요나의 표징을 보십시오. 또한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이사 53,5)라고 명시한 이사야서의 고난받는 종의 예언을 보십시오. 이 수많은 구원의 설계도와 예언들이 수백 년 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실현되었습니다. 진짜 창조주만이 고장 난 피조물을 고칠 완벽한 설계도를 미리 가지고 계시며, 그 계획대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3. 구원하는 과정에서 삼위일체의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좁고 어두운 우물에 아이가 빠졌을 때, 진짜 부모는 위에서 "율법을 지켜라", "스스로 깨달아서 올라와라"라고 소리치며 책을 던져주지 않습니다. 참된 창조주의 구원은 철저히 '삼위일체의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유튜브에 올라와 전 세계를 울렸던 외국의 한 실제 구조 현장 영상이 이를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걸음마를 갓 뗀 어린 아기가 지름이 수십 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좁고 깊은 우물 구멍 속으로 추락했습니다.
우물 입구가 너무 좁아 덩치 큰 어른들은 도저히 그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어른들은 무작정 뛰어들지 않고 먼저 '계획'을 세웁니다. "우리가 위에서 밧줄을 꽉 잡아당길 테니, 체구가 가장 작은 소년을 밧줄에 묶어 거꾸로 내려보내자."
이 기가 막힌 구조 방법에 따라, 마을에서 가장 작은 일곱 살짜리 소년의 발목에 굵은 밧줄을 묶어 우물 속으로 거꾸로 매달아 내려보냈습니다. 캄캄한 우물 밑바닥에서 소년은 울고 있는 아기를 두 팔로 꽉 끌어안습니다. 그리고 지상을 향해 소리칩니다. "당기세요!" 지상의 어른들이 일제히 밧줄을 끌어당겨, 소년과 아기를 무사히 구출해 냅니다.
여러분, 이 눈물겨운 구출 작전 안에 하느님의 삼위일체 신비가 완벽하게 담겨 있습니다. 우물 밖에서 계획을 세우고 밧줄을 당기시는 어른들은 '성부 하느님'이십니다. 압도적인 거룩함을 지니신 아버지가 죄악의 좁은 우물에 직접 닿으면 세상이 타버립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인간이 껴안을 수 있는 '인간의 작은 체구'를 입은 소년을 내려보내십니다. 그분이 바로 강생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물 밑바닥까지 거꾸로 내려오시어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두 팔을 벌려 우리를 꽉 끌어안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당기시는 생명의 힘을 아들에게 끊어지지 않게 전달해 준 그 '밧줄'은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를 진정으로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는 분이라면, 나를 구원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부모가 아기를 키울 때 보여주는 이 절박하고 헌신적인 모습이 나타나야만 합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 이르러 우리를 살리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습이 그토록 확연하고 눈부시게 드러난 것입니다.
구원의 과정에 이 완벽한 부모의 양육 방식, 곧 삼위일체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는 가짜 신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삼위일체의 모습으로 다가오신 그분만이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진짜 창조주임을 굳게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4. 구원될 수 있다면 구원자도 될 수 있게 만들어야 참 창조자입니다
마지막 4단계입니다. 참된 부모는 아기를 구원하고 젖을 먹이는 데서 끝내지 않습니다. 그 아이가 자라나서 자신과 똑같이 생명을 낳고 구원하는 '부모'가 되게 만듭니다. 참된 창조주는 피조물을 그저 불쌍히 여겨 살려두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똑같은 본성을 수여하여 '구원자'로 격상시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증거입니다. 하느님은 당신 모습대로 인간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식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출저: 복음말씀의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