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칠갑산이라는 노래를 즐겨 부른다.
어릴 적 아장 아장 걷기 시작할 때에도 어머니는 김을 메셨고,
조금 자라서 학교에 다닐 적에도 어머니는 김을 메셨다.
고향을 떠나 도회지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도 여전히 어머니는 밭의 김을 메셨다.
그 때는 왜 그렇게 뙤얏 볕 아래 쭈구려 앉아 김을 메셔야 하는지 불만이 많았다.
저녁에 집에 돌아 오시면 아구구~ 신음 소리로 고통을 호소하는 어머니 다리를 밟아 드려야 했고,
한여름 뙤얏 볕은 일사병을 불러 오고 두통을 불러오기 일쑤여서 맨날 아프셨기 때문이다.
♩♪♬ 콩밭메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소리만
어린 가슴속을 태웠소 ♩♪♬
유학 시절 그 아픈 몸을 이끌고도 콩밭메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버스에 몸을 실을 때마다 눈물 범벅이던 마음은......
칠갑산이라는 노래 가사와 어쩌면 이리도 절절하기만 한지......
어머니! 왜 그렇게 고된 일을 해야 합니까?
김을 메주지 않으면 곡식이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그냥 놔두고 스스로 자라서 맺어진 곡식만 먹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말하지 않았느냐! 김을 메주지 않으면 곡식은 자라지 못하고 녹아 버린단다.
그래도 그 중에는 살아남은 곡식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 것이 네 차지가 될 것이라 생각마라. 그것은 새가 먼저 날아와 먹어버릴 것이란다.
곡식이 익기 전에 어머니 몸이 먼저 녹아날 것 같습니다. 꼭 그리 하셔야 하겠습니까?
니 엄마 몸이 녹아 니가 잘 자랄 수 있다면 이 엄마는 백번이고 천번이고 녹아나도 된단다.
어머니......
어머니......
오늘도 뙤얏 볕 아래 김을 메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기만 하다.
저 하늘 나라로 가셔서 김을 메어줄 분이 아니 계시니
이제 콩밭의 김은 누가 메어주랴.......
첫댓글 시골에서 농사를 지셨군요
농촌출신입니다.
@설아 * 네. 7시 방향 출신......
어이 불효자식?
어머니좀 그만 부려 처먹어라....
왜 어머니만 김을 맨다고 생각
하는겨?
어머니 골병들어 죽일셈이냐?
마음이 뭉클합니다
저도 칠갑산 노래는 뭔가 심금을 울려 좋아하는데~~
새삼 크리스탈님의 향수를 들여다보게 되어 콩밭매는 어머니 두고 눈물 흘리며 버스를 타고 가며 가슴 녹던 그 모습이 그려집니다
마음이 촉촉해지네요
곡식이 잘 자라도록 김을 메시는 어머니의 마음이 무척 그립습니다.......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어머니의 이름은 항상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어 주네요~! ㅠㅠ
@설아 * ㅎㅎ
효자셨네요.
저의 어머니도 콩밭을 매셨는데, 저는 왜 버스타고 가면서 그런 생각을 못했는지...
세월 흐를수록
후회되는 것 투성이입니다.
@설아 *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우는 것보다 웃는 것이 낫죠.
ㅎㅎㅎ
@설아 * 나는 아직 철이 안들었었나 봅니다.
장로님의 글을 읽으니 그것이 느껴지네요.
@설아 * 아! 그런가요?
그럼 위로가 되네요.
그건 그렇고, 방금 가나와의 월드컵 경기에서 연속 두꼴을 넣더니 동점이 됐네요.
내친김에 역전승으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갈렙 이제 어머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듯 합니다........ㅎㅎ
@crystal sea 저는 고등학교 졸업 이듬해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가정사에 대한 진지한 대화 한번 나눈 기억이 없습니다.
철이 들고 나니 고생만 하시다가 가신 어머니에 대해 어찌나 무심했는지...
후회막급하더라구요.
@갈렙 네. 저도 대학 2학년 때 돌아가셨는데,
조금 일찍 소천하셨습니다.
불효막급합니다..... ㅠㅠ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