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갤러리 브레송 기획전1: 식물의 사유
사진가들은 식물을 어떻게 표현할까?
- 김남진(전시 기획자)-
식물은 어떻게 찍혀져 왔을까? 1840년대에 폭스 탈보트가 칼로타입(Calotype)으로 제작한 포토제닉 드로잉(photogenic drawing)에 찍힌 식물의 실루엣에서 식물사진의 원형을 찾을 수 있지만, 식물이 많은 사진가에게 의식적인 대상으로 등장한 것은 20세기 초반, 1900년대부터 유럽과 미국에서 동시 발생적으로 일어났던 모더니즘 사진 시기였다. 사진의 기계적인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더불어 오늘날과 같은 사진 표현이 대부분 포함된 모더니즘 사진의 출현에서 비롯되었다. 이 시기의 사진가들은 식물의 세부적인 형태와 극명한 질감에 주목하여 기하학적 이고 추상적으로 표현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식물이 지닌 형태, 색채, 선 등 순수한 시각적 요소에 집중하여 사진의 조형성을 강조했다. 이는 회화적 요소를 배제하고 사진 매체의 고유성을 추구한 당대의 ‘스트레이트 사진’과도 깊게 연결된다. 특히 대형 카메라를 사용해 식물의 일부분을 확대하거나 클로즈업하여 일상적인 시각에서 벗어난 식물의 미세한 구조와 질감을 드러내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도 했다. f64 그룹과 같은 모더니스트 사진가들은 렌즈의 선예도와 디테일을 극대화하여 식물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객관적으로 기록하고자 했다. 식물을 통해 자연의 근원적인 형태와 구조를 탐구하고, 이를 통해 보편적인 미적 가치를 발견하고자 했다.
오늘의 사진가들은 식물을 어떻게 표현할까?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지구 온난화는 예측 불가한 기후 변화를 초래하고, 도시의 급속한 팽창과 인구 밀집은 자연 생태계의 교란과 환경 파괴는 수많은 생물종의 멸종 위기와 같은 생태계의 불균형을 불러일으키고 결국 인간에게도 환경의 역습이라는 부정적인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이렇듯 자연환경의 급속한 변화는 지금까지의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고 반성하는 분위기가 만들어 내고 있다. 보편적인 미적 가치의 발견과 표현을 위해 식물을 바라보던 시각을 비판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사진가들은 단순한 자연의 재현을 넘어, 식물이 가진 생명력과 미적 가치를 강조하거나 식물을 통해 내면의 아름다움과 감성을 표현하며, 지난 기억 속의 자연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의미를 펼쳐 보인다. <식물의 사유>에서 루스 이리가레와 마이클 마더는 인간 중심적 사고를 넘어 자연과 함께 존재하는 새로운 철학적 사유를 제안한다. 두 저자는 식물을 스스로 성장하고 변화하는 존재로 파악하고, 식물로부터 공동체적 삶의 자세와 계절의 변화에 맞물린 생명력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인간이 식물과의 관계를 통해 상호 의존성과 존중을 배울 수 있고, 식물은 인간에게 생명과 연관된 필수적인 생명 요소를 제공하듯이, 인간이 자연을 소중히 다뤄야 함을 환기하고 있다. 인간이 자연을 단순히 이용 대상으로 삼는 태도를 넘어설 때, 생태적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추구할 수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교훈을 통해 식물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표현하는 고정남, 손은영, 김미경의 작업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미경은 <타자의 숲> 시리즈에서 나무를 매개로 인간과 타자, 혹은 외부 세계와의 관계성을 탐구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나무가 독립된 생명체로 존재하면서도 뿌리로 연결되어 생명을 공유하듯, 인간 역시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변화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여기서 나무를 휘감아 에워싼 덩굴 식물(climbing plant)에 시선이 더 머무는 연유가 자못 크다. 마치 전위 예술품과 같이 나무를 뒤덮고, 불규칙한 형태의 크기와 위용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사진 속 덩굴 식물(가시박)은 생물다양성을 감소시키는 생태계 교란 식물로서 일종의 귀화식물이다. 덩굴 식물은 줄기가 가늘고 연약하여 올곧게 자라지 못한다. 햇빛을 더욱 받기 위해 빠른 속도로 높이 성장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나팔꽃, 고구마, 오이, 담쟁이덩굴 따위와 다를 바가 없다. 작가는 나무와 자신과 한 몸이 되듯이 휘감아 도는 덩굴 식물마저도 감내해야 하는 또 다른 생태 환경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일종의 양가적 감정(ambivalence)의 시각화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작가는 타자의 고유성과 공존의 의미를 살펴보고, 관계와 연결성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제시하고 있다.
고정남은 우리 시대의 분단 상황을 진달래꽃과 군인의 복합적인 정서를 빌려 <통일로 진달래> 작업에 오랫동안 매진하였다. 고향, 장흥의 야산에 봄이면 흐드러지게 물든 진달래꽃을 보고 성장한 그에게 진달래꽃은 한국적 정서의 발로이면서 분단의 상징체이다. 낡고 바랜 듯한 군인들의 기념사진은 분단된 조국과 통일에 대한 염원의 은유적 지시체이기도 하다. 고정남의 이전 작업인 <집.동경 이야기>를 시작으로 <Song of Arirang_호남선>, <수인선-2020>, <월미도 로망 쓰> 등의 연작을 관통하는 것은 자신의 자전적 기억과 추체험을 절묘하게 섞기도 하고, 혹은 시간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해석하면서 이를 강권하지 않는 작가적 관용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될 점은 호남선, 수인선의 기차 역사, 월미도, 통일로 등에서 보듯이 역사적 장소성(placeness)이 드러나지 않는 복선처럼 깔려 있다. 특정 장소에 대한 사회적 공통의식을 뜻하는 장소성은 작가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 구성원의 행위적 차원에서 사회적 의식으로 전환되고 승화되었을 때 형성되는 것이다. 이점이 고정남의 작업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작동되고 있다.
손은영의 <모네의 정원>은 지난날의 집 마당 한쪽 귀퉁이에 자리 잡은 작은 연못에서 바람에 흔들리던 수련에 대한 아련한 기억에서 비롯하고 있다. 클로드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은 작가들에게 자연과 예술의 융합, 빛과 색채의 실험이라는 중요한 영감을 제공한 곳이다. 모네의 정원에서 탄생한 수련 연작은 추상미술과 표현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손은영은 그동안 <밤의 집>, <기억의 집>, <그곳에 산다>의 일련의 집 시리즈에서 유년과 청소년 시절에 깊이 각인된 집과 가족에 대한 자전적 기억을 모티브로 하였듯이 <모네의 정원> 또한 지난날의 집에 대한 추억과 그 속에 얽혀 있는 내러티브를 강렬하고 감각적인 색채의 향연으로 표현하고 있다. 열대식물들의 플로라(flora)의 다채로운 색채와 그 화사함은 온몸의 감각들을 돌기 세우고 넘쳐 화면 가득히 넘실댄다. 지금까지의 집 작업에서 보여주지 못한, 다채로운 빛의 스펙트럼을 실험하는 듯이 현실 너머의 색감을 구사하고 있다.
고정남, 통일로 진달래
손은영, 모네의 정원
김미경, 타지의 숲