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90년 가을에 '상견례'를 했었다.
그리고 그 해 겨울에 결혼했다.
결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견례'를 했을 것이다.
그 당시 '상견례'의 주역은 양가의 부모님이셨다.
그로 부터 34년이 흘렀다.
이제는 자식의 혼사를 위해 내가 '상견례'를 진행하는 나이가 되었다.
시간이 쏜살 같이 흘렀다.
지난 주말, 판교에서 오후 5시에 사돈댁 가족을 만났다.
맛있는 음식에 정담이 오갔다.
기쁜 자리에 술이 빠질 수 없었다.
분위기가 좋았고 대화도 막힘이 없었다.
원래는 약 2시간 정도의 만남을 예상했었다.
그런데 식사 후 자리를 옮겨 커피까지 4시간 30분이 지난 후에야 헤어졌다.
첫 대면에 4시간 반이라니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배려와 호응 그리고 감사가 있었다는 얘기일 터였다.
젊은 청춘들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약 10% 남짓이었다.
대부분은 양가 부모들의 대화였다.
본디 '상견례'라는 것이 그랬다.
자식을 낳고 아이들이 3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서로 다른 문화, 다른 가치관 속에서 교육하고 양육했다.
그러니 청춘들이 서로를 죽도록 사랑한다 해도 양쪽의 문화나 시스템이 현저하게 다른 건 어쩔 수 없었다.
관건은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였다.
대화를 통해 그런 간극을 확인했고, 쿨하게 인정했으며 배려의 마음으로 조율하여 밸런스를 잘 유지해 보자고 했다.
상대에 대한 '존중'이 전제였지만 그 점도 잘 통했다.
그래서 4시간 반 동안 시종일관 대화가 즐거웠고 분위기가 좋았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했고 행복했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사돈댁은 자식이 이사를 하면 이삿짐 운송부터 인테리어 공사및 식기, 각종 용품 세팅까지 부모가 모든 것을 100% 주관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정반대의 문화였다.
성인이 되었으면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며 부모의 개입이나 간섭은 최소화가 원칙이었다.
누가 맞고 틀리다는 점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달랐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달라도 많이 달랐다.
이사 문제는 하나의 예를 든 것 뿐이다.
자식들 교육이나 크고 작은 영역에서 많은 다름이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나는 달라야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우리 부부도 다른 종교, 다른 성격,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었지만 잘 조율하며 34년을 살아왔다.
정,반,합의 과정 속에서 배움과 성장 그리고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깊어 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돈 부부께 내가 갖고 있던 한 가지 원칙과 소신을 말씀드렸다.
"가족은 '원팀'입니다. '원팀'이란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공감하며 함께 웃고 함께 우는 '운명 공동체'이지요. 'FAMILY IS ONE TEAM'이란 개념 하나면 된다고 믿습니다. 더 이상 무슨 부연이 필요하겠습니까. '운명 공동체'라고 믿으면 기타 조건은 설명이 불필요하고 믿지 못하면 설명이 불가능한 법입니다. 제 딸이 사돈의 아들을 우리 앞에 데리고 온 순간, 우리는 어떤 조건도 묻지 않았지요. 심지어 이름조차도. 그러나 딱 한가지 물어 보았습니다. 너희들의 연애와 사랑이 스스로의 판단이자 선택인 지, 그리고 인생의 선택엔 준엄한 책임이 따른다는 생의 본질을 잘 알고 있는 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예"라는 대답을 들었고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원팀'이 되었습니다"
나는 진심이었다.
더 이상의 나열은 사족일 터였다.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혼사와 출산 그리고 행복에 대한 양가 어른들의 경험과 에피소드 그리고 추억담에 대한 얘기였다.
중간 중간에 폭소가 터졌다.
단독 룸이었기에 다행이다 싶었다.
시간이 총알처럼 흘렀다.
젊은 청춘들이 밝은 앞날을 설계하고 있다.
앞으로 무수한 날들 동안 어찌 쨍쨍한 날씨만 존재하겠는가.
비도 내리고 눈보라도 치겠지.
그러나 길.흉.화.복의 숱한 여정을 슬기롭게 잘 헤쳐나갈 것으로 믿는다.
요즘 청춘들은 34년 전의 우리보다 훨씬 더 현명하고 평등하며 서로에 대한 배려심이 깊다고 확신한다.
매일 새벽 큐티시간에 청춘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다.
앞으로는 사돈댁의 평안을 위해서도 기도하려 한다.
인생 살이, 결코 어렵지 않다.
내 전답만 생각하지 말고 들판 전체를 생각하며, 내가 먼저 약간 손해 보는 듯하게 살면 된다.
자꾸 큰 집으로 이사하려 노력하지 말고, 더 많이 축적하려 애쓰지 말자.
매년 갖고 있는 짐을 줄여나가고 자주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기쁜 마음으로 이웃들에게 나눠주면 된다.
그러면 늘 넉넉해 지고 풍족해 진다.
작은 생각과 변함 없는 실천이 쌓이고 쌓이면 나중엔 큰 차이와 다름으로 표출될 것이다.
인생사, '호리천리' 아니던가.
청춘들에게 다시 한번 힘찬 박수를 보낸다.
사랑과 감사를 전하며.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