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연중 제8주간 화요일 강론>(2026. 5. 26. 화)(마르 10,28-31)
(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마르 10,28-31)>
1) 이 말씀의 바로 앞에
‘낙타와 바늘귀’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르 10,24-25).”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사도들은,
‘바늘귀를 통과한 낙타’입니다.>
‘낙타와 바늘귀 이야기’에 나오는 부자는, 예수님께서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실 정도로(마르 10,21)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마르 10,20).
그렇지만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르 10,21).”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마르 10,22).”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의 부족한 점은 무엇이었을까?
그 사람과 예수님의 대화를 아주 단순하게,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마르 10,17)”,
“나를 따라라(마르 10,21).”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은 “나를 따라라.”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원한다면
예수님만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려면, 모든 것에서부터 떠나야 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버림’과 ‘떠남’을 먼저 실천해야
‘따름’도 실천할 수 있습니다.
2) 그 이야기에 나오는 부자는 십계명 잘 지키고, 착하고,
신앙생활 잘하는 사람이었는데, 율법에 정해져 있는 대로
불우이웃 돕기도 잘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부족한 점을, ‘재물에 대한 욕심’이나
‘이기심’이나 ‘집착’으로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재물을 모두 버리지는 못할 만큼
재물에 대한 애착심은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애착심과 집착은 많이 다릅니다.
집착은 재물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영원한 생명은 완전히
외면하는 것이고, 애착심은 영원한 생명을 원하면서, 재물을
일부는 포기해도 전부 다 포기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 부자는 영원한 생명도 원하고, ‘현세의 삶’에
대해서도 만족하는 사람이었을 것이고,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을 내세에서도 그대로 누리기를 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현세에서나 내세에서나 편안하게 살기를 원했던 것인데,
예수님께서 “빈손으로 와서 나를 따라라.” 라고 말씀하시자
크게 놀라고 당황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힘들었을까?
가진 것을 전부 다 버리는 것이 힘들었을까?
그는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따르면 안 될까요?”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재산을 그대로 집에 놓아두고 예수님을 따르면
안 될까요?”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단호합니다.
“생각으로만, 또는 마음으로만 따르는 것으로는
안 된다. ‘온 삶’으로, 인생 전부를 걸고 따라야 한다.”
다시 정리하면, 그의 부족한 점은 희망에 대한 간절함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희망하지만, 그게 그렇게
간절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 그의 부족한 점입니다.
3) 신앙생활의 궁극 목적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인데,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모든 것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란,
“모든 것을 바쳐서 모든 것을 얻는 생활”입니다.
이 말에서, ‘모든 것’이라는 말에는 ‘목숨’도 포함됩니다.
4)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며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합시다.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자들은 사람들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리는 유혹과 올가미와 어리석고 해로운 갖가지 욕망에
떨어집니다.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믿음에서 멀어져 방황하고
많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있습니다(1티모 6,7-10).”
<이 말에 대해서, “먹을 것과 입을 것도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때에는 공동체가 나서야 합니다.
당사자 입장에서 말하면, 공동체에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의 고통’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을 외면해도 안 되고, 무시해도 안 됩니다.
가난을제대로 겪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서 무시하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죄입니다
- 송영진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